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악동 뮤지션, 마르크스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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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악동 뮤지션, 마르크스의 공통점
  • 정태철 시빅뉴스 대표
  • 승인 2013.04.1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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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왕이 사는 런던 버킹검 궁전 광장에 동상 하나가 우뚝 서있다. 영국의 심장과도 같은 그 자리에 서 있는 동상의 주인공은 빅토리아 영국 여왕이다. 영국이 낳은 수많은 왕이나 위인들 중에서 왜 하필 그 자리에 빅토리아 여왕 동상일까? 그것은 아마 빅토리아 여왕 시절에 해가 지지 않은 영연방을 뜻하는 ‘팍스 브리태니카’가 완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영국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 패권을 미국에 넘겨주었고, 20세기 중후반에는 만성적 파업과 과도한 복지로 인한 영국병에 걸려 일본이나 독일에도 경제력이 뒤지게 되었다. 이 때, 등장한 인물이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이었다. 호불호의 논란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영국병을 치유한 덕에 영국은 오늘날까지도 강대국 반열에 서있다.

대처 수상 서거에 즈음하여, 나는 작년 여름 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다시 떠올렸다. 런던 올림픽 개막식은 영국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하나의 드라마 스토리처럼 보여주어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그 속에는 셰익스피어, 미스터 빈, 영국 여왕, 찰리 채플린, 007 제임스 본드, 에릭 크립튼, 비틀즈, 산업혁명, 여성참정권 보장, 노동조합 결성, 101마리 달마시안, 메리 포핀스, 해리포터,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같은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 그리고 문화가 있었다. 그날 영국은 자국이 세계 역사의 중심이었다는 자긍심을 전 세계인들에게 도도히 알렸다.

한반도 크기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 영국의 무엇이 세계 역사를 선도케 했을까?

나는 이것을 화두로 삼아 영국을 여행한 적이 있다. 런던에서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캠브리지 대학이 있는 대학 도시 캠브리지가 있다. 그 도시 관광을 마치고 런던으로 돌아가기 위해 터미널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터미널 앞 너른 잔디밭에서 하얀 유니폼을 입은 노인들이 크리켓 경기를 벌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크리켓은 야구의 모태가 된 스포츠인데, 그것이 탄생한 곳이 영국이란 점이 섬광처럼 내 머리를 스쳤다. 가만히 생각하니, 영국이 발원지인 스포츠 게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축구, 그 축구가 변형되어 미국 3대 스포츠의 하나인 아메리칸 풋볼의 원형이 된 럭비, 신사 경기 테니스, 우아한 귀족 경기 골프 등이 모두 영국의 창작품이다. 기원은 세계 여러 곳에 있었으나 영국인들이 규칙을 정리하여 근대적인 스포츠로 만든 경기로는 하키, 배드민턴, 폴로, 수구 등이 있다고 한다.

스포츠 종목마다 정해진 룰이 있다. 선수들은 그 룰에 따라서 각자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하면서 때론 좌절하고 때론 환희하는 드라마를 연출한다. 스포츠는 그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사회인 것이다. 하나의 스포츠를 고안할 수 있는 능력은 완벽한 사회를 디자인할 수 있는 창의력과 관계가 깊어 보인다. 만약에 IOC가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고 즐기는 스포츠 종목을 공모한다면, 사람들은 과연 무슨 스포츠를 만들어 낼까? 우리가 만든 족구가 있지만, 스포츠라기보다는 단순한 레크리에이션에 가깝다. 이런 생각에서, 나는 영국의 저력을 무에서 한 사회를 만들어 내는 창의력이라고 보게 되었다.

그런데 영국의 창의력은 캐면 캘수록 그 뿌리가 심오하다.

민주주의를 한 번 보자. 군주제는 백성이 왕을 바꿀 수 없는 제도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국민이 통치자를 바꿀 수 있는 제도다. 군주제에서 민주주의를 택하게 된 인류에게 철학적 전기를 제공한 사람은 누구일까? 여기서 우리는 존 로크의 정치사상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로크는 통치자가 피치자의 재산을 보호해주지 않으면 혁명을 통해 합법적으로 통치자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통치자가 잘못하면 인민이 통치자를 바꿀 수 있다는 로크의 아이디어가 미국 헌법에 반영되어 미국식 대의 민주주의가 탄생했고, 프랑스 시민혁명이 불타올랐다. 그 로크가 바로 영국인이다.

자본주의가 영국에서 비롯된 데도 이유가 있다. 아담 스미스는 1776년 ‘국부론’을 출간하고, 국가 통제 없이 인간의 합리성에 경제 활동을 맡겨두면,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의 조화를 이룬다고 했다. 아담 스미스의 이 생각은 자유방임주의라 불리며 자유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원리가 되었다. 그 아담 스미스도 역시 영국인이다.

만유인력의 법칙과 운동의 법칙을 세운 아이작 뉴턴 덕에, 우리는 물체의 운동과 심지어는 태양과 행성들 간의 공전과 자전 원리도 알게 되었다. 그의 물리학은 새로운 자연과학의 패러다임이 되어 오늘날 물질적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주장한 진화론은 수천년 동안 인류를 지배했던 종교적 창조론에 대한 첫 도전이었으며 오늘날 생명유전공학의 원전이다. 이들 뉴턴과 다윈도 모두 영국인들이다.

그러면, 영국의 어떤 환경이 그토록 위대한 창의력을 키웠을까? 이 의문의 답은 간단하지 않지만, 영국인 존 스튜워트 밀의 ‘자유론’에서 희미한 힌트가 발견된다. 밀은 이 책에서 영국 사회의 지배적 사상, 사회적 통념, 다수의 횡포에서 벗어날 자유를 주장하였다. 밀은 모든 인류가 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의견이 다른 단 한 명을 침묵시킬 자유는 없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또한, 제국주의적 침략기인 1895년에 출간된 이 ‘자유론’에는 중국은 권위주의적이고 자유가 없어서 유럽 제국의 침략 대상이 되고 있는데 과거 자유를 보장하던 영국이 오늘날 왜 이렇게 중국처럼 자유를 억압하는지 모르겠다고 밀이 개탄하는 대목도 있다.

더욱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것도 영국인 존 밀턴이 1644년 저술한 ‘아레오파지티카’란 소책자이다. 그래서 나는 영국의 자유에 대한 개방적 전통이 영국 창의력의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고 보니, 독일, 프랑스, 브뤼셀 등 유럽 어디를 가도 급진적 과격분자로 낙인 찍혀 추방당했던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집필하고 생을 마친 곳이 런던이었다. 자본주의의 본산인 영국의 자유라는 토양이 그 자본주의를 뒤집자는 공산주의의 바이블을 집필할 자유도 보장했다는 사실이 우연은 아닐 듯싶다.

그러면 자유와 창의력과는 거리가 먼 교육을 수십년간 답습해온 한국이 오늘날 스마트폰과 K-pop으로 뜨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이유가 무언지 모르지만, 한국도 저력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최근 ‘악동뮤지션’이라는 오뉘가 오디션 프로에서 우승하였다. 알고 보니, 그들은 노래를 작사작곡한단다. 그리고 그들은 몽고에서 선교사업하는 부모 따라 비교적 자유로운 교육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들의 성취에도 자유와 창의력이 기반이 된 듯하다. 한국의 저력이 무언가 있다면, 우리는 거기에 자유와 창의력 기반을 보탰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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