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그리고 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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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그리고 45년...
  • 최공주
  • 승인 2013.01.0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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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45주년을 맞은 4.19 추모행사에 시민들의 발길이 끊어졌다. 그렇게 4.19는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지난 18일 부산 민주공원에서 개최된 4.19 희생자 추모 위령제는 유족들과 관계자들로 북적였으나, 그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자리에 함께 해야 할 시민들이 전혀 없었다.

이 행사에서 축문을 낭독한 4.19 희생자 유족회 부산지부장인 박경자 씨는 유가족의 아픔을 생생하게 토로했다.

박 씨는 4.19 혁명 시위에 참석한 남편의 부상 사실을 1962년 결혼 당시부터 보훈자로 등록된 1976년까지 14년 동안 이 사실을 숨기고 살았다고 한다. 남편은 그 사건의 휴유증으로 1년에 한 두 번 정도 정신 발작을 일으켜 1급 정신 질환자로 판명받았다.

1997년 남편 사망 후 박 씨는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4.19 혁명 유족들을 대표해 여러 숙원사업을 이루어냈다. 최근 박 씨가 노력하고 있는 사업은 현재 용두산 공원에 있는 4 .19 기념탑을 민주공원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또 영정을 모시는 봉안소를 민주공원 내에 건립할 목적으로 정부로부터 15억원을 지원받은 상태다.

그녀는 민주공원 관장과 시 관계자들이 도와준 덕택에 숙원사업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독불장군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가 도와 준 덕분에 이루어졌지요. 나도 순진했었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얼굴 팔릴 것도 없고 앞으로 계속 싸워서 다른 유족들도 모두 보상을 받게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박 씨는 5.18 과 6월 항쟁은 기억하면서 민주주의의 모태인 4.19 혁명이 잊혀져 가는 것이 안타깝고 시민들의 무관심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혁명 당시 어머니를 여읜 또 다른 유자녀 이재규 씨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4.19가 잊혀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우리가 바라는 것은 돈 다발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관심입니다”라고 말했다.

경성대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강의하는 문영백 교수는 많은 시민들이 4.19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한국 민주주의에 끼친 4.19의 중요성이 계속해서 사회적으로 교육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우리가 이 정도의 민주 사회에 살 수 있는 것은 4.19, 부마항쟁, 5.18 민주운동 덕분이며, 이 민주화 운동들의 의미를 영원히 기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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