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부모'가 자녀 망친다...대학생 자녀에게 '휴학 계획서'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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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 부모'가 자녀 망친다...대학생 자녀에게 '휴학 계획서' 요구
  • 취재기자 박영경
  • 승인 2017.03.2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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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된 후에도 자녀에 집착...부모와 떨어지고 싶은 자녀들 스트레스 지옥/ 박영경 기자
자녀를 조종하는 헬리콥터 부모를 연상케 한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도 품에서 떠나 보내지 못하는 ‘헬리콥터 부모’로 인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런 부모들을 가리켜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라 부른다. 자녀 주변을 맴돌며 좀처럼 떠나지 못하는 이들 부모는 미국 중산층에서 많이 나타난다. 헬리콥터 부모는 자녀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청소년기를 넘어 성인이 된 후에도 자녀를 조종하려 든다.

헬리콥터 부모는 자녀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자녀를 과잉 지도하던 싸커맘(soccer mom)의 진화 단계다. 싸커맘과 달리 헬리콥터 부모는 성인이 된 후에도 자녀를 향한 집착을 거두지 못한 채 자녀의 진학 대학, 학과, 직업, 심지어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에까지 간섭하기도 한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는 캥거루족이나 성인이 된 후에도 생활비를 부모에게 지불하며 독립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신캥거루족은 결국 부모가 야기한 결과물이라는 지적이 많다.

강량현(22, 부산시 서구 토성동) 씨는 부모의 지나친 관심에 지친 기색을 보였다. 강 씨는 이번 학기 대학 공부의 적성과 편입 고민 등 여러 가지 문제로 휴학 중이다. 강 씨의 부모는 “도대체 휴학해서 뭘 할거냐, 휴학 기간 동안의 계획서를 작성해 제출하라"며 강 씨에게 면박을 줬다. 강 씨는 “아무 생각 없이 놀겠다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로 부모님이 나를 못 믿는 건가 싶어 속상하다”며 “이제 나도 엄마, 아빠의 딸이 아닌 나의 인생을 좀 살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김태연(25, 경남 김해시) 씨도 휴학에 성공(?)하기 위해 부모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만들어 발표해야 했다. 김 씨는 “여행가기 등 체계적으로 계획을 짜서 발표해야 했다”며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많이 쌓고 싶다고 부모님께 호소했다”고 말했다. 

함지애(22, 경기도 화성시) 씨는 학교가 집과 멀어 학교 기숙사에서 지낸다. 그는 방학 때도 집으로 내려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함 씨는 “통금시간이 너무 빡빡해서 스트레스받는다”며 “통금 시간인 밤11시는 한참 놀 시간인데 나만 그때 집에 가기 위해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눈 딱 감고 그냥 한번 놀아보려 해도 끊이지 않는 전화와 호통치시는 부모님이 무서워 그럴 수 없다”며 “취업도 꼭 집과 먼 곳에서 할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남경화(22, 부산시 중구 대청동) 씨는 “밤에 일어나는 일이 낮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라며 “통금 시간이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남 씨는 “오히려 통금 있는 애들이 한 번씩 통금으로부터 자유로운 날 더 날뛰어서 걱정스럽다”며 “오히려 통금이 없는 친구들은 다음에 또 놀면 되니 아쉬울 것이 없어 적당히 놀다 집에 들어가더라”고 지나친 통제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부모의 품 안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자녀들은 독립한 후 크고 작은 어려움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 무슨 일을 성취해낸 경험이 적어 부모에게 의존적인 성향이 성인이 된 후에도 이어지기 때문. 정하림(22,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씨는 “대학 동기 중에 무슨 일만 생기면 엄마한테 전화해 사사건건 조언을 구하는 친구가 있다”며 “혼자서는 작은 일도 잘 결정하지 못해 가끔 답답하고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박영환(25, 부산시 영도구 신선동) 씨는 이제 막 자취를 시작하는 친구 집에 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박 씨의 친구가 2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혼자 밥을 할 줄 몰랐던 것. 박 씨는 “밥을 냄비에 끓이라는 것도 아니고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넣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것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고 묻자 박 씨의 친구는 “집에 있으면 엄마가 공부만 시키는데 내가 이걸 어떻게 알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박 씨는 “아무리 공부가 중요해도 그렇지 평생 부모가 돌봐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기본적인 생활은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답답함을 표했다.

비정상회담 1화 방송에서 벨기에인 줄리안 퀸타르트가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설명하고 있다(사진: JTBC 방송 캡처).

세계 각국 사람들이 출연하는 JTBC 토론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 1화 방송에서도 헬리콥터 부모와 유사한 문제를 시사한 바 있다. 그들은 헬리콥터 부모에 대해 “부모가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기 때문”, “자신의 바람을 자녀에게 투영한 결과”라며 출연진 중 다수가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학계에서는 헬리콥터 부모는 자녀 양육에 과도한 집착 증세를 보여 자녀의 독립적 성장을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부산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 김종희 교수는 자녀가 성인이 돼서도 자녀의 생활에 간섭하는 것은 오히려 자녀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자녀가 유아기 때는 어느 정도의 보호가 필요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자녀가 스스로 가치관을 확립하고 자신을 통제할 수 있도록 자녀의 의사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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