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0일, "친구야, 이제 술이나 한잔 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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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0일, "친구야, 이제 술이나 한잔 하자구"
  • 편집국장 강동수
  • 승인 2017.03.11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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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강동수
편집국장 강동수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했다는 뉴스를 들은 것은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자리를 잡자마자 서둘러 휴대전화의 TV 화면을 켜니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이란 굵은 활자가 눈에 들어왔다. 옆자리에 앉은 40대 남자가 내 휴대전화를 기웃이 들여다보더니 감회어린 목소리를 냈다. “마침내 대통령이 물러나는군요!” 그러고는 자기 휴대전화로 누구에겐가 ‘카톡’을 보내는 것이었다. ‘탄핵 확정!’

예상했던, 혹은 기대(?)했던 결말이었는데도 머리가 잠깐 멍해졌다. 탄핵이 인용되면 후련하고 기쁠 것이라고 예상했던 터였다. 그런데, 꼭이 기쁘다기보다는 다행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안도감이 천천히 내려앉는 가슴 한 구석을 비집고 ‘착잡함’이란 감정도 스며들었다.

지하철을 탄 내내 휴대폰으로 기사를 검색했는데 맨 먼저 시선을 붙잡은 것은 ‘박근혜 전(前) 대통령’이란 문구였다. 탄핵 선고와 동시에 대통령직에서 파면됐으니 ‘전’이란 글자가 들어가는 게 당연한데도, 그 글자 하나가 묘한 감회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글쎄, 이 ‘전’ 자 하나 새기려고 지난 10월부터 근 5개월 동안 우리 사회가 겪어야 했던 온갖 혼란과 내홍이 되새겨졌다. 추운 거리에서 떨면서 촛불을 들고 ‘탄핵 가결’을 외쳤던 시민들의 모습도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 갔다.

지하철에서 내려 학교로 갔다. 평소엔 수업 시간에 일체의 정치적 발언을 삼가왔지만 오늘은 바로 강의를 시작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학생들에게 대통령 탄핵이 가결된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겨우 30분 전에 발표된 사안인데도 대부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젊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된 것은 한편으론 착잡한 일이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역사적인 사건, 기념비적인 사건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판결은 그 어떤 절대 권력도 국민을 끝내 이기지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생생히 입증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제1조가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비록,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국민의 자부심에 상처를 주었고, 국제적으로 한국의 위신과 체모를 구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국이란 나라가 평화 속에서 민주주의를 가꾸고 지킬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젊은 학생들은 조용히, 그러나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주시하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런 당부도 했다.

“어쨌거나,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국민에 의해서 끌려내려 온 사태는 불행임에 틀림없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에는 나 자신과 여러분을 포함한 국민 모두의 책임도 있다. ‘어느 인간을 뽑으나 정치인이란 다 그렇고 그런 사람이 아니냐’, ‘나는 정치 따위엔 관심이 없다’며 투표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탓이다. 자신의 정치적 의무를 잠재워 놓고 과연 어떤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겠느냐. 젊은이들이 투표를 외면했기에 이렇게 오랜 시간 홍역을 치르고 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았느냐. 이런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이제부턴 투표부터 열심히 하자.”

한 5분쯤 일장연설(?)을 펼쳤는데, 다들 수굿이 경청해 줘서 고마웠다. 그래도 공연히 객쩍은 ‘꼰대’ 소리를 한 게 아닌가 면구스러워져서 서둘러 강의를 시작했다.

수업을 마치고 거리를 나와 새삼스런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시점인데도 세상이 너무나 차분하고 조용해서 오히려 의아할 정도였다. 사람들의 표정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지는 않았다. 자동차는 여전히 씽씽 달리고, 부지런히 전단지를 행인에게 나눠 주는 아주머니도 하루의 생계를 잇는 일 말고는 다른 일엔 별 관심이 없다는 태도였다. 혼자만의 생각일까, 그래도 세상은 어제보다는 훨씬 희망차 보였고,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살도 한결 따스했다.

