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대선과 부산의 혁신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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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대선과 부산의 혁신 권력
  • 칼럼니스트 박창희
  • 승인 2017.04.08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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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리스트 박창희
칼럼니스트 박창희

5월 ‘장미 대선’에 온 나라의 시선이 집중돼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리더십을 부르고 있다. 해방 이후 지속돼온 대한민국의 중추 권력, 기득권 세력의 ‘적폐’를 청산하자는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높다. 시민의 촛불혁명이 만든 놀라운 지형 변화다.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되어 구속되었고, 기득권 세력을 대변해온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은 해체되었다. 역설적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모처럼 국민 통합을 만들어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대통령 탄핵과 파면, 구속으로 ‘비로소 유신이 끝났다’고 환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국가적 위신 추락과 불행이 반전과 전환의 계기를 만든 것도 정치적 역설이다.

나의 관심은 정작 내년 지방선거에 가 있다. 이번 대선 못지않게 지방권력을 바꾸는 지방선거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선은 어떻게 가든, 수구반동으로 엉뚱하게 흐르진 않을 것이다. 시민들의 촛불이 가야할 길을 밝혀놓은 터다. 대선과 함께 개헌 논의가 병행되고 있고 지방선거까지 다가오고 있으니, 올해와 내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골든타임이다. 국가적 운명과 함께 지방의 운명도 판나름 난다.

선거일정을 보면, 오는 5월 9일 대선이 있고, 내년 6월 ‘2018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지방선거에선 광역자치 단체장, 광역단체의원, 기초자치단체장, 기초단체의원, 교육감, 교육의원 등 6개 지방권력 책임자를 뽑는다. 단체장은 내년 7월1일부터 새 임기를 시작한다.

여기에 지방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대한민국 지방의 맏형격인 부산은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권력교체를 준비하고 있는가. 필자가 보기엔 ‘아니올시다’다. 국가적 적폐 청산이 논의되고 있지만, 부산은 기이하게도 무풍지대같은 느낌이다. ‘적폐’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랄까. “누가 적폐이고, 누가 누구를 청산한다는 건가” 하고 되묻는 목소리도 들린다. 혁신을 주도할 시민 세력도 보이지 않는다.

부산이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해운대 엘시티(LCT) 사건을 들여다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해운대의 금싸라기 땅에 토건과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관광 리조트 사업을 추진하면서 정·관·산·언을 망라, 동월할 수 있는 모든 권력을 동원해 이권을 챙기고 나눈 것이 엘시티 사건의 전모다. 여기에 전·현직 부산시장과 핵심 측근, 청와대 정무수석, 국회의원, 금융계 고위직, 지역 언론사 사장 등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관련자 12명을 구속하고 1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힘께나 과시하는 정·관계 고위직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업자로부터 거리낌없이 금품을 받아 챙겨 검은 커넥션이 ‘고질적’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수사과정에서 부산시청과 해운대구청 등은 압수수색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전·현직 시장들의 명예가 추락했다. 엘시티 사건은 한마디로 ‘부산판 토건비리의 백화점 격’이었다. 이것이 부산사회의 숨길 수 없는 실상이자 민낯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엘시티 사건은 부산지역 ‘토호(土豪) 세력’의 존재를 극적으로 환기시킨다. 토호는 고려시대 각 지방에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유력 세력, 일명 호족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향촌에 토착화한 지방 지배세력이다. 이같은 토호 세력이 시대를 건너 뛰어 21세기 대명천지에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냥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선거 등으로 획득한 지역권력을 지역과 공공이 아니라 저들끼리 끼리끼리 밀실에서 나눠갖고 배를 불려왔다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지역의 적폐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모습도 이를테면 유신의 잔재가 아닐까 싶다. 이 점에서 박근혜의 몰락을 유신의 종식으로 보는 것은 섣부르다. 이 나라의 도처에는 전근대적이고 퇴행적인 유신적 행태가 강고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우리들 마음속에 미처 걷어내지 못한 유신적 사고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 적폐가 아닐 텐가.

토호 비스무리한 무리가 권력의 동심원을 만들어 이끌어온 부산이 온전할 리 없다. 내가 알기로, 부산은 해방 이후 한 번도 권력 자체가 혁신적인 적이 없다. 권력은 권력일뿐, 지역 변화의 선봉인 적도 없었다. 반면, 부산의 민중들은 달랐다. 불의에는 일어났고, 바른 길에는 저항의 에너지를 불태웠다. 4·19혁명(1960년)과 부마항쟁(1979년), 6월 항쟁(1987년), 나아가 최근의 촛불혁명은 부산의 민중이 걸어온 자랑스러운 민주화의 노정이다. 부산이 일어나면, 나라가 바뀌었다. 부산이 이만큼 힘을 얻고 자존심을 지키고 사는 건 이들 덕분이라고 봐야 한다.

서울 출신으로 부산에서 20여 년째 문화기획 강의를 해온 한 교수는 “부산은 연줄사회”라고 규정했다. 그는 “K고니 B고니 하며 지독하게 학연을 강조하고, 정치적 신념에 관계없이 자기편만 챙기는 모습들을 흔히 본다”면서 “이런 걸 혁신하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올초 대선 레이스를 뛰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부산에 와서 시민대화 모임을 가졌을 때 한 참석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서울시의 혁신 리더십이 화제입니다. 박 시장님이 (대권이 아니라) 부산시장을 한 번 맡아 지역혁신의 길을 열 수는 없을까요?”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지만 메시지가 실린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혁신’이란 말이 오랫동안 뇌리에 맴돌았다.

부산은 지금 혁신에 목말라 있다. 국가가 새로운 통합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면 지방은 새로운 혁신 리더십을 찾고 있다. 토호 비스무리한 무리에게 또다시 지역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부산이 일어나야 한다. 일어서야 할때 일어서지 않으면 무릎이 썩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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