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처럼 박진감 넘치는 소식 전해 주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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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처럼 박진감 넘치는 소식 전해 주고 싶어요 ”
  • 취재기자 김지언
  • 승인 2017.05.24 2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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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츠런파크 부산경남' 장내 아나운서 최지안 씨...취재, 대본 작성, 영상 편집까지 일인다역 / 김지언 기자
경마공원 방송실 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최지안 아나운서(사진: 최지안 씨 제공).

“경마팬 여러분, 안녕하세요!” 

경마장 방송실에 환한 조명이 켜지고 온에어 간판에 불이 들어오면 장내 아나운서가 친절한 말투와 미소 띤 얼굴로 인사한다. 그가 그날 경주에서 눈여겨볼 만한 말의 훈련 상태와 몸 상태를 알려주면, 경마장을 찾은 사람들은 이 방송을 보며 어떤 말에 배팅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간발의 차로 희비가 엇갈리는 이곳에서 경주마들의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 바로 경마장 아나운서 최지안(31)이다.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에서 금요일 아침마다 그날의 경주 소식을 알려주는 프로그램 <레이싱 투데이>를 진행하는 아나운서 최지안 씨는 올해로 입사 4년차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고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한 최 씨는 전공과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현재 직업을 선택한 것에 대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어렸을 적 꿈인 아나운서에 관해 다시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이 자리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최 씨는 여느 학생들처럼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다. 자신의 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같은 과 동기나 선후배들이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덩달아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법조계에 별다른 뜻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는 법학 공부가 본인의 적성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의자에 앉아 공부하고 싶지도 않아 결국 사법고시 준비를 그만뒀다. 최 씨는 “(사법고시는)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차피 시험을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을 거라면, 이제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해보자’는 마음으로 자신의 진로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고민했다. 그 때 딱 떠오른 것이 바로 아나운서였다. 당시 그의 나이 27세. 남들에 비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나운서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더 이상 내가 원하지 않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최 씨는 2년간 학원에 다니고, 같은 직종을 꿈꾸는 사람들끼리 스터디를 하며 아나운서 취업을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에서 아나운서를 모집하는 공고가 떴다. 불현듯 대학 시절 경마장에 놀러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경마가 과연 재미있을까?’ 반신반의하며 경마장에 갔지만, 경마가 의외로 박진감 넘치고 긴장감이 있는 스포츠여서 재미를 큰 느꼈다. 그 때 경험을 떠올린 그는 이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지원서를 작성했다. 연고가 없는 부산에서 생활하는 것과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발목을 잡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법대를 졸업한 뒤 아나운서를 준비한다는 점과 높은 어학 점수, 대학 시절 교내 밴드 동아리에서 베이스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이력 등 그가 가진 여러 가지 스펙을 특이하게 봤던 것일까. 28세 겨울, 그는 '레츠런파크 부산경남'에 아나운서로 입사하는 결실을 얻었다.

생방송이 시작되기 직전 방송을 준비하는 최지안 아나운서(사진: 취재기자 김지언).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이 방송국 중심이 아니고 경마 자체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최 씨는 꼭 방송 일만을 하는 게 아니고 기본적으로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한다. 그의 주된 업무는 금요일 아침 경마 방송인 <레이싱 투데이>를 진행하는 것이지만, 작가처럼 대본을 쓰고, 기자처럼 취재를 하고, 영상 편집도 맡아서 한다. 그는 아침 방송의 대본과 렛츠런파크 홍보 영상의 내레이션을 직접 쓰고, 직접 기수와 조교사를 찾아 말의 훈련 상태와 건강 상태 등을 취재한다. 리포터로서 해당 경주 후 현장 상황을 전하고, 우승한 기수를 인터뷰하며,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의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 게스트로 출연할 때도 있다. 그는 “이렇게 많은 일을 하니 힘들긴 하지만 다양한 역할을 맡게 돼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경마 관계자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말과 교감하는 최지안 아나운서(사진: 최지안 씨 제공).

그는 방송하면서 일어난 에피소드도 털어놨다. 보통 방송이 시작되면 스튜디오 밖에 있는 직원과 의사를 소통해야 하므로 귀에 이어폰의 일종인 '인이어'를 꽂고 방송을 진행한다. 그는 처음 방송을 진행할 때 인이어를 낀 상태로 생방송을 진행하다 전달 사항을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네, 네"하고 대답하는 방송 사고를 냈다고. 

일을 하며 가장 뿌듯했던 일로 그는 사람들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을 때를 꼽았다. 회사 내부의 피드백도 중요하지만, 방송은 회사 직원들만 보는 게 아니라 경마팬들도 보는 것이기에 사람들이 “이번 방송은 너무 좋았다”고 직접 전화를 걸어오거나 민원 게시판에 방송을 칭찬하는 글이 올라올 때가 그에게는 제일 보람찬 순간이란다. 야외로 우승한 기수를 인터뷰하러 나갔을 때 팬이 그의 사진을 인화해 내밀면서 거기다 사인을 해달라고 하거나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고 하는 것도 그에게는 기분 좋은 일 중 하나다. 그는 “내가 진행한 방송을 칭찬해 주고 나를 알아봐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럴 때가 가장 보람차다”고 전했다.

최 씨는 “아무래도 이곳은 경마라는 특수한 분야의 일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무런 지식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이었다”고 입사 당시 기억을 회상했다. 여러 분야의 일을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인터뷰할 때 기수, 조교사, 관리사, 마주 등 수많은 경마 관계자 모두의 얼굴과 이름을 다 알아야했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에는 ‘이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경마 관련 전문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 씨는 3년째 경마 일을 능숙하게 해내고 있다.

경마장 내에서 아나운서 외에 경험해 보고 싶은 다른 직업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수의사와 심판을 꼽았다. 그는 “수의사는 너무 전문적인 분야라 사실 체험해 보고 싶기보다는 궁금한 마음이 크다”며 “심판은 경주 순위를 정하고 순위가 변동될 수 있는 심의 사항이 있으면 결정을 내리는 일을 한다. 경마에서는 경주 결과가 중요한 만큼 이를 좌우하는 ‘경마의 꽃’인 심판 일에도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경마팬들에게 경주마를 소개하는 출장 방송을 하고 있는 최지안 아나운서(사진: 취재기자 김지언).

인터뷰를 진행하던 최 씨는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학원 같은 데서 친구들끼리 모여 백 번 연습하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현장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살리고, 카메라 앞이 아니더라도 무대에 서는 경험을 많이 해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식 방송국이 아니더라도 학생들이 찍는 영상의 리포터로서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은 중요한 자산이 된다며 아나운서 지망생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방송인으로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보고 만족하는 것이 아닌,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자신만의 개성을 가질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한다. 단순하게 방송만 잘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개성을 찾고 어필할 수 있는 특기를 계발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요즘 그는 폴댄스를 배우며 자신만의 특성을 만들어나가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최 씨는 앞으로도 자신만의 강점을 계발해나가며 아나운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생각이라고 힘 있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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