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식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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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주간 강성보
  • 승인 2017.02.20 04:3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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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보 논설주간

다음 문장을 한번 ‘쭉’ 읽어보자.

                                 재있미고 신하기네

캠릿브지 대학의 연결구과에 따르면, 한 단어 안에서 글자가 어떤 순서로 배되열어 있는가 하것는은 중하요지 않고, 첫째번와 마지막 글자가 올바른 위치에 있것는이 중하요다고 한다. 나머지 글들자은 완전히 엉진창망의 순서로 되어 있지을라도 당신은 아무 문없제이 이것을 읽을 수 있다. 왜하냐면 인간의 두뇌는 모든 글자를 하나하나 읽것는이 아니라 단어 하나를 전체로 인하식기 때문이다.

강성보 논설주간

다 읽었으면 다시 한번 한 글자 한 글자에 집중하여 차근차근히 읽어보자. 단어 안 낱글자 배열이 엉망진창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제목서부터 배열이 헝클어져 있다. 하지만 이 문단의 의미는 머릿속에 제대로 입력되어 있는 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캠브리지 대학 연구결과, 한 단어 안에서 글자 순서 배열에 상관없이 첫 번째 글자와 마지막 글자가 올바르다면 그 뜻을 문제 없이 파악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언어 심리학은 이를 ‘단어 형태(word shape) 인지론’으로 설명한다. 독자가 문장을 읽어 그 의미를 파악해나가는 과정은 단어를 구성하는 개별 낱글자의 지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개별 낱글자들로 구성된 단어의 외곽 형태의 인지를 통해 이뤄진다는 이론이다.

얼마전 카톡 등 SNS에 '도울^ 김용욱^' 명의의 ‘시국 격문’이 떠돌아 다녔다. ‘대통령 하야 주장 세력에 선동당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지킵시다’라는 제목의 이 ‘격문’은 촛불세력과 국회, 특검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해가며 박근혜 대통령을 극력 옹호했다. 격문 말미에 출처를 ‘조선일보 동아일보 11월 4일자 전면광고 내용,’ 글쓴이를 ‘종북 골수좌파 도울 김용욱 선생’으로 적었다.

골수 친박보수를 자처하며 태극기 집회 개근 참가를 자랑하는 한 친구는 모임에서 나에게 이 카톡 내용을 큰 소리로 읽어주며 “정말 오랜만에 속 시원한 소리, 도올 김용옥 선생이 이제야 제대로 한 말씀 하셨다”고 파안대소했다. 하지만 도올 김용옥 선생의 저서와 칼럼을 자주 접해 그의 어법에 익숙한 나는 “도올이 그런 천박한 격문을 쓸 리가 없을 텐데”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한 뒤 직접 읽어봤다.

도올의 사진까지 붙은 격문은 외형상으로 그럴 듯했다. 평소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날카로운 비판을 해온 도올의 정치적 성향을 잘 아는지라 “패러디로 비꼬아 쓴 글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글쓴이의 이름을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본 결과, 이 글이 가짜임을 발견했다. 앞서 ‘^’로 지적한 대로 필자가 ‘도올 김용옥’이 아니라 ‘도울^ 김용욱^’이었던 것이다. 모음 하나를 비틈으로써 독자의 착각을 유도한 교활한 가짜 뉴스였던 것이다. 단어 형태를 통해 의미를 인지(word shape 인지론)하기 마련인 많은 독자들이 여기에 어이없이 속아왔을 터이다. 내 친구 역시 나의 지적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박근혜 탄핵사태와 곧 이어 다가올 대선정국을 맞아 페이크 뉴스, 즉 가짜뉴스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주로 보수 우익 사이트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가짜뉴스는 특검 수사의 정당성에 트집을 잡기 위해 교묘하게 포장되어 유포된다.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스모킹건(결정적인 단서)으로 떠오른 태블릿 PC의 증거 능력에 관해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문제제기성 기사들이 바로 그것이다. 검찰과 특검, 그리고 법원이 여러 차례 그 태블릿 PC가 최순실의 것이 맞다고 확인하고, JTBC의 입수경위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강조해도 그들은 막무가내다. 때로는 외국의 PC 전문가까지 동원한 가짜뉴스를 만들어 트위터, 페이스북, 카톡 등 SNS를 통해 대량 유포한다.

