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천국' 명성 뒤켠, 도시 곳곳에 찬란한 역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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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천국' 명성 뒤켠, 도시 곳곳에 찬란한 역사 유적
  • 취재기자 김민정
  • 승인 2017.02.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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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동아시아 침략 교두보, 홍콩 바로 아래 '동양의 베네치아' 마카오를 가다 / 김민정 기자

학창 시절 우리는 아편전쟁에서 비롯된 영국의 홍콩 식민 지배는 배워 알고 있지만 포르투갈의 마카오 식민 지배 역사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 못했다. 마카오는 ‘동양에서 즐기는 유럽’이라는 여행 테마로 잘 포장되어 있지만, 역사를 빼고 마카오를 본다는 것은 화려한 껍데기만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흔히 ‘홍콩 옆 동네,’ ‘카지노 천국’으로 불리는 마카오의 알맹이를 찾으러 떠나 보자.

“배의 화물이 젖어서 잠깐 말리고 떠나겠다”

1553년 명(明)나라 시절, 포르투갈은 마카오를 동아시아의 무역 거점으로 활용할 요량으로 무역선을 중국으로 항해시켜 마카오 아마 사원 근방에 무작정 배를 정박했다. 포르투갈인은 처음에는 “배의 화물이 젖어서 잠깐 말리고 떠나겠다”는 구실로 마카오에 발을 들였다가 명나라 조정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며 체류기간을 늘려갔다. 결국 명에서 청(淸)으로 국체가 뒤바뀐 1572년, 포르투갈은 매년 청나라 정부에 은 20kg을 내는 조건으로 마카오 체류권을 공식적으로 얻었다.

19세기에 들어서서 영국이 아편전쟁으로 홍콩을 식민지화하자, 아시아에서의 열강 간 세력 다툼에 위기감을 느낀 포르투갈은 청이 영국에 패한 틈을 타 마카오 반도 전역과 그 아래 지역인 타이파 섬, 콜론 섬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1887년, 청은 청·포르투갈 조약을 맺어 마카오를 제3국에 양도하지 않는 조건으로 포르투갈의 마카오 영구 점유를 승인했다. 이로써 마카오 전 지역에 대한 포르투갈의 실질적 지배가 시작됐다.

하지만 영국이 20세기를 맞으면서 홍콩을 새로운 무역 거점도시로 성장시키자 마카오는 홍콩에 밀려 세계적인 무역도시로 성장하지 못하고 점차 쇠퇴해 갔다. 이후 1974년 포르투갈 본국에서 혁명이 일어나 좌파 계열로 정권이 교체되고, 새 정권은 해외 식민지 포기를 선언했다. 1979년 포르투갈은 중국과 국교를 수립했고, 이어 1986년에는 베이징에서 마카오 반환협정을 체결했다. 1999년 12월 20일, 반환협정에 따라 마카오는 중국의 특별행정구로 귀속돼 근 500년간 이어져 온 포르투갈과의 질긴 인연을 끊었다.

마카오는 총 면적 30.5㎢로 마카오 반도, 타이파 섬, 콜로안 섬, 간척지 코타이로 구성돼 있다. 한국에서 마카오로 바로 가고 싶다면 마카오 반도 아래쪽에 위치한 타이파 섬의 마카오 국제공항행 비행기를 타면 되고, 홍콩에서 출발한다면 페리를 타면 된다.

마카오는 마카오 반도, 타이파 섬, 간척지 코타이, 콜로안 섬으로 구성돼 있다(사진: 구글 지도 캡처).

마카오 반도는 남중국해에 접해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육로로도 접근이 가능하다. 주의해야 할 점은 마카오가 소속된 국가는 중국이지만 ‘특별행정구역’이기 때문에 중국, 홍콩처럼 마카오도 입국신고서를 따로 작성해 별도의 입국 절차를 거쳐야 한다.

