'보이즈투맨' 이 바꾼 인생, '소울스타' 이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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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즈투맨' 이 바꾼 인생, '소울스타' 이규훈
  • 취재기자 김연수
  • 승인 2017.06.11 20: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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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의 법칙 따른 연습 벌레..."노래 따로 배운 적 없어"

 

2016년 9월 1일 방영된 Mnet <너의목소리가 보여3> (사진: Mnet <너의목소리가 보여3> 캡쳐).

노래엔 저마다의 기억이 배어있다. 한 때가 장면으로 스며든 기억이다. 노래는 향수가 되어, 귀를 타고 퍼진다.  

“So, baby you don‘t have to let me go, 내 모든걸 네게 바쳐…”

전주가 흐르고, 멜로디 위에 세 남자의 목소리가 화음으로 쌓였다. 그제야 탄성이 터졌다.“소울스타다!”

지난 해 9월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3>에 출연한 소울스타는 방송 직후 각종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Only One for Me> 방송 클립 영상은 네이버TV캐스트에서 조회수 36만 건을 돌파했다. 얼굴은 낯설지만, 노래는 사람들이 잊지 않고 있었다.

<너의목소리가 보여3>에서 부른 소울스타 데뷔곡 <Only One for Me> 무반주 버전(출처: N.A.P. Entertainment Official)

이규훈은 3인조 R&B그룹 소울스타의 막내이자 리드보컬이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푹 눌러쓴 모자를 고쳐 쓰며 인사하는 그는 “밤새 곡 작업했더니 피부가 영 안 좋네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어느덧 데뷔 13년차, 21세 막내는 33세가 되었다.

하루 세 시간, 10년이면 1만 시간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은 이제 대중에게도 익숙해진 말이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실력 차이는 대부분 연습 시간의 차이라는 연구 결과와 함께 제시된 법칙이다. 이규훈은 1만 시간의 법칙을 몰랐다. 흑인음악이 좋아서, 온 신경이 음악에만 반응했고, 그렇게 가수가 됐다.  “반주 안에서 제가 같이 흘러가듯이, 리듬을 타면서 노래하는 게 좋아요”라고 말하는 그는 노래하며 20대를 온전히 지나왔다

2016년 11월 소울스타 소극장 콘서트 <SOUL SOUP> (사진: 소울스타 공식 페이스북).

소울스타는 이규훈, 이창근, 이승우 3인조로 2005년 YG엔터테인먼트를 통해서 데뷔했다. 양현석 대표는 “국내 최고의 R&B 그룹이 될 것"이라고 소울스타를 소개했다. 1집 수록곡 <Only One for Me>외에 <잊을래>, <비극>, <Call My Name>, <연애의 시작>, <강남역 10번 출구> 등이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다. 이규훈은 “지금이야 여자 팬들이 대부분이지만, 옛날에 1집 때는 YG 사옥 앞에 남자팬들이 찾아오고 그랬어요. 음악 좋아하는 남학생들이었죠. 그땐 그랬어요”라며 웃었다.

부모님은 커피숍을 운영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그는 혼자였다. 집에는 커피숍에 틀 음반들이 쌓여있었다. 보물찾기하듯, 앨범을 꺼내서 들었다. 그가 찾은 보물은 미국 R&B 음악 그룹 ‘보이즈투맨(Boyz II Men)’이었다.

어린시절 이규훈(사진: 이규훈 제공)

보이즈투맨 음악을 달고 살았다. “죽기 전에 보이즈투맨과 한 무대에 서는 날이 올까?” 말도 안 되는 이런 상상을 해봤다. 보이즈투맨은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One Sweet Day>로 16주 동안 1위를 기록한 세계적인 그룹이었다. 한 번도 내한한 적이 없었다.

“노래를 따로 배운 적 없어요. 어릴 땐 멋모르고 노래했죠. 노래하는 게 그냥 너무 좋으니까요. 대신 카피를 많이 했어요. 대가의 그림을 섬세한 붓 터치로 따라 그리듯이, 노래를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 불렀죠. 정말 좋아하다보면 감각이 생기는 것 같아요.”

