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청소년 위한 힐링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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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청소년 위한 힐링캠프
  • 취재기자 이창호
  • 승인 2013.04.1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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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경 주관 '청소년 힐링캠프'동행기
▲ 제5차 양산시 청소년 힐링캠프 참가 학생들이 인솔자 이상배 대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함께 신불산 정상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사진: 이창호 취재기자).

 경남 양산시에서는 매달 한 번 특별한 산행이 벌어진다. 양산시 경찰서 주관 하에 한 산악인이 비행 청소년들과 함께 등산을 하면서 호연지기를 길러주는 행사인 '청소년 힐링캠프'가 그것이다. 보통 1박 2일 일정으로 영남 알프스 산군(山群) 중 세 곳인 배내봉, 간월산, 신불산을 오른다.

 인솔자는 '영남등산전문학교' 이사장 이상배(60) 씨. 부산, 울산, 경남 등 영남권 소속 중고등학교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검거된 미성년 범죄자 10여명씩을 인솔한다. 캠프는 매달 중순에 개최되는데, 지난 2월에 다섯 번째 캠프가 열렸다.
 기자는 이 제5차 청소년 힐링캠프에 동행할 기회를 얻었다. 캠프는 양산시 도심에 위치한 공설 운동장에 참가자들이 집결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곳에서 이상배 대장은 경찰로부터 학생들의 신변을 인도받았다.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양산시경 소속 형사 한 명이 동행했다.
 힐링캠프의 참가자는 매번 일정 때마다 바뀌지만, 상대적으로 범죄를 많이 저지른 몇몇 학생들은 몇차례 계속 참가하기도 한다.
 이번 힐링캠프가 두 번째라는 부산의 이 모(18) 군은 “저번 산행 때 대장님께 이미 사람 다 되었다고 말했는데, 이번 기회에 진짜 사람 되려고 다시 왔다”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일정은 버스로 울주군 상북면으로 이동해 배내고개를 넘어 간월산까지 등반, 산 속에서 1박하고 다음 날 신불산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해, 출발 지점인 양산 공설운동장으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코스다. .
 처음 집합했을 때 참가 학생들 모두 서먹해 하고 대장 말도 잘 안 듣는 등 침울한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땀을 흘리며 첫 번째 봉우리인 배내봉에 오른 뒤부터 학생들 얼굴에 밝은 표정이 돌아왔다. 
 추모(15) 군은 정상에서 가슴 뿌듯함을 느껴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처음엔 등 떠밀린듯 내키지 않았지만  이렇게 정상에 오니까 너무 기분 좋다"고 말했다.
 일정은 계속됐다. 일행은 배내봉에서 바로 간월산 쪽으로 산맥을 타고 이동했다. 간월산에 위치한 간월재는 이곳이 왜 한국의 알프스라 불리는지 알 수 있을 만큼 경관이 수려했다. 참가 학생 배모(16) 군은 산이 정말 멋지다며 감탄을 자아냈다.

▲힐링캠프 참가 학생들이 간월산 간월재 부근 등산로를 힘겹게 오르고 있다(사진: 이창호 취재기자).

 일행이 간월산에 도착하자, 해가 뉘엿뉘엿 지고,산속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일행은 간월산 산장 안에 들어가 배낭을 풀고 지친 몸을 잠시 뉘였다. 짧은 휴식 시간 다 같이 모여 앉아 서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산행 도중 서로 힘든 몸을 이끌어주며 많이 친해진 학생들은 조금씩 말문을 트기 시작했고, 금방 이야기꽃을 활짝 피웠다. 
 이 대장이 학생들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러 캠프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각자 한마디씩 할 것을 주문했다.  최모(15) 군이 먼저 일어섰다. 얼굴에서 아직 어린 티가 줄줄 흐르는, 어찌보면 모범생같은 표정의 어린 학생이었다. 그는 옆자리 이모(15) 군을 지칭하며 "친구와 함께 특수강도죄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최 군은 "혼자 강도질하면 그냥 강도, 둘이 강도질하면 특수 강도래요. 내가 터는 동안 이 친구가 망을 봤었는데, 그렇게 둘이 같이 도둑질해서 특수강도랍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배모(17) 군 "나는 혼자 털다 걸려 들어왔다"며 "그러게 뭉쳐 다니면 더 덤탱이 쓴다"고 최 군과 이 군을 나무라듯 말했다.  
 그러자 이 대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야, 니도 잘한 거 없다"며 짐짓 꾸짖었고, 참가 학생들 모두와 폭소를 터뜨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난 뒤, 일행은 박수로 다함께 자리를 마무리하고 침소에 들었다. 

 다음 날은 마지막 코스인 신불산 등산이었다. 다소 지친듯 한 표정의 학생들은 다시 산행이 시작된다는 사실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홍일점인 신모(16) 양은 "내 다리가 오징어 같아요"라며 휘청거리는 시늉을 했다. 흐물거리는 오징어 다리처럼 다리에 힘이 풀렸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산행이 시작되자 다들 전날보다 익숙해진 발걸음으로 금방 등산 의욕을 보였다. 일행은 해가 중천에 뜨고 난 뒤에야 신불산 정상에 도달했다. 학생들은 서로 등을 토닥여주며 위로했다. 산행이 마무리에 다다랐음에 모두 안도감을 느끼는 표정을 지었다. 추모(15) 군은 기지개를 쫙 펴고선 "아! 끝이다"라고 외쳤다.
 신불산 정상을 끝으로 일행은 상북면 방향으로 하산했다. 산에서 빠져나오자 1박 2일간의 산행이 가져온 피곤이 밀려왔다.
 특수강도죄를 저질렀다는 이 군은 "아, 엄마 생각난다"고 외쳤다.
 시내로 내려온 일행은 대기 중인 버스를 타고 다시 양산으로 돌아왔다. 버스 안에서 일행은 모두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었다.
 