특별행정구역이란, 본국의 지방행정제도와는 다른 행정기관이 설치돼 독자적인 법률이 적용되는 자치권을 가지는 지역을 뜻한다. 특구란 우리나라의 제주특별자치도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마카오는 ‘파타카(MOP)’라는 자체 화폐와 독자적인 사법 제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제주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독립적인 자치권을 가졌다.

현재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반환받은 홍콩과 1990년 포르투갈로부터 반환받은 마카오 두 곳을 1997년에 발효된 ‘중화인민공화국 특별행정구 기본법’ 제5조, 즉 ‘일국양제(一國兩制, one country, two systems)’ 체제의 특별행정구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홍콩과 마카오는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와는 별개로 2049년까지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경제 체제를 지속하는 것이 보장돼 있다. 2049년 후에도 홍콩과 마카오의 일국양제가 지속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기자는 홍콩 섬에 위치한 홍콩·마카오 페리터미널에서 페리를 타고 50분을 걸려 마카오에 도착했다. 서울이 영하 13도였던 지난 1월 23일, 마카오는 영상 13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봄, 가을 날씨가 마카오의 겨울 날씨인 셈이다. 또한 10월부터 4월까지는 건기여서 비가 자주 오지 않는다. 지금같은 겨울에 마카오를 방문하면 비를 만날 확률이 적다.

마카오 역사지구 여행의 시작, 세나도(Senado) 광장

마카오는 관광도시면서 동시에 역사도시다. 2005년 7월 15일, 마카오는 ‘역사의 중심, 마카오’라는 타이틀로 중국의 31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마카오 역사지구란 30여 개의 문화유산이 밀집해 있는 마카오 반도 서쪽 구역을 일컫는다.

30여개의 문화유산이 밀집해 있는 마카오 역사지구(사진: 구글 지도 캡처).

마카오 역사지구에는 많은 건축 유산과 주요 도심광장이 있는데, 이 중 다수가 세나도 광장 근처에 포진해 있다. ‘세나도’는 포르투갈어로 ‘의회’라는 뜻으로, 마카오 역사 초창기부터 중심지로 기능했던 곳. 광장 근방에는 포르투갈의 옛 정취가 풍기는 건축물들이 동양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루고 있고, 도보로도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문화 유산들이 서로 가깝게 위치해 있다.

세나도 광장은 원래 현지인과 여행객의 휴식 공간으로도 활용 가능한 곳이지만 마카오의 공식행사나 축제가 주로 이곳에서 열리고 유명 관광지와 쇼핑‧카페‧육포 거리 등도 유명하기 때문에 기자가 찾은 날 광장엔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있었다. 인파에 밀려 정신없이 세나도 광장 거리를 걷다가 주변을 둘러보면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분명 마카오는 중국인데, 건물에는 포르투갈어가 씌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광장 주변엔 19~20세기에 지어진 유럽 양식의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더한다. 

세난도 광장의 유럽식 건물과 중국식 등불이 동서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정).

이 날 마카오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 임소강(24) 씨는 “세나도 광장에 충격적일 정도로 사람이 많아서 놀랐지만, 광장에 들어서서 고개를 드는 순간, 유럽에 온 것 같아 놀랐다”며 “세나도 광장이 주는 기시감과 신비로움에 ‘헉’ 소리가 절로 났다”고 말했다.

세나도 광장 역사지구의 건물들에는 한자와 포르투갈어가 함께 쓰여 있어 이곳이 과거 포르투갈 식민지였음을 실감케 한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정).

감탄도 잠시, 광장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가장 처음 만나는 문화유산 ‘성 도밍고스 성당’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밝은 노란색이 인상적인 이 성당은 1587년 멕시코의 도시 중 하나인 아카풀코에서 건너온 스페인계 도밍고스 회 사제 3명에 의해 건축되었다. 이 성당은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중국에 지어진 첫 번째 성당이기도하다.

노란색이 인상적인 성 도밍고스 성당은 중국에 지어진 첫번째 성당이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정).

