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g the 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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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g the dog
  • 부산광역시 윤예슬
  • 승인 2013.01.2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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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득권층이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사실을 무마하고자 언론과 방송을 이용해 국민에게 거짓을 보도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것도 실제 있는 일을 부각시킨 것이 아닌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고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화면을 마치 진짜인 양 보도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생길까. 바로 영화 웩더독(wag the dog)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영화는 “개는 왜 꼬리를 흔드는 걸까? 그것은 개가 꼬리보다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꼬리가 개를 흔들어댔을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1998년 9월 미국에서 개봉된 작품으로, Larry Beinhart의 원작 ‘American Hero'를 극화한 것이다.
영화 제목 웩더독(wag the dog)의 뜻은 ‘꼬리가 개를 흔든다’라는 의미로 주객전도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정치적으로는 위정자가 국민 혹은 여론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연막을 치는 행위를 가리킨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영화, 과연 어떤 스토리로 흘러갈까.
대통령 선거 D-12. 백악관을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는 사건이 발생한다. 대통령이 백악관에 견학 온 걸스카웃 학생을 성추행한 것이다. 현직 대통령의 재선이 어렵게 되자, 백악관 참모진은 정치 해결사 브린(로버트 드 니로)을 백악관 밀실로 불러들인다. 브린은 대처방안으로 미국 참모진이 미국 국민들에게 생소한 알바니아를 적대국으로 포장하고 反알바니아 감정을 고취시키는 비상책을 강구한다.

브린의 계획은 적중했다. 언론에서는 B-3 폭격기의 전진배치와 군장성들의 주둔지 이동에 관한 뉴스가 연일 속보로 보도되고 전쟁발발 가능성은 갈수록 고조된다. 한편, 급박하고 생생한 전쟁 상황을 연출하고 영상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브린은 헐리우드의 유명한 제작자 모스(더스틴 호프만)의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모스는 할리우드의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총동원해 긴박한 전쟁 현장을 재현하고 이 모든 가상 시나리오는 TV를 통해 방송된다.

뉴스가 보도된 후, 백악관의 예상대로 성희롱 사건은 무마되고 국민들의 관심은 전쟁으로 쏠린다. 그러나 반대 후보 진영에서 이를 알아차리고 대통령의 성추행 사건이 재 이슈화 된다. 브린은 두 번째 가상 시나리오를 기획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전쟁 후 알바니아에 억류된 가상의 군인 슈만을 전쟁 영웅으로 만들어 다시 여론의 관심을 끌어 모으려는 계획이었다. 브린은 슈만에게 '헌신발'이란 별명을 붙여주고 슈만과 관련된 각종 보도성 행사를 마련하여 국민들의 동정 여론을 들끓게 하는데 성공한다.

자연히 섹스 스캔들은 잠잠해지고 대통령의 지지도는 급상승한다. 슈만을 구출하라는 국민들의 여론이 확산되고 브린은 슈만의 미국송환 계획을 실행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소환 도중, 예기치 않은 사고로 슈만이 죽자 브린은 또 한 번 슈만의 죽음을 국가적 영웅의 죽음으로 위장한다.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은 89%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되고 희대의 사기극 '대통령 만들기' 작전은 종결된다.
영화에서 현직 대통령이 걸스카웃 학생을 성추행하고도 89%라는 높은 지지율로 대통령에 재선됐다. 충격적이다. 이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들은 가상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모든 사기극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현 대통령을 대통령이라 생각하고 산다는 것이 더욱 무섭고 끔찍하다. 물론 이것은 영화 속 이야기다.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면이 있을 수 있지만 영화는 영화 일뿐이라고 넘기기엔 뭔가 찜찜하다. 이 영화는 현실 속에도 이런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고 있다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갑자기 떠오른 것은 바로 ‘BBK' 사건이었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BBK 사건에 대해 많은 얘기가 오갔고 언론 또한 그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지금와서 BBK 사건을 떠올려보면 이 사건보다 다른 뉴스가 떠오르진 않는가. 필자는 BBK 사건보다는 서태지, 이지아와 관련된 사건이 더 빨리 떠올랐다.

그랬다. 당시에도 사람들은 BBK보다는 서태지, 이지아 관련 뉴스에 더욱 큰 반응을 보였다. 이것이 바로 언론의 웩더독(wag the dog)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큰 사건을 가리기 위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크게 부각시켜 중요한 사건을 가리는 것, 이것이 바로 언론의 연막작전인 것이다. 물론 당시 언론이 의도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을 둘러싼 일보다 연예인을 둘러싼 결혼 스캔들이 더욱 기억에 남을 만큼 언론이 어떤 것에 더욱 주목하느냐, 어떤 것을 대중들에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짐은 알 수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TV, 인터넷, 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의존해 산다. 이러한 사실은 어느 순간 너무나도 당연해졌다. 우리는 오로지 이런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미디어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는 사실들이 모두 사실일까. 'wag the dog'이라는 영화는 미디어를 통해 본 세상 모습의 진실성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이 영화의 장르가 코미디임에도 웃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론 파업 등 언론의 위상이 떨어진 지금, 웩더독(wag the dog)과 같은 현상은 사실 먼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현실에 일어나지 않도록 수용자는 능동적인 수용자로, 언론은 언론으로써의 사명감을 하루 빨리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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