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난 일본 기업들, '오와하라' 유행…"다른 회사 가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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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난 일본 기업들, '오와하라' 유행…"다른 회사 가지마!"
  • 취재기자 정인혜
  • 승인 2017.05.3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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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천국 일본 오세요" 외국인 구직자 유치 위해 혈안.... 한국서도 채용 행사 잇달아 / 정인혜 기자
일본이 사상 최대 구인난에 직면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요즘 일본에서는 ‘오와하라’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는 '끝내라'는 뜻의 ‘오와레(おわれ)’에 '괴롭힘'이라는 영어 단어 ‘harassment’를 합친 단어다. 기업 측이 입사 지원자들에게 다른 기업에 구직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지금 당장 너를 채용할 테니 다른 곳에 원서 넣지 마라”는 뜻이다. 

오와하라가 협박성을 띠는 경우가 더러 보고되면서 일본 내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오와하라에는 ▲구직 사이트에 등록한 정보를 삭제하라고 요청하거나, ▲취업 포털 사이트 회원 탈퇴 강요, ▲기업 내정 승낙서 요청, ▲구직 활동 금지 서약서 요구, ▲다른 기업에 면접을 포기하겠다는 전화를 강요하는 등의 방식이 있다. ‘협박’까지 동원해 구직자들을 잡아두려는 이유가 뭘까.

일본은 사상 최대 ‘구인난’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본 내각부는 지난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4월 구직자 대비 구인자 비율이 1.48배로 상승했다고 밝혔다. 구직자 1명당 일자리가 1.48개라는 뜻이다. 취업률도 거의 100%에 가깝다. 일본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대졸자의 취업률은 97.6%, 고졸자의 취업률은 97.5%에 육박했다. 이는 동기간 42.5%를 기록한 국내 청년 고용률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일본이 ‘취업 천국’으로 도약한 이유는 생산 가능 인구(15~65세)가 감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자는 전체 인구 1억 2709만 명의 26.3%에 이르는 수치를 기록했다. 조사를 진행한 연구소 측은 오는 2035년에는 3명 중 1명이 고령자일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일본 내 생산 가능 인구는 지난 1995년 8717만 명에서 지난 2015년 7828만 명으로 1000만 명 가까이 줄었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연설하는 모습(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아베노믹스'를 바탕으로 일본 경제가 활기를 되찾은 데 따른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베노믹스는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지난 2012년부터 시행한 경제 정책으로, 과감한 금융 완화와 재정 지출 확대, 경제 성장 전략을 주 내용으로 한다. 이에 대해서는 아베 총리 본인이 직접 자평하기도 했다. 일본 닛케이 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지난해 7월 ‘유효 구인 배율’을 강조하며 “아베노믹스로 경제가 살아나 일자리가 그만큼 늘었다”고 주장했다. 유효 구인 배율은 한 사람당 일자리가 몇 개인지 나타내는 수치인데, 지난 2016년 일본의 유효 구인 배율은 1.36으로 나타났다. 구직자 1명당 1.36개의 일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유효 구인 배율 상승 현상을 아베노믹스의 덕으로만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유효 구인 배율이 상승한 게 경기가 좋아졌다는 이유보다는 저출산 고령화가 장기화되면서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든 측면도 있다”며 인구 구조 변화를 취업 천국을 견인한 1등 공신으로 지목했다.

언론 보도처럼 고공 취업률의 실제 체감 정도가 높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쇼 스미즈(24, 도쿄) 씨는 “(일본 취업 시장은) 다른 나라와 별반 다를 것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단순 취업과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 것을 별개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모든 회사가 높은 임금을 보장하면서 뛰어난 인재를 유치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쇼 씨는 “단순히 취직하는 게 목표라면 어렵지 않지만,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의 회사에는 여전히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구직난이 심각하다”며 “나를 비롯한 내 주변 친구들은 ‘구인난’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쇼 씨가 재학 중인 와세다대학은 일본의 명문 사립대학 중 하나다. 

그는 임금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쇼 씨는 “경제 불황 여파로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높은 임금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며 “중소기업에서는 세금을 제하고 18만 엔(한화 약 180만 원) 정도 받으면 많이 받는 편”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구인난 타개책으로 외국인 고용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이 가운데 일본 기업은 외국인 구직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경제 불황으로 외국인 구직자에게 폐쇄적인 다른 나라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는 셈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일본 취업박람회가 연이어 개최됐다. 한국에서 열리는 채용 행사에 일본 기업이 몰리는 진풍경도 연출된다. 

아리이 유이 후지타 관광 WHG 채용 담당자는 한국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직원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한국인 채용에도 긍정적”이라며 “한국에 우수한 인재가 많다고 생각해서 한국인 채용 행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일본 취업을 준비 중인 청년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 은행 미쓰비시 도쿄점 취직을 준비 중인 신해수(29, 부산시 동구) 씨는 “같은 스펙이어도 더 쉽게 취직할 수 있다는데 한국에 있을 이유가 있겠냐”며 “기회를 찾기 위해서는 ‘헬조선’보다는 일본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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