오전 10시~오후 6시엔 성당 내부를 개방해 관광객도 출입이 가능하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시끌벅적한 바깥과는 달리 엄숙한 분위기에 관광객도 많지 않았다. 간절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건물 뒤편의 종탑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약 300점의 가톨릭 공예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엄숙하고 웅장한 성 도밍고스 성당 내부(사진: 취재기자 김민정).

성 도밍고스 성당에서 ‘성 바울 성당의 유적’을 향해 약간 가파른 오르막길을 조금 오르면 ‘육포거리’를 만날 수 있다. 육포거리에서는 육포 뿐 아니라 마카오 길거리 명물음식인 아몬드 쿠키와 ‘마카오식 에그타르트(빵의 일종인 페스트리 안에 달걀 크림을 넣어 만든 디저트)’도 곳곳에서 판매되고 있다. 시식을 권하는 상인들이 많으니 조금씩 먹어보고 기호에 따라 하나쯤 구사 먹어 보는 것도 좋다.

‘마카오식 에그타르트’라고 불리는 이유는 마카오의 에그타르트와 홍콩의 에그타르트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카오와 홍콩이 각각 포르투갈과 영국의 식민 지배하에 있던 시절, 포르투갈은 마카오 음식에, 영국은 홍콩 음식에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약 200년 전 포르투갈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최초로 탄생한 에그타르트가 지금은 각각 마카오 식과 홍콩 식으로 분화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두 개의 차이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왼쪽 사진은 아랫부분이 타르트인 홍콩식 에그타르트이며, 오른쪽은 아랫부분이 페스트리인 마카오식 에그타르트로 모양이 확연히 다르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정).

주의해야 할 점은 육포, 소시지, 장조림 같은 육가공류는 국내 반입이 불가능하다는 것. 육포거리에서 육포를 사더라도 많이 사지 말고 그 자리에서 다 먹고 오는 게 좋다. 육포거리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 김민정(23) 씨는 “에그타르트는 큰 기대 없이 사 먹어 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육포거리에서 육포를 선물용으로 많이 사고 싶었지만 한국 반입이 안 되고 가격도 비싸서 사지 않았다”고 말했다.

먹거리에 잠깐 시선을 뺏기고 나면, 그 다음은 또 하나의 멋진 광경이 우리의 시선을 유혹한다. 바로 ‘성 바울 성당의 유적’이다. 성 바울 성당 건물 전체는 사라지고 성당 일부만 유적으로 남은 것이다.

성 바울 성당은 건물 한쪽 외벽만 유적으로 남아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정).

원래 이곳에는 1594년에 포르투갈 예수교 수도회에 의해 설립된 성 바울 대학이 있었다. 이 대학은 동아시아 지역 최초의 서양식 대학으로, 철학·지리학·천문학·라틴어·포르투갈어·중국어·음악·예술 등 폭 넓은 교육을 통해 서양 최초의 중국 연구가들이 동양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연구하는데 큰 영향을 줬던 곳이다.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으로 선교 활동을 떠나는 예수회 선교사들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1603년 일본에서는 쇄국정책을 편 에도정권이 들어서자 가톨릭 신앙을 금지해 선교사들을 핍박하고 추방했다. 그 후 성 바울 대학의 일부였던 성 바울 성당은 일본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도망온 선교사들의 피난처가 됐다.

성 바울 성당의 유적인 한쪽 벽면을 가까이서 바라본 모습. 문양이 꽤 예술적이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정).

그러던 중 1762년 예수회의 힘을 견제한 포르투갈 정부마저 예수회를 탄압했고, 그 과정에서 선교사들은 성 바울 대학과 성당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다시 떠났다고 한다. 그 후 1835년, 화재로 인해 대학과 성당은 현재의 성당 정면 부분, 계단, 토대만 남긴 채 모두 소실되었다.

