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리족’과 모바일 세대, 그리고 인간소통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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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리족’과 모바일 세대, 그리고 인간소통 부재
  • 장동범 시빅뉴스 편집위원
  • 승인 2013.03.25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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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숙이다”의 경상도 사투리에 ‘수구리’란 말이 있다. 군대 갔다 온 사람들 농담에도 자주 등장하는 이 말에서 나온 ‘수구리족(族)’이 요즘 유행하고 있다 한다. 직역하자면 “고개 숙인 사람들”이란 뜻으로 길을 가든, 친구와 차를 마시든, 부부 간에 밥을 먹으면서든 손 안에 휴대 전화를 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사는 휴대 전화 중독에 걸린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휴대 전화에 대한 용어와 개념 정의는 아직 통일된 게 없지만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대표 주자로 개인 미디어로 까지 진화한 ‘손 안의 인터넷 통신 장비’라는 뜻으로 스마트 폰이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단순한 음성통화에서 출발해 무선 인터넷 망을 통한 각종 정보 검색과 음악, 동영상까지 받아보고 화상통화도 할 수 있으니 시공(時空)을 초월한 그야 말로 스마트한 기기임은 틀림없다.

 한국의 휴대 전화 보급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특히 스마트 폰 보급률은 최근 통계를 보면 휴대 전화 가입자의 67%로 세계 1위라고 한다. 이 같은 수치는 IT 강국답게 휴대 전화나 스마트 폰을 만드는 한국 제조업체들과 통신회사의 집요할 정도로 끊임없는 판촉활동 때문이기도 하다. 울던 어린이도 스마트 폰을 주면 울음을 뚝 그치고 익숙하게 손가락을 스쳐 게임을 하고, 초등학교 학생들은 휴대 전화나 스마트 폰이 없으면 ‘왕따’를 당한다니 어느 부모라고 안 사주고는 베길 재간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세대를 구분하는 말 가운데 영상 매체에 친숙한 비디오 세대에서 이제 휴대 전화에 빠진 세대를 모바일 세대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의 청소년들, 젊은이들이 많이 갖고 있는 스마트 폰이 비용 부담만큼 과연 순기능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염려하는 시각이 많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수업의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눈만 뜨면 찾게 되는 휴대전화는 포털에서 제공하는 흥미 위주의 ‘실시간 급상승 순위’ 내용 검색과, 친구들과 쓸 데 없는 문자 메시지 남발과 댓글로 말 그대로 ‘대화의 감옥’에 살게 한다. 오죽하면 대학 도서관 현수막에는 해마다 독서의 계절에 맞춰 “검색보다 사색을!”이란 문구를 내달았을까?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 안의 풍경은 또 어떤가? 이른바 ‘수구리 족’들이 정수리만 보인 채 휴대 전화에 몰입하고 있고, 길거리에서는 휴대 전화와 연결된 이어폰을 끼고 손바닥 안을 들여다보고 걷느라 교통사고의 위험도 높은 실정이다. 심한 경우 집에서는 부부가 한 침대에서도 휴대 전화로 “자기야 뭐해?”라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고, 아이들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기성세대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모티콘(“ㅋㅋㅋ”,“ㅎㅎㅎ” 등) 같은 부호 놀이 하느라 가족 간에 대화가 끊긴지 오래다. 디지털 멀티미디어 시대에 첨단 통신장비가 오히려 진정한 인간 소통을 막고 있는 셈이다.

 소통의 다른 말인 커뮤니케이션 가운데 인간 커뮤니케이션은 서로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face to face’ 즉 대면(對面) 커뮤니케이션을 기본으로 한다. 이 때 얼굴을 본다 함은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보고 말을 하고 있는데 딴청을 부린다거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실례가 된다. 또 상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대화(dialogue)가 아니라 독백(monologue)이 되고 만다.

 원만한 대화란 상대의 말을 잘 듣고 답하는 식으로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그 만큼 사회생활에서 소통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고, 아무리 통신 수단이 발달해도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대화하는 아날로그적인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섬’ 전문)라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처럼 고립되고 단절돼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그 섬에 가닿음으로써 소통하고 싶은 열망을 표현한 바 있다.

 개인 미디어를 포함한 각종 뉴미디어의 진화는 그 끝을 모를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테크놀로지가 문화도 바꾼다는 ‘기술결정론’적 관점에서 볼 때 손 안의 휴대 전화를 이제 그만 놓아버리자는 구호는 대단히 공허하다. 다만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소통 문제를 고려해, 어릴 때부터 문명의 이기(利器)를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지도해나갈 필요가 있다.

 유달리 춥고 긴 겨울을 보내고 맞은 봄! 자연은 온갖 아름다운 신호를 인간에게 보내고 있다. 손바닥만 들여다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다니기에는 너무 좋은 계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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