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속 울창한 ‘대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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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속 울창한 ‘대나무숲’
  • 취재기자 구성경
  • 승인 2013.01.21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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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다 풀어내지 못할 때가 있다. 자신의 상황을 전부 설명할 수도 없고 털어놓을 상태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그것이 사회적으로 약자인 ‘을’의 입장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140자 단문으로 일상의 작은 이야기를 그때그때 올리며 서로의 의견, 생각,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트위터’에 이러한 ‘을’이 모여 공개적으로 지지를 얻어내고 서로 공감하는 계정이 등장했다. ‘대나무 숲’이 그것이다.

▲ 출처 = 트위터 속 'oo 옆 대나무 숲' 계정들 캡쳐
트위터에 9월 12일 새롭게 등장한 ‘대나무 숲’은 급속도로 확신되어 현재 100여개 정도의 계정이 생성되었다. 트위터의 주요 기능은 관심이 있는 상대방을 뒤따르는 ‘팔로우(follow)’라는 기능이다.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을 ‘팔로어(follower)’로 등록하여 실시간으로 정보나 생각, 취미, 관심사 등을 공유한다. 하지만 대나무 숲은 트위터의 대표적인 기능인 ‘팔로우’와 ‘팔로어’의 개념을 없애버렸다.
대나무 숲은 비밀번호를 공유해 누군가를 ‘팔로우’할 필요 없이 한 계정에 여러 사람이 접속해 글을 남기는 방식이 이용되며 겉으로 보기에는 단 한 명이 작성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모든 대나무 숲의 소개 글을 잘 살펴보면 “실명 및 이니셜 사용을 금합니다” “서로 감정 상하지 말고 사용합시다” 등의 글이 쓰여 있다. 이것은 이용자들이 특정 인물이나 업체의 실명을 언급하지 않으며, 원색적인 욕설을 자제하자는 것으로 어느 샌가 대나무 숲의 암묵적인 원칙으로 통용되고 있다.

대나무 숲 열풍은 사회적 약자 그룹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트위터의 쌍방향성과 개방된 공간이라는 장점에 익명성을 더하여 서로의 지지도 받아내고, 비슷한 직업이나 관심 분야에 대하여, 대나무 숲은 서로 공감하고 개선해 나가고자 하며, 스트레스를 풀어버리고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디자인 회사 옆 대나무 숲(@bamboo20120913)에는 “대나무 숲 은 업계 힘든 점, 다른 데서 못하는 소리 늘어놓으면서 디자이너들이랑 공감하고 위로도 받고, 같은 직종 종사자들에게 좋은 자료도 공유할 수 있고 너무 좋네요!” 라는 의견이 올라왔다.

특히 성소수자 대나무 숲(@lgbt8893)의 경우, 이것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라는 두려움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고충을 위로해주는 계정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채플 시간에 동성애 비하발언을 듣고 내가 죄인인가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저는 지금 잘못하는 게 아니죠?”와 같은 개인 계정에서는 볼 수 없는 넋두리가 특히 많은 공간이다.
대나무 숲의 시초는 출판업계의 내부고발 기능을 하던 ‘출판사X’(@excfex) 계정이 사라지고 ‘출판사 옆 대나무 숲’(@bamboo97889) 계정이 문을 열면서부터이다. 이후 ‘우후죽순’처럼 ‘OO 옆 대나무 숲’ 계정이 생겨났다. 정규직 전환만을 바라보는 인턴, 휴대폰은 쳐다도 보기 싫은 IT회사 직원, 명절날 특집방송으로 고향에도 못가는 방송국 직원들 등이 대나무 숲에 모여들었다 그 외에도 며느리, 대학생, 백수, 성노동자, 성소수자를 위한 대나무 숲도 생겨나고 있다.

‘대나무 숲’을 주목 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을’들의 넋두리가 사회적인 힘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시간강사들이 주로 찾는 ‘우골탑 옆 대나무 숲’(@bamboo1905)에서는 학계에서 만연한 표절 관행을 폭로하자는 논의가 벌어졌으며, ‘출판사 옆 대나무 숲’에는 “출판 노동자의 임금과 근무환경 실태조사를 해 달라”는 글에 언론 노동조함 서울 경기지역 출판 분회(@happybooknodong)는 “조만간 ‘출판 노동 가이드북’ 책자를 발간할 예정이며 실태조사도 하고 싶다”고 참여를 당부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나무 숲의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나무 숲’ 트위터의 익명성을 이용해 누군가 악의적으로 업계 종사자를 사칭하거나 특정 인물을 향한 모욕적인 비난을 쏟아낼 경우 막을 방법이 없다. 초창기 ‘출판사X’(@excfex)는 노골적인 언사로 사실상 비난을 받고 있는 회사가 드러나면서 반강제로 계정이 사라진 케이스다.

디자인 회사에 근무 중인 김은정(22) 씨는 “어쩌다 알게 되었지만 ‘디자인회사 옆 대나무 숲’을 자주 이용한다. 같은 업계 종사자들만 공감이 가능한 상사 욕부터 회사의 모순적인 구조까지 전부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라 좋다”고 했다.

대나무 숲은 어찌 보면 ‘뒷담화’를 위해 만들어진 계정이다. 이전엔 술자리에서나 오고갈법한 담화가 사람들의 힘을 얻기 시작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사회적 변혁을 불러오기도 한다. 대나무 숲 계정 속에서는 가벼운 가십부터 묵직한 사회 이야기들로 넘실거린다. 어떠한 요구든지 140글자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 속에서 대나무 숲으로 모여든 ‘을’들은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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