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의 단편 소설 <언니의 폐경>에서 여성이 생리하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논란이 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및 SNS에서 ‘소설의 생리 묘사’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게시물에는 김훈의 소설 <언니의 폐경> 일부가 담겨있었다. <언니의 폐경>에서 논란이 된 부분은 차를 타고 가던 여성이 생리가 시작되면서 곤란해지는 상황을 묘사한 곳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언니가 갑작스레 생리가 시작되자, 동생이 직접 바지와 속옷을 내려주고, 여성용 패드로 새어나온 생리 혈을 닦아준다.
- 얘, 어떡하지. 갑자기 왜 이러지...
- 왜 그래, 언니? - 뜨거워. 몸 속에서 밀려나와. 나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다. 나도 생리날이 임박해 있었으므로 핸드백 안에 패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룸 라이트를 켜고 패드를 꺼내 포장지를 뜯었다. 내 옆자리에서 언니는 바지 지퍼를 내리고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나는 언니의 엉덩이 밑으로 바지를 걷어내주었다. 언니의 팬티는 젖어 있었고, 물고기 냄새가 났다. 갑자기 많은 양이 밀려나온 모양이었다. 팬티 옆으로 피가 비어져나와 언니의 허벅지에 묻어 있었다. 나는 손톱깎이에 달린 작은 칼을 펴서 팬티의 가랑이 이음새를 잘라냈다. 팬티의 양쪽 옆구리마저 잘라내자 언니가 두 다리를 들지 않아도 팬티를 벗겨낼 수 있었다. 팬티가 조였는지 언니의 아랫배에 고무줄 자국이 나 있었다. 나는 패드로 언니의 허벅지 안쪽을 닦아냈다. 닦을 때 언니가 다리를 벌려주었다. 나는 벗겨낸 팬티와 쓰고난 패드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차 뒷자리로 던졌다. <언니의 폐경> 일부 발췌 |
네티즌들은 생리에 대해 잘 모르면서 소설이 이를 묘사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생리혈이 "뜨겁게 몸 속에서 밀려 나온다"고 묘사한 것, 속옷을 잘라서 벗겨낸 것, 패드를 속옷에 부착하지 않고 패드로 허벅지에 묻은 피를 닦아낸 것, 뒤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자매가 도움을 주는 것 등 김훈 작가의 생리 묘사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
트위터리안 red*** 씨는 “김훈의 ‘뜨거워, 몸 속에서 밀려나와’를 읽고 계속 헛웃음이 난다”며 “재능과 문장이 덮어줄 수 없는 허점을 엿본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트위터리안 mel*** 씨는 “<언니의 폐경>을 읽을 때 저 부분 진짜 갸웃했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며 “작 중 두 여성 모두 중년이라 생리를 몇 십 년은 하고 살아온 분들이신데 왜 저렇게 대응하겠냐”고 말했다. nin*** 씨는 “<언니의 폐경>을 보면 볼수록 너무 어이없고 생리의 ‘생’자도 모르는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소설 속에서 속옷을 잘라서 버리는 부분이 나오는데 패드는 속옷에 부착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속옷을 잘라버리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
손아람 작가도 해당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손 작가는 “작가가 되기 위해 김훈을 거치지 않을 도리가 없고 70년대 이후 태어난 작가라면 배움, 극복, 타도의 과정을 거치겠으나 오래 돌고 있는 이런 식의 묘사에 대한 문제 의식은 조금 결이 다르다”며 해당 논란에 대해 비판했다. 손 작가는 “김훈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대신 무생물적 대상화를 한다”며 “김훈은 이상하게도 남성의 성기와 성기능에 대한 해부적 무생물화를 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라대 여성문제연구소 최희경 소장은 김훈 작가의 생리 묘사에 대해 “생리 현상에 대한 이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대상화를 하고 있어서 많은 여성들이 불쾌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훈 작가가 여성을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다른 생물처럼 대상화를 하고 있다는 것. 최 소장은 “<칼의 노래> 등 김훈 작가의 작품에는 비슷한 묘사가 항상 있었는데 그동안 여성 평론가들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것이 의아했다”며 “이렇게 공론화되는 것은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과 지적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최 소장은 “이번 논란을 통해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이 하는 생리에 대해 남성들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