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제보복 자초한 아마추어 한국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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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경제보복 자초한 아마추어 한국 외교
  • 편집국장 강동수
  • 승인 2017.03.05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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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위엔 큰 도움도 안 되는 '사드'배치,' '전략적 모호성'을 왜 견지하지 못했나 / 편집국장 강동수
편집국장 강동수

사드(THAAD·고고드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한중 사이의 긴장 지수가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한미 양국이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하자 중국이 그동안 만지작거리던 경제보복이란 칼을 빼들었다. 한류 산업에 대한 제동에 이어 한국으로의 단체 및 자유여행 상품 판매를 금지했고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의 중국 진출 기업에 세무조사와 소방안전 점검을 실시해 롯데마트 4곳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건 시작일 뿐 중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경제의 숨통을 죄어올 것이란 관측이 많다.

미국과 중국이란 양대 열강의 군사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문제에 휘말려든 우리의 처지가 생각할수록 딱하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 아닌가.

중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하는 미국의 처지에선 중국의 동북아시아 패권 전략을 좌절시키고 태평양 진출을 봉쇄하기 위해선 한국과 일본을 동원한 '삼각편대 비행'이 절실하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사드’의 한국 배치 역시 필요했을 것이다. 반면, 중국으로선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허용한다는 건 중국 동해안의 군사적 움직임을 미국이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도록 하는 것이니 목에 비수가 겨눠진 듯 불안하고 껄끄러운 사태임에 틀림없다.

그 바람에 그 동안 난감한 처지에 놓였던 건 우리나라다. 미국 편을 들어주자니 중국이 가만있을 리 없다. “우리가 너희들 최대 교역국 아니냐. 우리와 거래해서 갖가지 경제적 이익을 얻어가면서 우리 목에 칼을 대느냐”고 으름장을 놓아왔던 게 작금의 형국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6·25 전쟁에서 우리가 피 흘려 너희 나라 지켜주고, 그 동안 도와 준 게 얼만데 오랜 친구의 부탁도 안 들어줄 거냐. 너희들 앞으로 우리 도움 없이 안보에 문제 없겠느냐”고 압력을 가해 오니 좌불안석이었던 거다. "가자니 태산이고, 돌아서자니 숭산"이라는 속담 대로다.

결국 우리 정부는 새 친구 대신 오랜 친구를 택했다. 미국과 사드 배치에 합의한 정부는 중국에게 “사드는 당신네를 겨냥한 게 아니라 북한 미사일 대비용”이라고 변명했지만 그게 먹힐 리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시스템인 사드로는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 장사정포 등을 막아낼 수 없기 때문에 수도권, 강원도, 충청도 방위엔 사드가 무용지물이란 건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이 요즘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SLMB’라고 불리는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이 동해를 거쳐 숨어 들어와 부산 앞바다 쯤에서 뒤통수를 친다면 남부 지역의 방위에도 사드가 큰 힘을 쓰지는 못할 터다.

그렇게 보면, 사드는 결국 중국과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미국을 향해 쏘는 걸 막겠다는 미국 본토 방어용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사드의 레이더 전파를 쏘아 북한 전역은 물론 중국 동해안의 군사적 움직임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겠다는 게 미국의 속셈이 아니겠는가. 우리 정부 당국자도 그걸 모를 리는 없을 게다. 한국 방어엔 큰 도움이 안 되는 줄이야 뻔히 알지만 미국이 정색하고 부탁하니 그걸 뿌리치기 힘들었던 거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이 미국에 떡 하나 주는 심정으로 사드 한반도 배치에 합의했을 게다. 당연히 중국이 길길이 뛰며 반발할밖에. 아마 앞으로 경제 제재의 고삐를 바짝 죄어 올 것임에 틀림이 없다.

중국은 타국과의 정치적 갈등을 경제 보복으로 앙갚음해온 나라다. 2009년 남중국해 영토 갈등으로 필리핀에 바나나 수입금지, 중국인 관광객 철수 조치를 취했고 2012년엔 9월 일본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에 대해서도 경제 보복에 나섰다. 노르웨이에도 경제 보복을 가한 적이 있다.

외교 갈등을 경제로 보복해 민간기업을 괴롭히는 중국의 태도가 대국답지 못한 건 사실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도 위반될 소지가 크다. 어쨌든 2010년 발생했던 중국 어선과 일본 순시선 충돌 사태 때 일본이 중국어선 선장을 억류하는 등 강경대응에 나서자 중국이 전자제품에 필수적인 희토류 수출 중단에 나서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적도 있다.

문제는 우리의 처지가 일본이나 필리핀, 노르웨이와는 사뭇 다르다는 데 있다. 대중국 수출비중을 따지면 일본은 17.5% 정도이지만 우리는 25%나 된다. 지난해 대중 흑자 규모가 374억 달러로 우리나라 무역 상대국 가운데 가장 크다. 여기에 홍콩과의 교역까지 더하면 수출 비중은 31.7%로 올라간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3 가까이 좌우하고 있으니 중국이 우리의 멱통을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럴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지만 만약 중국이 희토류 수출금지 조치라도 취하면 당장 한국 전자산업에 미치는 리스크도 적지 않을 거다.