고등학생 이규훈은 보이즈투맨 팬카페에 ‘Wanya 카피맨’이라는 닉네임으로 보이즈투맨 노래를 카피해서 올렸다. 그는 “리드보컬 와냐 모리스 목소리를 똑같이 따라하다 보니 커뮤니티 안에서는 꽤 유명했어요”라고 말했다.

카피곡은 삶을 바꿔놓았다. 2001년 SM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한 댄스 그룹 위즈는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하고 3개월 만에 해체됐다. 위즈의 멤버였던 이창우, 이창근은 진짜 하고 싶었던 R&B음악을 하기로 결심하고 새 멤버를 수소문했다. 우연히 'Wanya 카피맨’ 이규훈의 노래를 들은 두 명은 이규훈에게 “꼭 만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다.

다음날, 이규훈은 교복도 채 갈아입지 않고 이창우와 이창근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보이즈투맨 노래로 화음을 맞춰봤다.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을 찾은 것처럼 세 사람의 목소리는 하나가 되었다.

소울스타. 왼쪽부터 이승우, 이규훈, 이창근 (사진: 소울스타 공식 페이스북).

이규훈은 멤버들과 4년 동안 데뷔를 준비했다. 그는 “1집은 혼신을 다해서 만들었어요. 우리 세 명이 하고 싶었던 노래들로만 채워 넣었죠. 미련없이”라고 말했다.

“꿈만 같은 일이 진짜로 일어나버린거죠. 보이즈투맨 앞에서 노래를 하다니...”

데뷔한 2005년 소울스타가 보이즈투맨과 그룹 빅마마의 조인트 콘서트에 초대되었다. 소울스타는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 모인 5000여 명의 관객 앞에서 'Only One for Me'와 'Under  Your Love'로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다.

보이즈투맨은 소울스타를 잊지 않았다. 2011년 11월 '유니세프 하모니 콘서트'로 다시 한국을 찾은 보이즈투맨은 소울스타를 콘서트에 초대했다. 6년만의 재회였다. 6년 전 그때처럼 소울스타는 서울 잠실체육관을 가득 매운 관객 앞에서 노래했다.

리드 보컬 와냐 모리스는 이규훈을 공연이 끝난 후 뒷풀이에도 불렀다. 이규훈은 “와냐와 소주한 잔하면서 밤새 얘기를 나눴죠. 다시 만난 와냐는 동네 형처럼 편했어요”라며 웃었다.

사실 보이즈투맨을 다시 만난 2011년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났다. 2007년 친한 지인을 따라 소속사를 옮겼는데 사기를 당했다. 2007년 6월 백지영과 함께 부른 <우리가 이별할 때> 활동 이후 2011년 6월 계약이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은 2007년에서 굳어버렸고, 공백은 점점 대중들의 머릿속에서 소울스타를 지워갔다.

2016년 11월 소울스타 소극장 콘서트 <SOUL SOUP> (사진: 소울스타 공식 페이스북).

가수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야하진 않았을까. 그는 얼마간 생각에 잠겼다가 “어차피 힘든 길을 선택했고, 활동하면서 점점 그걸 알게 된 거죠”라고 운을 뗐다.

“돈도 많이 벌어봤었고, 또 없어도 봤고, 그냥 좋은 기회가 오는 걸 기다리는 게 낫지, 후회하고 힘들어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소울스타는 2011년 소속사를 옮기고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이규훈은 2012년 5월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디지털 싱글 곡 작업이 거의 끝나갈 2012년 3월, 이규훈은 느닷없이 귀밑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2005년부터 귀밑에 조그맣게 알맹이가 잡혔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녹음을 하는데 발음이 조금씩 새고 통증도 느껴졌다. 3월 26일 병원을 찾은 그는 ‘이하선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하선종양은 양쪽 귀 밑에 있는 귀밑샘에 생기는 종양이다.

