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통합이라는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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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통합이라는 이데올로기
  • 편집위원 양혜승
  • 승인 2017.04.16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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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위원 양혜승
편집위원 양혜승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인간의 머리 속에 감정 컨트롤 본부가 존재한다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 본부에는 불철주야 열심히 일하는 다섯 가지 감정이 존재한다. 영화 속에서 의인화된 이 다섯 가지 감정은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기쁨’과 ‘슬픔’이 주인공 ‘라일리’의 감정 컨트롤 본부를 이탈한다. 영화의 주된 스토리는 ‘기쁨’이 ‘슬픔’을 찾아내어 본부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영화 속에서 ‘슬픔’은 몹시 무기력한 성격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기쁨’이 ‘슬픔’을 데리고 본부로 돌아가는 여정은 몹시 고단하게 묘사된다. 우리는 보통 ‘기쁨’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슬픔’을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여기기 쉽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기쁨’이 ‘슬픔’을 내팽개치고 혼자서만 본부로 돌아가는 일은 상상되지 않는다. 슬픔 없는 기쁨은 무의미할 수 있으며, 슬픔이란 것이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니라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완벽한 인격체란 다양한 감정들을 고루 경험할 때라야 완성된다는 것, 그것이 영화가 보여주는 핵심이다.

뜬금없이 <인사이드 아웃>을 떠올리게 된 건 ‘국민통합’이라는 화두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국민통합이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촛불과 태극기로 나뉜 국민 여론을 한데 모아 이제는 국민통합으로 나가야 할 때라고들 한다. 이제는 분열과 갈등의 장벽을 걷어내고 국민통합에 노력해야 한다고도 한다. 언론에서도 대선 주자들도 한결같은 이야기를 하곤 한다. 진보든 보수든 정치적 지향점에 관계없이 말이다.

국민통합. 일견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여겨진다. 드러내놓고 반대하기 어렵게도 느껴진다. 그 표현이 주는 너무나 긍정적인 뉘앙스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는 모호함의 세계다. ‘통합’이라는 추상명사 또한 그 모호함을 피해갈 수 없다. 사전적으로 ‘통합’은 ‘여러 요소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의미한다. ‘통일’ 혹은 ‘응집’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최근에 언급되는 국민통합이 그런 사전적 의미라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여러 주장이나 견해를 하나로 합쳐서 통일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건 곤란하다. 아니, 위험하다. 자유민주주의는 다원주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견이 함께 공존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상태를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여론을 한 데 모으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국민들의 다수가 탄핵에 반대했다. 하지만 탄핵에 찬성하는 의견도 엄연히 존재했다. 이번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진행될 때에도 탄핵 찬성 의견이 다수였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분명 존재했다. 한 사회에 지배적인 의견이 있을 수는 있어도 통일된 의견이 형성될 수는 없다. 촛불을 쥔 사람과 태극기를 쥔 사람이 함께 존재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강제력이 동원되지 않고서 사회의 의견이 통일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국민통합이라는 모호한 이데올로기는 자칫 위험할 수조차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화두는 ‘통합’보다는 ‘관용’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손에 촛불을 쥘 것인지 태극기를 쥘 것인지는 개인의 양식과 양심에 달렸다. 중요한 것은 어떤 걸 손에 쥐더라도 그 행위가 사회적 약속인 법의 테두리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법의 테두리에서 이루어지는, 양식과 양심의 발로에 대해서는 관용의 원칙이 관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할 자유를 위해서는 함께 싸우겠다”던 볼테르의 정신이 절실한 시점이다(이 말은 프랑스 작가 볼테르가 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근거가 없다는 설도 있다). 사회가 하나의 견해로 통합될 수 있다는 믿음은 어쩌면 그릇된, 때로는 위험한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 차라리 다양한 견해들이 서로 주장되고 대립하는 것이 결코 이상해보이거나 불편하지 않은 사회, 그것이 훨씬 건강한 사회일 거다. 때로는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다양한 가치들이 부딪치는 건강한 사회의 증표다. 건강한 사회가 치러야하는 자연스럽고 마땅한 비용일지도 모른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인간의 인격에는 기쁨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라는 다양한 감정이 함께 공존한다. 그래야만 건전한 인격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견해들이 함께 공존하고 때로는 갈등해야 건강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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