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어디까지 가봤니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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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어디까지 가봤니 part 2
  • 취재기자 김경민
  • 승인 2013.01.21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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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이 현실이 되다

시드니행 비행기로 갈아타는 순간부터 다른 분위기의 문화가 엄습했다. 일단 기내 서비스를 하는 승무원들이 모두 정장 유니폼을 입은 40~50대 아저씨들이었고(아마 콴타스 항공사의 특징인 듯), 승객들도 이제는 백색이나 흑색의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기내 주위를 살피고 있는 와중에 앞 좌석에 노년의 백인 부부가 앉았다. 남편 분의 데오도란트(땀 냄새를 제거, 억제하는 제품) 냄새가 10시간의 비행 시간 동안 내 정신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기내식을 스테이크로 먹었는데, 내가 소고기를 뜯고 있는 건지, 데오도란트로 양념한 고무를 뜯고 있는 건지 구분이 안 갔다. 그 동안의 걱정과 백인 노신사분의 코를 찌르는 데오도란트 냄새로, 덕분에 장거리 비행 시간 동안 깊은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일어나 보니 비행기는 호주 대륙 위를 날고 있었다. 창밖에는 광활한 대륙과 계곡, 구름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비행 시간도 1시간 남짓 남아 있었고, 승무원들이 입국 심사 카드를 나눠줬다. 그 동안의 패기와 열정과 자신감은 점점 사라져가고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온 몸을 감쌌다. 차라리 이 비행기가 영원히 착륙하지 않기를 빌었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꿈같은 외국 생활이 이제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순간이었지만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비행기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치 치킨게임의 핸들이 없는 자동차처럼 한 치의 주저함이나 망설임 없이 내 달리고 있었다. 더 이상 내겐 거부권이 없었다. 이미 마음의 준비는 오래 전부터 끝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긴장과 설렘, 걱정, 두근거림 등의 오만가지 복합된 감정을 추스릴 수가 없었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고 창밖의 대 자연의 풍경에 애써 마음을 맡겨보아도 쉬이 다스려지지가 않았다. ‘이게 여행과 현실의 차이구나......’라고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조금 더 비행기 안에 있고 싶었지만 오히려 비행기는 예정 시간보다 몇 십분 일찍 도착하고 말았다. 나는 긴장하지 않은 척 당당하고 씩씩하게 내 물건들을 챙겼다. 공항을 빠져나오는 것은 굉장히 쉬웠다. 왜냐하면 앞 사람만 따라가면 되니까. 그렇게 걷고 걷다보니 수화물을 찾는 벨트에 도착해서 내 가방을 찾았다. 손잡이 부분에 찾기 쉽게 손수건으로 미리 매듭을 지어 놓아서 가방을 보자마자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또 다른 사람을 따라가다 보니 입국 심사장이 나왔다. 흑인 아저씨가 “너 영어 할 줄 아니, 모르니?”하고 물었는데 “조금요”라고 말했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한국이나 외국이나 속담은 시공간을 넘어 적용되는 듯했다. 그 아저씨는 내 표정과 머뭇거림 등을 캐치하고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입국 심사 코너로 갈 것을 권했다. 그렇게 무사히 대합실까지 빠져 나왔다.

입국 심사의 미션을 거친다고 잠시 잊혀지고 있었던 두려움이 대합실로 나옴과 동시에 긴장이 풀리면서 다시 엄습했다. 생각이 필요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의 구체적인 계획. 일단 벤치에 앉아 계획을 짜보기로 했다. 그런데 도무지 공항을 빠져나가기가 두려웠다. 그 자리에서 앉은 채로 2시간을 멍하게 보냈다. 그리고는 결심했다. ‘일단 시티로 간다.’

호주의 공항 직원들은 한국이나 일본처럼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셔틀버스 표 한 장을 달라고 카운터에 앉은 여자 직원에게 말했다. 그녀는 굉장히 불쾌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무슨 말이냐고 되묻고, 되려 발음이 안 좋다고 못 알아 듣겠다며 내게 핀잔을 줬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개념 없는 직원이었다. ‘엥? 호주는 다 이런가? 이봐, 난 손님이라고......’ 그때는 눈 앞에 닥친 상황들만 해도 감당하기 벅찼던 호주의 첫날이라 싸울 힘도 없었다. 오직 내 머리 속에는 ‘시티로 간다’는 생각으로만 꽉 차 있었다.

셔틀버스 운전 기사는 필리핀 아저씨였다. 보자마자 처음 물어 보는 게 “웽꼬잉?” 이었다. 억양이 너무 특이해서 영어인지 필리핀어인지 몇 번을 들어도 도대체 구분이 가지 않았다. 내가 하도 못 알아 들으니까 옆에 있던 중국 여자가 'whre are you going?'이라고 친절히 설명해줬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 하는데도 내게는 힘든 과제의 연속이었다. 나는 기사 아저씨께 구글 지도에서 미리 검색해 두었던 시티 안의 백팩커스(여행자 숙소) 이름을 말했다. 아저씨는 듣자마자 “오께 오께(OK OK)” 하더니 숙소 정문에 나를 내려 주었다.