 도착지인 양산 공설운동장엔 경찰서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참가 학생들의 학부모들도 마중 나와 있었다. 이모(16) 군의 어머니 정모(43) 씨는 "걱정 많이 했는데, 이렇게 잘 끝내고 와준 아들이 대견하다"고 말했다.  정 씨는 "아이고 내아들, 어데 다친 데 없나"라고 말하며 아들의 몸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이 군은 어머니의 이런 살가움이 약간 부담스러운듯 "마, 개안타"를 연발하며 몸을 뒤로 빼기도 했다. 
 간월재 정상에서 주변 경치에 감탄사를 연발했던 배모(16) 군은 마중나온 어머니에게 "이번 캠프에서 뭔가 좀 씻고 온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배 군은 "1박 2일 산행을 하면서 엄마 생각 많이 했다. 앞으로 착해질께 걱정마라"라고 말했다.

 비행 청소년과 함께 한 힐링캠프는 등산 이외의 무언가 특별한 치유 프로그램이 있을 법했으나, 등산, 그것이 전부였다.
 기자는 이 대장에게 힐링캠프의 목적에 대해 물었다. 그는 신선 선(仙)이라는 한자의 뜻을 들며 "사람(人)이 산(山)을 만나 신선(仙)을 이룬다. 척박한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이 인간이 본래 있어야 할 곳인 산에 오면 저절로 마음이 다스려 진다. 이것이 힐링캠프의 진정한 목적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생각보다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이 순수하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왜 이런 길로 빠졌는지 실로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아이들의 마음을 힐링시키고 무언가 느끼게 해주려면, 2박 3일로 산을 타야하지만, 아이들의 체력이 생각보다 약해 1박 2일로 산행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짧은 일정에 대해 아쉬워 하기도 했다.

▲ 힐링캠프 인솔 및 책임 담당자인 이상배 대장.그는 히말라야 산맥과 에베레스트를 포함,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산행을 하는 베테랑 산악인이다. 사진은 이 대장이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인 '몽블랑'에서 찍은 모습(사진: 이상배 대장 제공).

 이 대장은 또한 힐링캠프가 산행 외의 별다른 교육 일정이 없는 이유에 대해 "인생은 예측불허의 연속이다. 자연에 내던져져서 막막한 길을 뚫고 나간다는 것이 산행의 묘미이다. 참가 학생들에게 작지만 약간의 모험을 경험하게 해줌으로써 삶을 더 올바르게 잡아나갈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게 가장 큰 교육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우리나라는 모든 활동에 일정과 계획을 집어넣는 습관이 있다. 막막한 어둠 속에 몸을 내던지는 모험심이 부족하다. 가는 길이 곧 일정이 되는 그 느낌을 아이들에게 느끼게 해주고파 최대한 정해진 계획 없이 산행을 이끈다"고 말했다.
 이 대장에게 힐링캠프 책임을 맡긴 이유에 대해, 양산시 경찰서 관계자는 "이 대장은 우리 양산시가 배출해낸 최고의 산악인으로 평소 청소년 선도에 앞장서왔다.  이 청소년 힐링캠프도 이 대장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이 대장은 2006년 에베레스트 완봉을 몇 년에 걸쳐 계속 성공해낸 공헌으로 대통령 체육 훈장을 받기도 했다.
 청소년 힐링캠프는 양산시에서 주최하고 있는 학교 폭력 근절 및 청소년 선도 프로그램인 '노란 손수건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노란 손수건 프로젝트는 절에서 사찰 생활을 체험하는 템플스테이, 단군신화를 배경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국학'에 대해 배우는 인성 캠프, 그리고 산행을 통해 마음을 치유시키는 힐링캠프의 세 가지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산경찰서가 주관하고, 양산 로타리 클럽이 후원하고 있다.
 프로젝트 이름이 노란 손수건인 이유에 대해, 여성·청소년·아동계 소속 경찰인 유 경위는 노란 손수건이 '용서와 기다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란 손수건이 용서와 기다림이란 의미는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에서 유래한다.
 미국의 어느 죄수가 복역 중에 애인에게 '아직 날 사랑한다면 내가 출소할 때 노란 손수건을 집 앞 나무에 걸어놓아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고, 그가 출소 후 버스를 타고 마을에 도착했을 때, 버스 창 밖 나무들에는 노란 리본이 빽빽이 매여 있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를 주제로 한 미국 팝송,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노란 리본은 지금까지 용서와 화해를 뜻하게 되었다.
 유 경위는 "범죄 청소년들을 용서하고 그들이 다시 건전한 사람이 되길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이 활동을 하고 있기에, 이 프로젝트의 이름인 노란 손수건은 아주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산행이 주로 이루어지는 ‘영남 알프스’는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과 청도군 운문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에 위치한 높이 1000m 이상 되는 7개의 산군(山群)을 묶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이유는 유럽 중남부에 위치한 산맥인 알프스에 비견할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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