성 바울 성당의 유적을 둘러본 관광객 장선희(24) 씨는 “모두 다 타버렸는데 이렇게 정면부만 남아있는 것도 신기하고 보존 상태가 좋은 것도 놀랍다”며 “글과 사진으로만 보던 성 바울 성당의 유적을 실제로 보게 되어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밤에 가장 빛나는 곳, 코타이 스트립

마카오 면적은 30.5 ㎢로 29.57 ㎢인 서울시 관악구와 비슷한 크기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광객은 마카오를 당일치기 또는 1박 2일 코스로 방문한다. 당일치기인 경우, 오후 시간대까지는 세나도 광장 근처 중심으로 문화유적을 둘러보고, 해가 지기 시작하는 저녁 시간대부터는 마카오 반도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코타이 스트립으로 건너가 화려한 호텔과 카지노를 즐길 것을 추천한다.

코타이 스트립이란 마카오 타이파 섬과 콜로안 섬 사이에 있는 매립지로, 면적은 5.2㎢에 불과하지만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거대 호텔들이 들어서있는 곳이다. ‘코타이’란 명칭은 '콜로안'(Coloane) 섬 이름과 '타이파'(Taipa) 섬 이름의 합성어다.

마카오 반도에서 코타이 스트립으로 건너갈 때 마카오와 코타이 스트립 사이를 운행하는 호텔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팁이다. 마카오 전체에 포진해있는 수많은 고급 호텔들은 서로 경쟁하듯 각 호텔마다의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꼭 호텔 투숙객이 아니어도 확인절차 없이 호텔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번거로운 이에게는 호텔 셔틀버스를 권한다. 단, 각 셔틀버스의 타는 곳과 내리는 곳이 호텔마다 다르기 때문에 사전에 알아보고 타야하며, 일반 대중교통에 비해 기다리는 줄이 길 수도 있다.

마카오 반도와 타이파 섬을 잇는 대교를 건너면 코타이 스트립이 등장한다. 해질녘이 되면 타이파 섬의 호화 호텔들은 하나 둘 불을 밝히기 시작하는데, 하나같이 웅장하고 거대하다. 호텔을 비추는 금빛 조명은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기자와 함께 버스에 탑승한 김민정 씨는 “버스에서 졸다가 눈을 떠 보니 완전히 다른 세상 같았다”고 말했다.

엘도라도를 연상시키는 코타이 스트립의 황금빛 대형 호텔(사진: 취재기자 김민정).

코타이 스트립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카지노지만, 카지노만큼 관광객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이 ‘베네치안’ 호텔의 곤돌라다. 호텔 내부에는 해가 지지 않는 인공 하늘이 설치되어 있고, 긴 인공 강을 따라 이탈리아의 유명 수상 운송수단인 곤돌라를 운행해 베네치아를 연상시킨다. 이를 직접 타 본 관광객 임소강(24) 씨는 “마카오에서 이탈리아를 느껴 볼 수 있는 이국적이고 특이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호텔 내부에 지어진 인공 강에서 곤돌라를 즐길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정).

어딘가를 여행한다는 것은 그 곳의 역사와 느낌, 정취를 직접 느껴보는, 정성스럽고 수고스러운 과정이다. 많은 이들이 마카오 하면 카지노만을 떠올리지만, 사실 마카오에는 이토록 다사다난한 역사와 볼거리, 먹을거리가 있다. 왜 지금 이 나라는, 그리고 이 도시는 지금의 형태로 발전해왔는지를 알아보려면 그 지역 역사를 알고, 특징을 배우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멋지고 웅장한 건축물을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서서, 그 지역과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동양의 유럽, 마카오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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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블리 2017-02-12 15:38:08
동서양이 공존하는 마카오! 무척 매력적이네요.
마카오의 역사를 알고 가면 더욱 다채롭고 알찬 여행이 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에그타르트 완전 좋아하는데 마카오 에그타르트도 먹어보고 싶네요♡

잔다르크 2017-02-10 22:42:06
동양의 베네치아 마카오 정말 아름답고 멋지네요.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맛있는 육포와 마카오식 에그타르트 맛보고 싶어요.

김꾸꾸 2017-02-10 11:54:59
사진도 너무 이쁘고 기사 내용도 알차네요

민재맘bin 2017-02-10 10:56:36
기회가 된다면 마카오 및 홍콩여행을 꼭 가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