컴퓨터 사진으로 접했던 거리와 숙소의 건물, 간판이 보이니 무척 반가웠다. 탈도 많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목표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데에서 나름 스스로 뿌듯했다. 카운터에 카메론 디아즈처럼 생긴 금발의 미녀가 체크인을 도와주었다. 숙소의 분위기는 정말 이국적이었다. 힙합 음악이 흘러나오고, 팬티만 걸친 맨발의 남미 아이들, 서핑보드를 든 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청년, 자신의 몸보다 큰 배낭을 맨 유럽소녀. 그리고 그 바비큐 소스 같은 특유의 냄새. 모든 것이 새로웠다. 마치 내가 미드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최대한 돈을 아끼기 위해 가장 싼 방으로 달라고 했고, 그래서 머무르게 된 방이 36인용 2층 침대 방이었다. 30명이 넘는 사람이 함께 한 방에서 투숙해 본 적은 군복무 시절, 그것도 신병교육대 이후로 처음이었다. 게다가 남녀 혼숙.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는다고 내 몸 하나 누울 자리가 절실했던 나는 그때는 그마저도 고마웠다.

내 전 재산인 가방과 물건들을 도난당하지 않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자전거 열쇠로 가방을 침대 다리에 묶어두고 숙소 밖으로 나왔다. 가장 처음으로 할 것이 핸드폰을 만드는 일이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통화나 비즈니스, 앞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인간관계를 위해서 전화는 필수이다. 고맙게도 호주는 PRE-PAID 폰이라는 것이 있는데 쉽게 말하면 선불요금제라고 보면 된다. 단말기를 구입하고 선불 충전을 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통신사에 가입하고 월 단위로 요금을 내는 방법도 있지만 보통 워킹홀리데이 비자나 학생비자, 여행자들은 PRE-PAID 요금제를 선호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싸니까. 또 10달러에 여러 가지 옵션을 선택하여 충전할 수 있는데 6번 옵션은 국제전화 전용 옵션이다. 무려 10달러(원화 11000원 정도) 충전에 200분이나 한국으로 통화할 수 있다(옵터스 통신사 기준).

충전을 하고 먼저 가장 걱정하고 있을 집에 전화를 걸었다. 하루 전에 함께 있었던 가족이었는데 1년은 떨어져 지낸 것처럼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막상 통화를 하니 덤덤한 경상도 남자의 말투는 쉽게 고쳐지지가 않았다. 굉장히 떨리고 두려운 상태였지만 어머니에게는 내색하기 싫었다. 그래서 ‘잘 지내고 있고 걱정할 필요없다’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애써 덤덤하게 통화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오래 통화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약해질까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눈물이 났지만 꾹꾹 눌러 담았다.

식사는 세계 어느 곳에나 있는 가장 만만한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에서 해결했다. 그리고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PC방으로 향했다. 시드니에는 호주에서 가장 많은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영어 한마디를 못해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몇몇 사람들은 시드니는 그냥 한국의 이태원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도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보면 가장 먼저 들리는 언어는 당연히 영어이고 두 번째는 중국어, 그리고 세 번째가 한국어였다. 거리 곳곳에 한글 간판들이 즐비했고 한국인처럼 생긴 동양인을 잡아 세우고 한국인이냐고 물으면 10명에 9명은 한국인이었다.

그렇게 한국인이 많이 있다는 것에는 장단점이 존재한다. 먼저 단점은 영어라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살기에는 최악의 환경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외롭거나 힘들면 사람에게 의지하게 된다. 그런데 당장 옆에 마음 속 깊은 이야기까지 상담할 수 있는 우리 동포나 친구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것은 또 자연스럽게 영어를 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결과를 만든다.

또 한국인들끼리 구성한 사회 공동체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호주 최저 임금은 시간당 15달러(세금포함) 정도인데 한국 고용주들이 불법으로 세금을 내지 않고 한국인 직원들을 고용해 시간당 9~10달러 정도의 일명 캐쉬잡 형태의 편법을 하는 것이다. 이는 호주 대도시의 한국인 운영 상권에 거의 일반적인 추세로 자리 잡았다. 그것도 고용 계약서나 법적인 문서들이 존재하지 않는 형태의 고용을 하기 때문에 9~10 달러의 임금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고용주들이 허다하다. 이는 호주의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만들기에 민폐를 끼치는 행위로써 호주 내 한국의 글로벌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으며 호주에서 거주하는 한국인들 간의 불신 또한 높이고 있다.

그렇다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 공동체는 제법 끈끈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매주 마다 여러 권의 다양한 정보지들을 발행하고 있다. 그 정보지 안에는 중고품 매매부터 부동산, 자동차, 여행, 한인 상점, 구인광고, 법적인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변호사 사무실의 광고까지 호주 내 한국인을 위한 모든 정보가 총 망라되어 있다. 이 정보지들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대부분의 상점에서 무료로 배포되고 있다. 나와 같이 호주 내 인맥이나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처음 시작을 정보가 많은 한인들에게서 얻으면서 적응해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영어가 주 목적이라면 시드니를 피할 것을 적극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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