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첨단병기는 유머경영, 직원이 웃어야 회사가 잘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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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첨단병기는 유머경영, 직원이 웃어야 회사가 잘 되죠"
  • 취재기자 이보현
  • 승인 2017.01.20 22: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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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실패, 막노동, 다시 재기... '유머 경영' 전도사 된 경영 컨설턴트 김병수 씨의 오뚝이 인생 / 이보현 기자

기업들 사이에서 ‘유머경영’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사람이 회사다’라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성공한 회사인 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유머경영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유머경영이란 직원을 활기차게 웃을 수 있게 해 즐거운 조직 분위기를 만들자는 경영전략을 말한다. ‘21세기는 유머경영 시대’라는 말이 나올 만큼 유머경영은 기업의 중요한 경영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들에게 유머경영을 알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경영 컨설턴트 김병수(53) 씨다. 그는 “좋은 기업이 되려면 직원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라”고 강조한다.

경영 컨설턴트, 경성대학교 외래교수 김병수 대표(사진: 취재기사 이보현).

김병수 대표는 1964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잦은 이사 때문에 그는 초등학교를 여섯 곳이나 돌아다녔다. 부산, 대전, 서울, 부산을 오가며 외부 환경에 적응해 가다보니 내성적인 성격이 외향적으로 변했다. 남을 사귀는 것을 좋아하게 됐고, 학교 선도부 등 리더 역할을 도맡아 했다. 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조직 리더 경험으로부터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한 번 해 보자’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김 대표의 성격 변화엔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작은 회사를 운영했던 그의 아버지는 ‘무슨 일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헤쳐 나간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회사에 가보면 부하 직원들이 아버지의 인사성과 밝은 성격을 좋아해 따르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이 그를 내성적인 성격에서 진취적인 성격으로 변화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그는 말했다.

김 대표의 인생에서 1차 터닝 포인트는 대학 1학년 때 비롯됐다. 대학 1학년 때 부친상을 당하는 시련을 겪은 것.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고, 가장의 역할을 그에게 떠안겼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그가 처음으로 경영에 대해 알게 된 계기는 친구의 제의로 골프 가방 자재를 납품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었다. 아르바이트이지만 열심히 일하는 그를 사장이 불러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며 재학 중지만 원하면 회사에 취직시켜주겠다고 제의했다. “대학을 졸업하면 독립적인 사업을 하도록 도와주겠다”는 언질도 주었다. 그는 학기 중에는 밤에 회사 직원들의 자녀 과외를 하며 돈을 벌었고, 방학에는 회사에 다니는 이중 생활을 했다. 사장은 그에게 “무역과 일본어를 공부하라”고 조언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무역과 일본어라는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공부하며 점차 경영에 눈을 뜨게 됐던 것.

그는 1992년 대학 졸업 후 사장이 약속한 대로 약간의 도움을 받아 독립해 작은 사업체를 가지게 됐다. 한창 일에 취미를 붙여 뛰어 다닐 때 그는 치킨 프렌차이즈라는 사업 장르를 접했다. 프렌차이즈를 주제로 논문을 써 석사학위를 받자마자 그는 곧장 프렌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7년 외국계 치킨 프렌차이즈 사업을 하며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IMF 구제금융'이라는 시련이 찾아왔다. 모든 닭고기를 수입에 의존하던 그는 'IMF 구제금융' 체제가 몰고온 파장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500원에 수입하던 닭을 1,700원대로 수입해야 하는 출혈경영을 피할 수 업섰다. 자본이 부족했던 그는 곧 경제가 호전되겠거니 하고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사업을 유지했다. 그러나 사업은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1998년 12월 30일 그의 회사는 부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사업이 부도나서 방황하던 김병수 대표가 처음 찾아간 곳은 자신이 사업할 때 하청업체였던 인테리어 회사였다. 그는 그 곳에서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사장이던 그는 하루아침에 일꾼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그는 “내가 높은 곳에 있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도 나는 이 시련에 절망하지는 않았다. 전장에 나가려면 무기가 필요한 것처럼 막노동을 하는 순간조차도 언젠가는 나에게 무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막노동을 하는 중에도 사업 경험을 통해 경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던 그를 초보 입문 경영자들이 자주 찾아와 자문을 구하곤 했다. 이게 계기가 되어 그는 남에게 경영 자문을 해주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그는 곧바로 자격증에 도전했다. 바로 경영지도사 자격증이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을 서울에서 경영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했다. 그에게 주말은 없었다. 그 결과 2002년 10월 24일 그는 드디어 자격증을 얻었다. 그는 “경영지도사 자격증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드디어 그는 2005년 1월 경영 컨설팅 사업에 뛰어들었다. 개인 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경영 컨설턴트’ 일을 시작했다.

창업을 꿈꾸는 미래 경영자 학생에게 경영의 한 수를 가르치고 있는 김병수 대표(사진: 김병수 씨 제공).

경영 컨설턴트에 열심히 일을 하던 도중 그는 인생의 두 번째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 지인의 소개로 의료 보조기구를 만드는 회사인 ‘아미글로벌’의 유실근 대표를 만난 것. 유 대표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일하는 그의 모습을 마음에 들어해 컨설팅할 기업을 여러곳 소개해 주었다. 김 대표는 “유실근 대표를 만난 것이 나의 2차 터닝 포인트였다. 그래서 지금의 경영 컨설턴트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기업 컨설턴트 일을 하면서 경성대학교에서 ‘유머와 재미있는 경영’이라는 교양과목을 담당하는 외래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학생들에게 유머를 통한 경영에 대해 강의한다. 김병수 대표는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사람이 안 움직이면 발전이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인사 조직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기업 조직에서 원활한 업무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딱딱한 분위기가 아닌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활발하게 웃을 수 있는 직장이 성과가 좋다며 “조직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제거한다면 직무에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목표 설정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의 인생관은 인생에서 자신만의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한 가지의 방안만 생각하지 말고 많은 방안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며 “혹시나 안됐다고 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또 다른 방안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많은 경영자들이 유머경영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전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지향하는 문화를 미래의 회사원인 학생들에게 미리 가르쳐 주고 있다며 “회사에 취직하게 되면 유머경영을 회사에 전파하는 선구자가 돼야 한다고”고 강조했다.

그의 유머경영의 요체는 직장에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 “수직적인 관계보다는 수평적인 관계에서 긍정의 힘이 나오기 때문에, 기업에 들어갈 때 그 조직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그 회사의 분위기를 바꾸는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유머경영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김병수 대표(사진: 김병수 씨 제공).

김병수 대표는 취업준비생들에게도 선후배에게 인사 잘하고 항상 밝게 이야기하라는 권고를 잊지 않았다. 그는 “삶의 가치란 순간의 편한함에 안주하기보다는 조금 힘들더라도 남들한테 인정받고 존재감을 알리는 데서 나온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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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맘 2017-01-28 11:36:07
무척 공감이 가는 기사예요. 사무실의 권위적이고 딱딱한 분위기는 애사심을 없애고 사람을 질식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유머가 넘치는 분위기는 근무가 즐겁고 생산성도 더욱 향상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