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생활물가가 고공행진하고 있는 가운데, 설 대목을 코앞에 두고 장바구니 물가에 초비상이 걸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5일 지난해 여름 폭염 등으로 채소류 가격이 급등하고 AI까지 겹쳐 노지채소류, 축산물 가격이 크게 올라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실제 배추, 무 등의 채소류는 평년과 비교해 68.9% 오른 가격을 보이고 있고, 달걀, 육류 등 축산물 또한 평년과 비교하면 16.1% 높은 가격이다. 작년 1월 1,289원 하던 배추 한 포기는 현재 3,028원, 개당 638원 하던 무는 1,745원으로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또 관세청이 조사한 설 성수품 농축수산물 수입 가격에 따르면, 66개 중 41개 품목이 작년 설보다 올랐다. 특히 수산물은 꽁치, 낙지, 홍어, 가오리, 오징어 등 20개 중 15개 품목의 수입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설을 앞두고 시장을 들러보니, 자꾸만 오르는 가격에 장을 보다 말고 “장보기가 싫다”고 울상 짓는 소비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부산진구의 한 대형 마트. AI 여파로 달걀 코너에 쌓여 있어야 할 달걀이 몇 판 남지 않았다. 달걀 코너 앞에 서 있던 한 부부는 “달걀을 많이 사려면 아침에 와야 된다”며 비어 있는 판매대가 익숙한 듯 이야기했다. 이날 팔리고 있는 25구짜리 달걀 가격은 8,280원. 30구 달걀 한 판 기준 5,000원이 되지 않던 달걀이 8,000원을 넘겼지만, 소비자들은 달걀을 사지 않을 수 없다. 주부 이현자(57, 부산시 부산진구) 씨는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어떻게 계란을 안 사냐”며 “돈이 많이 나올까봐 걱정돼 몇 개 못 담고 장바구니를 채 채우지 못한 채 계산하러 가도 기본 10만 원이 훌쩍 넘는다”고 푸념했다.
원재료 가격이 오르자, 반쯤 손질된 제품을 고르는 이도 늘었다. 가격 차이가 크다면 원재료를 사 손질하는 수고를 들이겠지만, 가격이 비슷한데 굳이 원재료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것. 설 차례상에 올릴 새우튀김용 손질새우를 산 유진영(45, 부산시 동래구) 씨는 “저번에 속는 셈 치고 한 번 사서 썼는데 확실히 손이 덜 가더라”며 “수입산인 게 좀 걸리지만 오늘 보니까 생새우 가격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과일 역시 소량 포장된 제품이 인기가 높았다. 한 박스를 통째로 사기보다는 작게 포장된 제품을 고르는 게 소비자들의 선택. 사과 5개가 든 포장 제품을 고른 서창현(29,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가족이 엄마, 아빠, 저 이렇게 세 명인데 사과 선물 들어오면 늘 다 못 먹고 상해서 버리게 되길래, 이제 그냥 뜯지도 않고 다른 곳에 보내 버린다”며 “필요한 만큼만 사서 차례상에 올리면 된다”고 말했다.


설 선물세트도 실속 제품 구성이 많아졌다. 과거 한 상자 안에 갖가지 제품이 들어 한 손으로는 들기도 벅찰 만큼 큰 세트는 세월 속으로 사라지고 한 손으로 충분히 들 수 있는 샤워용품세트, 스팸 세트, 종류별로 담긴 식용유 세트 등이 판매되고 있다. 마트 명절 선물세트 판매원은 “예전에는 칫솔, 치약, 비누, 로션, 등등 잡다하게 든 선물이 많았는데 요즘은 샴푸, 린스, 헤어 앰풀 몇 개, 이런 식으로 꼭 필요한 것만 담은 저렴하고 실속있는 제품이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바뀐 선물세트 트렌드에는 김영란법 역시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다니는 회사에서 쓸 설 선물을 마트에서 구입했다는 길정현(29, 부산시 부산진구) 씨는 “회사에서 고객들에게 돌리는 거라 여러 가지로 살펴봤는데 최종적으로 5만 원이 넘지만 할인해서 4만 원 후반대에 턱걸이하는 상품을 고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자체들은 설 명절을 대비해 물가 안정 대책으로 전통시장에서 장보기, 가격인상과 담합 등 부정경쟁 행위를 집중 점검, 원산지 거짓 표시 점검, 관합동 물가안정 대책회의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