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시작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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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시작과 끝
  • 칼럼니스트 정영선
  • 승인 2017.03.1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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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정영선
소설가 정영선

영화 <단지 세상의 끝>을 봐야겠다고 마음먹고도 가까이 있는 영화관에서 상영이 끝날 때까지 보지 못했다. 약간 아쉽긴 하지만 꼭 봐야 할 필요는 없으니,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었다. 그런데 결국 집에서 멀리 떨어진데다 밤 8시 가까운 시간에 딱 한 번 상영하는, 문화회관 근처의 국도예술 극장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며칠 전 호주에 사는 시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잘 있다고 어서 끊으라고만 했다. 거실에 있던 나는 TV 음량을 좀 줄였다. 그 사이에 전화는 끊겼는지 조용했지만 나는 곧 다시 전화가 오리라고 예상했다. 전화는 생각보다 더 빨리 울렸고 어머니는 좀 더 날카로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시누이가 뭐라고 했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높아졌다. 필요한 게 뭐냐고, 다 해주겠다고 안 하나? 왜 이리 귀찮게 굴어! 그 소리와 함께 전화는 끊기고(어머니가 끊은 것 같았다) 방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방에서 다 나오시기도 전에 다시 울렸다. 이번엔 내가 받았다. 시누이는 왜 언니가 전화를 받냐고 묻기부터 했다. 나는 어머니가 금방 밖에 바람 쐬러 갔다고 둘러댔다. 그리고는 왜 그렇게 늙은 엄마를 괴롭히냐고 물었다. 그때 왜 그랬냐고 했더니 엄마가 그런 적 없다 하잖아요. 시누이는 여전히 조금 흥분한 상태로 그때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 그 영화를 보러 굳이 그 먼 곳까지 간 건 시누이의 전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지 세상의 끝>에는 가족과 왕래를 하지 않고 간간이 짧은 엽서만을 보내는 작가 루이가 있다. 불치의 병에 걸린 그는 그 사실을 직접 말하고 싶어 12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가족들은 루이를 맞이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는데 루이는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온다. 여동생은 그 사실이 무척 섭섭하다. 미리 연락하면 마중을 나갔을 것이고 가족이란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동생은 잘 나가는 오빠가 자신과 거리를 둔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형은(원작에서는 루이가 형인데) 어머니와 동생을 자신에게 맡기고 루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면서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서, 말을 곱게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미 가족을 향하는 마음의 문은 열리기도 전에 닫혀버린다. 사실 그들은 어떻게 열어야 하는 것도 모르는 듯 했다.

루이는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하지도 못하고 형의 재촉으로 집을 떠난다. 어머니는 다음에 오면 음식을 더 많이 준비하겠다고 한다. 루이는 어머니의 부탁대로 여동생에게 언제든지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한다. 어쩌면 그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맘은 있어도 불가능한 약속임을 루이도 관객도 알 수 있다.

시누이가 집을 나간 건 고양이 때문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시누이가 기르는 고양이 두 마리를 학대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단호하게 학대한 적이 없다고 했다. 시누이에겐 고양이에게 지르는 고함 소리와 가벼운 발길질이 엄청난 학대로 보였을 것이고 어머니는 짐승에게 그 정도도 안하면 키울 이유가 없다고 맞서던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날 시누이가 고양이 한 마리를 더 데리고 왔다. 그날 시어머니는 도저히 못산다며 짐을 싸서 우리 집으로 왔다. 어머니와 헤어진 몇 달 뒤 시누이는 호주로 떠났다. 떠난 뒤 5년이 넘었지만 딱 한 번 다녀갔다. 그때도 <단지 세상의 끝>처럼 몇 마디 하다 끊기고 겨우 또 몇 마디하고. 그러다 누군가 답답하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누군가는 호주로 가라고 누군가 손을 내저었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말을 한 자신이 싫어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간간이 짧은 엽서를 보내다 자신의 죽음을 전하러 집으로 왔다가 결국 그 말을 전하지 못하는 루이에게 가족이란 무엇이었을까. 루이는 집을 나갈 이유는 셀 수 없이 많고 집으로 돌아올 이유도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이야말로 가족에 대한 적절한 정의라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것, 그리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족의 힘이 아닐까.

가족이 아니라 가족 이데올로기가 문제라는 말이 생각난다. 가족은 서로 사랑하고 희생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가족 이데올로기이다. 그런데 그 이데올로기 속에는 얼마나 많은 폭력과 차별이 내재해 있는가. 시누이 역시 어머니의 아들 중심 가치관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그 갈등이 고양이로 인해 폭발한 것이었다. 아들이 가족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한발만 물러나도 딸과의 불화는 없었을 텐데…. 휴가 내서 집에 놀러오라는 말로 전화를 끊자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쉬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아직도 어머니는 시누이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걸 이해하는 건 아니다.

그건 루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끝까지 루이가 집을 떠난 이유를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일까. 어쨌든 집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지만, 돌아올 이유 역시 셀 수 없이 많은 건 가족뿐인 것 같다. 시누이의 전화는 루이가 보내는 엽서와 같은 것이다. 그러니 곧 돌아올 것이다. 돌아온다 해서 갈등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조금 갈등이 있으면 어떤가. 가족은 세상의 시작이고 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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