때로는 유력 대선주자에 대한 인신공격성 가짜뉴스도 범람한다. 얼마전 반기문 전 유엔총장은 대권 레이스에서 중도하차하면서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 정치교체의 명분은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뉴스로 실종됐다”고 토로했다. 부친 묘소 참배 후 음복하는 영상을 교묘하게 편집하여 예법도 모르는 사람으로 몰아붙인 가짜뉴스에 견디기 힘든 모욕감과 환멸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최근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방한해 한민구 국방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한국의 차기 정권이 좌파에게 넘어갈 경우 주한미군을 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의 외신기사는 가짜뉴스의 백미였다. 한 일본 신문에 그렇게 보도됐다는 형식으로 보도된 이 기사는 신문 캡처까지 함께 실어 그럴듯하게 포장됐으나 금방 페이크임이 드러났다.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될 경우 곧 이어질 대선에서 진보진영으로 정권이 넘어갈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에 조바심을 느낀 보수파 진영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짜뉴스는 얼핏보면 진짜처럼 보이지만 특정 정치인과 정파를 음해하는 조작된 내용을 담고 있다. 트래픽을 노리거나 장난삼아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여론 조작이 목적이다. 가짜뉴스는 빠른 전파력과 파급력 때문에 아무리 정정 보도자료를 내고 해명을 해도 어느새 팩트가 되어버린다.

작년 미국 대선에서도 가짜뉴스가 쟁점이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호의적인 반면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 악의적인 뉴스가 대량 유포됐다. 그중 하나가 이른바 ‘피자 게이트’였다. 힐러리와 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워싱턴의 한 피자 가게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미국 대선정국을 뒤흔들었다. 상식 이하의 가짜기사였지만 이를 본 한 20대 남성이 해당 피자집을 찾아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뿐 아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한다,” “힐러리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IS에 무기를 공급했다”는 등의 가짜뉴스들이 SNS를 통해 미국 전역에 퍼졌다. 이 가짜뉴스를 주로 실어나른 미디어는 페이스북. 그래서 페이크북(fake book)이라는 오명도 들었다.

문제는 독자들이 진짜뉴스보다 가짜뉴스에 더 열심히 반응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인터넷 매체 ‘비즈피드’가 작년 11월 보도한 분석기사에 따르면, 미국 대선전 3개월 동안 가장 인기 있었던 가짜뉴스 20건의 공유, 반응, 댓글 수는 871만여 건으로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 권위있는 언론사 기사의 공유, 반응, 댓글 736만 건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비즈피드는 또 이들 인기 있는 가짜뉴스가 어디서 생산됐는지를 추적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미 대선판을 뒤흔든 가짜뉴스의 진원지가 발칸반도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소도시 ‘벨레스’의 한 카페였고, 이 카페에서 100여 개의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10대 후반 청소년들10여 명이 ‘주인공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 극우 보수성향의 엉터리 뉴스 웹사이트나 블로그를 뒤지며 입맛에 맞는 글을 긁어다 적절히 짜깁기하고 윤색해 가짜뉴스를 만들어 냈다. 처음엔 다분히 장난으로 시작한 이 가짜뉴스 만들기는 트래픽이 늘고 광고가 따라붙자 아예 본격적인 뉴스 생산공장을 자처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힐러리의 대세론을 극복하고 대권을 거머쥐게 된 것은 힐러리를 집중 공격한 가짜뉴스에 힘입은 바 적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벨레스의 철없는 청소년 몇 명이 미국의 정치 판도, 나아가 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셈이다.

대선을 앞둔 우리나라도 당장 가짜뉴스가 발등의 불이다. 하지만 해결책을 내놓기가 만만치않다. 정부가 나서 뉴스 유통을 단속하고 처벌할 경우, 정부 주도의 검열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경우 뉴스미디어연합이 출처 중복체크, 가짜뉴스 신고센터 운영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사후약방문이란 핀잔을 듣고 있다. 유럽 몇몇 나라 언론은 미국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고 팩트체킹 부서를 신설하는 등의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으나 효과적인 대응이 될지는 의문이다.

가짜뉴스는 종이신문의 퇴조와 소셜 미디어의 급부상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가짜뉴스의 오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미디어 공급자들의 선의만을 기대하기에는 사회가 너무 복잡다기해졌다. 결국 미디어 수용자, 즉 독자가 명석한 분별력을 갖고 가짜뉴스를 식별해내는 방법밖에 없을 듯하다. 너무 무리한 주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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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당퐁당 2017-02-25 17:07:21
가짜뉴스가 갈등을 더 조장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간닉 2017-02-22 20:37:19
언론은 대중을 이끌거나 통제하는,
그야말로 양날의 검을 가진 역활을 하는 큰 존재이죠.
이 언론의 특징을 교묘하게 "악"이용하는 세력들이 떠오르고 있어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거짓된 내용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교란시키고, 선동하는 이 "가짜뉴스"가 점점 언론을 좀먹으면 안되는데 말이에요.
더이상 이러한 것들을 찌라시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치밀해지는 실상인데요.
이 칼럼으로 어느정도 "가짜뉴스"를 식별하는 방법을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더 많은 분들이 알게 되도록 칼럼 퍼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