그는 “거울을 보는데 눈에 뛸 정도로 알맹이가 커져있었죠. 이게 뭐지? 이상한데... 병원 갔더니 이하선종양이라고 했어요”라며 담담히 당시를 회상했다. “검사하니까 나쁘진 않은데 암이 될 수도 있다고 해서 다음날 바로 수술했어요. 지금도 수술했던 부분은 약간 감각이 없어져요. 남의 살 만지는 느낌이랄까?” 이규훈은 수술로 인해 음반 작업에서 빠지게 됐다.

군 입대는 미뤄졌다. 1년 뒤 2013년 12월 30일, 서른 살을 이틀 앞두고 이규훈은 입대했다. 28사단 군악대로 차출되었다. 그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상병이 되면서 그제야 “아, 내가 군인이구나”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어떻게 보면 하찮게 보이는 무대들도 많았는데, 내가 여기서도 사람들한테 감동을 못주거나 노래를 제대로 못하면 나가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사소한 공연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죠. 밖에서는 다 내가 좋아서 오는 사람들인데, 군대에서 남자 가수는 반응이 냉담하잖아요. 그 분위기를 어떻게 이겨낼까 고민하면서 무대에 올랐어요”라고 말했다.

병장이 될 무렵, 그는 매일 아침 줄넘기를 시작했다. 아침 식사 시간과 오전 일과 시간 사이, 보통은 생활관에서 꿈쩍도 안 하고 쉬고 있을 시간이다. 땀이 쏟아질 정도로 그는 줄넘기를 했다. 그는 “전역하자마자 콘서트가 잡혀있었어요. 데뷔 10주년 기념 콘서트였죠. 오랜만에 무대에 오를 생각에 몸 관리를 철저하게 했어요”라고 말했다.

콘서트로 팬들을 만날 때, 그는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역하자마자 시작한 10주년 콘서트를 시작으로 1년 동안 4번의 콘서트를 했다.

“지금 이렇게 모자 눌러쓰고 앉아 있는 건 그냥 동네 백수같잖아요. 근데 공연할 때는 제가 살아있단 느낌이 들어요. 제 음악을 찾아와서 들어준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죠. 가수의 일을 하고 있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요.”

노래는 더 성숙해졌다. 소울스타는 소울스타다. 노래를 너무 흑인처럼만 부를 수는 없었다. 현란한 기교가 아니라, 그는 노래로 온전히 감정을 전하고 싶다. “지난 10년 동안 공부했다고 생각해요”라며 그는 “슬픈 노래를 슬프게 부르고 달콤한 노래를 달콤하게 부르고, 단순한데 참 어려워요“라고 말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들은 청소년들의 워너비가 되곤 한다. 한동안 TV를 휩쓸었던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매년 지원자가 쏟아졌다. 그는 가수를 “내가 딱 하는 만큼, 그만큼도 못 받을 때도 있는 힘든 직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걱정은 되죠. 마흔 넘어서, 쉰 넘어서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 없으니까요”라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살아남으려면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이건 잘하는 것 같아’ 이런 게 있어야 돼요. 다른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는 나만의 것이요”라고 소신을 밝혔다.

이규훈은 “진정성을 가지고 노래하면 인기는 따라오는거죠”라고 말했다(사진: 소울스타 공식 페이스북).

가수를 하지 않았다면 뭘 했을까. 그는 한참 생각했다. 다른 답은 떠오르지 않는지 “군인 했을까요. 아버지가 어렸을 때 육군 사관학교 가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이미 고3 때 가수로 노선을 타버려서 별 수가 없었죠”라고 말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것 했잖아요. 어떻게든.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것은 쉬운 건 아니에요. 리스크도 엄청 크고 포기해야 될 것도 많아요. 가수 중에 상위 몇 명이나 안정적으로 살겠어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라는 게 보상으로 느껴질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에요. 저는 하고 싶은 걸 해왔고 지금 행복해요. 만약 데뷔를 못하고 서른 살이 되었어도 계속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오히려 더 색다르게 하고 있지 않을까요. 기성 가수랑은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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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인저스트파인 2017-08-23 14:00:02
멋집니다
와냐카피맨 시절부터 팬이었지만
세월이 흘러도 브아솔과함께 대한민국에서 가장 흑인음악다운 음악을 하는 그룹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활동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