“그래도 잘 결말이 났다. 다행이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며 내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정말로 마음 한편이 따스해져 왔다. 문득, 나 자신이 그 일원인 우리 국민들이 정말로 현명한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수십 년 사귄 이름 없는 친구에게 국정을 송두리째 맡겨 분탕질을 치게 만든 일은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재벌들과 결탁해 뒷배를 봐준 대가로 수백억 원을 받아내고, 정부 요직에 제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끼워넣고, 말 안 듣는 관료는 잘라내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들의 이름을 적어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지원금 수혜대상에서 빼내고…. 게다가, 제 딸을 위해 대학의 학사관리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재벌들에게 제 딸이 탈 말을 사 내라고 겁박한 일은 해외토픽 감이었다.

늦었지만 그래도 이런 일이 바로잡혀서 다행이 아닌가. 민주공화정의 기본 원칙이 훼손된 사태를 방치했더라면 앞으로 이보다 더한 일이 터져도 바로잡을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나라의 뿌리가 차츰차츰 썩어갈 수도 있었으리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모골이 송연하지 않은가. 국민이 들고 일어나서 민주공화정을 끝내 지켜낸 것은 다시 생각해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번에 헌법재판소도 큰일을 해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을 소극적으로 해석한 것은 한편으론 아쉽지만, 탄핵 찬반 양측에서 쓰나미처럼 밀려온 엄청난 압력을 이겨내고 법치주의에 입각해 공명정대한 판단을 한 것은 평가받을 일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대목은 이 모든 험난한 과정을 일체의 폭력적 사태 없이, 평화와 질서 속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이뤄냈다는 대목이다. 시민들의 유일한 무기는 어둠을 밀어내는 촛불 한 자루이지 않았던가. 광화문거리에서, 서면거리에서, 충장로에서 시민들은 함께 구호를 외치고, 함께 행진하고, 함께 노래했다. 때로는 함께 춤추기도 했다. 시위와 평화, 집회와 축제라는 상반된 개념의 단어가 한데 묶인 것은 세계 시민혁명사에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독재 권력의 총탄 앞에 수많은 학생들이 피 흘린 끝에 쟁취한 4.19의 승리, 최루탄과 페퍼포그 가스를 뚫고 항복을 얻어낸 6.10의 추억도 소중하긴 하다. 하지만, 이번엔 최루탄 한 방, 물대포 한 줄기 없는 가운데 장장 5개월 간의 대규모 집회가 끈질기게 이어졌다. 그리고 국민들은 불투명한 정국 속에서도 인내를 가지고 헌법 질서 내에서 헌법 규정대로 ‘시민혁명’을 이뤄냈다. 그러니 내 자신이, 내 이웃이,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가 자랑스러울 수밖에.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겼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닐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또 두어 달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할 것이다. 탄핵 기각을 주장했던 이른바 ‘태극기 시민’들의 실망은 적지 않을 것이다. 글쎄, 그분들도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의 일부이고 보면 그분들의 견해도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 아닌가. 하지만, 실망이 지나친 나머지 그분들이 헌법재판소의 권위와 재판관들의 판단을 통째로 부정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평화 속에서 민주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펼쳤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분열 대신 다양성을, 갈등 대신 건전한 경쟁을, 독선이 아닌 조화를, 마침내 진정한 ‘대동(大同)’의 세상을 이루는데 함께 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정치인, 특히 대권주자들에게도 한 마디. 훼손된 민주공화정을 복원할 책임이 이제 당신들에게 떨어졌다. 지난 몇 달 동안 국민이 찬바람을 무릅쓰고 거리에 나선 것은 당신들에게 ‘정권’이라는 떡을 안겨주기 위해서가 아니란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행여 정권욕에 눈이 어두워 정국을 혼란시키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언동을 해서는 유권자의 매서운 심판을 받을 것임을 기억할 일이다. 우선 정국 정상화를 위해 협력하고 머리를 맞대 지혜를 모으라. 그리고 질서 있는 경쟁에 나서라. 이제 국민의 시선은 당신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어쨌거나 그동안의 긴장을 풀고 오늘 하루만은 안도감과 행복감 속에 마음 편히 쉬고 싶다. 글쎄, 지난 가을과 겨울의 고생을 안주 삼아 가볍게 술이라도 한 잔 걸치고도 싶다. 우리 모두 그럴 만한 자격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새로이 다가올 희망의 시간에 축복의 기도를 올리고도 싶다. 

문득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 속의 그는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약속 없어? 없으면 술이나 한 잔 하자구.”

2017년 3월 10일, 우리 헌정사의 기둥에 그 흔적이 굵게 새겨질 초봄의 저녁나절, 기울어 가는 햇살이 따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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