우리 정부 역시 중국의 경제 보복을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련만,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 아닌가. 미-중 틈바구니에 끼여 곤혹스러웠을 정부의 처지를 짐작 못 하는 건 아니다. 놀부에게 매 맞고 놀부 마누라에겐 주걱으로 뺨맞은 흥부 처지란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래도 정부의 대응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지난 몇 달 동안 중국의 경제보복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기업들에게서 터져 나오자 “그래도 중국이 설마 경제보복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사항을 대책이랍시고 녹음기처럼 반복해 온 경제부총리가 아닌가. 사드를 도입하겠다면 중국을 달랠 대안을 가지고 있었어야 했다. 대통령 탄핵 사태에 휩쓸려 멍청히 주저 앉아 있다가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하는 정부의 무능이 딱하다.

더 나아가 사드의 배치를 둘러싼 정부의 결정이 지나치게 졸속적이었다는 생각을 아직도 지우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의 동향을 봐 가면서 눈치껏 시간을 끌면서 적절한 타개책을 찾아내도 될 일인데 무엇이 급해서 덜컥 사드 배치에 합의해 줬을까. ‘사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정부 스스로 “사드 문제는 ‘전략적 모호성’이 필요하다”고 되풀이 주장해 왔지 않았던가. 한민구 국방장관이 국회 답변에서 “사드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 게 딱 2년 전이다. 그랬다가 국회에서의 신중한 논의도, 국민의 동의도 얻지 않은 채 하루아침에 배치에 합의해 줬으니 ‘전략적 모호성’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이런 곤경을 자초했을까. 설사 사드 배치에 합의해 줘야 했다 해도 미국에는 뭔가 실익을 챙길 수도 있었을 것이고, 중국을 설득하는 시간을 벌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솝 우화의 한 토막. 사자가 양을 불러서 자기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지 물었다. 양은 냄새를 맡아 본 후 "냄새가 고약한데요"라고 말했다. 사자는 화가 나서 "이 바보 같은 놈!" 하고 양을 물어 죽였다. 이어 사자는 이리를 불러서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리는 눈치를 살피면서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요"라고 말했다. 사자는 "이 아첨꾼!" 하고 물어 죽였다. 이번에는 여우를 불러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여우는 "죄송합니다만 전 지금 감기에 걸려서 아무 냄새도 맡을 수가 없군요"라고 말했다. 

글쎄, 필요하다면 이솝 우화 속의 여우처럼 전략적 모호성을 활용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고 나니, 2005년께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주창했던 ‘동북아균형자론’이 떠오른다. 북핵 문제에 대한 6자회담이 한창 고비를 맞던 시점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동북아균형자론’을 요약하자면,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동북아 지역에서 한반도가 주도권을 잡고 균형자의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는 거다. 노 전 대통령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동북아의 세력판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던 터다.

당시 ‘동북아균형자론’은 미국의 의구심과 국내 보수들의 반발 속에 결국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잦아들고 말았다. 그의 구상이 전통적인 한미동맹의 틀에서 벗어나서 친중·친북 노선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에 찬 눈초리를 받았던 거다. "균형추 노릇을 하려면 나라가 그만큼 힘을 가져야 하는데 미·중·일·러 4강의 틈바구니에 낀 우리가 무슨 수로 동북아 국제정세를 주도할 수 있겠느냐. 붙으려면 힘 있는 쪽에 확실히 붙어야지 잘못하다간 양쪽 모두에게 밉보여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비아냥도 터져 나왔었다.

글쎄, 노 전 대통령의 구상에는 순진한 대목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 ‘사드’문제로 미국과 중국이라는 고래의 등에 끼인 새우 처지가 되고 보니 노 전 대통령이 느꼈던 답답함을 이해할 만도 하다. 열강의 틈에 끼인 작은 나라의 비애인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이솝 우화속의 여우처럼 더 정신 바짝 차리고 영악하게 굴어야 하지 않겠는가. 힘과 힘이 맞부딪쳐 파열음을 내는 비정한 국제 정치 속에서 우리의 안위와 번영을 챙기려면 눈치 있는 외교 전략을 세워야 할 거다.

따지고 보면 일본과의 위안부 협상도 마찬가지다. 위안부 문제는 원래 우리가 칼자루를 쥐고 있었던 터다.  대통령 취임 후 첫 3년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우리가 일본을 압박하다가 하루아침에 태도를 돌변해 10억 엔 받고 ‘불가역적 합의’를 덜컥 해줬던 박근혜 정권이다. 제대로 된 합의가 성사되지 못한다면 시간을 두고 다음 정권에 넘기면 된다. 졸속 합의를 해 주고 나니 그만 일본에 칼자루를 빼앗기고 말지 않았나. 요즘은 오히려 일본이 큰소리를 치고, 우리 외교부는 끽 소리도 못하고 일본의 눈치만 보는 형국이 아닌가.

“처녀는 ‘예스’라고 말하지 않으며 외교관은 ‘노’라고 하지 않는다”. 외교학의 고전인 <외교론>을 쓴 해럴드 니콜슨의 말이다. 외교란 ‘아니오’라고 해야 할 때 ‘글쎄요’라고 하는 기술이다. 왜 우리 외교는 이렇게 성급하고 아마추어적인지 생각할수록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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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맘bin 2017-03-06 10:34:28
롯데마트 영업정지를 보고서 외교에 큰 타격이 있구나 라는 생각에 너무 걱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