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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수도 부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착실히 추진"'임시수도 기념거리'엔 1,023일의 흔적 아직 역력..부산시, 올해 신청 목록 선정 계획 / 이도희 기자

부산(釜山)이라는 도시는 많은 이름으로 불린다. 바다에 접해 있어 ‘해양수도,’ ‘항구도시’라 불린다. 야구에 대한 사랑이 큰 도시라서 ‘구도’라고도 한다. 하지만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6.25전쟁이 발발한 후 얻게 된 이름 ‘임시수도,’ ‘피란수도’이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3일만에 북한군에 서울이 점령당하자, 대한민국 정부는 대전, 대구로 수도를 옮겼고, 이어 낙동강 전선이 형성되자 부산을 임시수도로 삼았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으로 다시 서울을 수복했으나, 1.4후퇴로 다시 부산이 수도가 되었다. 부산은 1,023일이라는 기간 동안 수도의 역할을 맡았다. 국민들도 전쟁을 피해 한반도의 남쪽으로 향했다. 항구도시였던 부산의 인구는 40만 명 정도에서 100만 명이 넘게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부산 피란시대의 거점 역할을 했던 곳이 부산 서구 대청로의 ‘임시수도 기념거리’다. 기자는 이 거리를 찾아 걸어봤다. 

임시수도기념로 시작을 알리는 거리의 초입(좌), 국내 3대 뿐인 근대 전차 중 하나(우)(사진: 취재기자 이도희).

40번 버스를 타고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을 지나 영락교회 앞에 내리면, 길 건너편에 임시수도 기념거리를 알리는 알림판이 보인다. 이 알림판 위쪽엔 ‘말표 신발’ 광고를 붙인 근대 전차가 전시돼 있다. 이 전차는 국내에 3대 뿐인 근대 전차 중 하나로, 한국전쟁 복구를 위해 미국에서 무상원조로 도입됐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유일한 미국식 전차다. "손잡이가 엄청 높다 잡기도 힘들었겠다"고 혼잣말을 했더니, 함께 구경하시던 한 할아버지가 “미국에서 만들어 갖고 온 전차라 그렇다. 그때는 저런 전차들이 많았다”고 말을 붙여왔다. 1967년까지 부산 시내에서 운행되던 전차는 현재 동아대학교가 등록문화재로 보관하고 있다.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무궁화가 표시된 가로등(좌),임시수도 기념로의 모습(우) (사진: 취재기자 이도희)

거리의 시작에서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쪽으로 올라오면 태극기가 걸린 가로등이 서 있다. 가로등에는 '임시수도'란 글기가 새겨진 무궁화 로고 판이 부착돼 있다. 계속 따라 길을 올라가면 부산이 임시수도였을 때 대통령 관저로 사용됐던 임시수도기념관에 도착한다. 오르막길 왼편에는 좌판 장사를 하는 여성들, 말뚝박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 전차에 올라타는 사람 등 당시의 거리풍경을 그린 벽화도 만날 수 있다. 

벽화를 곁눈질하며 오르막길을 올라가다 보면, 임시수도기념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이 계단 맨 위에는 원래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 서 있었지만, 2011년 6월 한 시민이 몰래 뿌린 붉은색 페인트 세례를 받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후 4.19 유족 단체 등의 반대로 동상이 철거된 후 2년 넘게 휑하니 비어 있었다. 이후 2013년 UN용사들을 기리는 조형물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계단 중앙에는 조형물과는 무관하게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글판이 남아 있다. “전쟁의 참상을 겪고 폐허 위에서도 수출입국의 꿈을 펼치셨으며, 기업의 발전을 통해 일자리 창출을 해야 만이 실업자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설파하셨다.” 시민단체의 반대로 동상이 사라진 자리에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문과 소개 글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향하는 계단(왼쪽), 옛날 피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벽화(오른쪽) (사진: 취재기자 이도희)

임시수도기념관 입구로 들어서면 전쟁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과 함께 고즈넉한 분위기의 대통령 관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건물은 원래 경남 도지사 관저였으나, 부산이 임시수도 시대 때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됐던 곳. 당시 대통령 관저로 들어서면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과 당시 사용했던 물건, 방안 모습까지 재현돼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되돌아간 느낌을 준다. 관저 뒤쪽에는 임시수도 전시관이 있다. 이곳 또한 부산고등검사장 관사로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임시수도 시기 부산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장으로 변신했다.

임시수도 기념관 대통령 관저의 외부 모습(사진: 취재기자 이도희)
대통령 집무실을 재현해 놓은 공간 (사진 : 취재기자 이도희)

2014년 6월, 부산시는 임시수도 당시의 유적을 묶어 ‘피란수도 부산’이라는 주제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다. 부산은 전쟁 시기 새롭게 형성된 유일한 국가 수도이고, 1,023일간 장기적으로 지속된 유례도 찾기 힘들다는 게 세계유산 등재 추진 이유. 부산은 또 100만 명이 넘는 대규모의 피난민들을 수용한 포용성 또한 갖추고 있다. 

부산발전연구원은 당시 발표한 보고서에서 “임시수도라는 말은 임시적인 행정 차원에 국한되는 말로써 부산의 특수성을 잘 담지 못한다"며 "피란으로 인해 발생한 행정, 생활, 문화, 정치 등 전 분야를 포괄하는 ‘피란수도’로 명명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현재 피란수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작업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부산시는 세계유산 등재 전담팀을 꾸려 ‘피란수도의 건축·문화 자산에 대한 기초 조사’를 토대로 가치 입증이 가능한 건축물들은 등록문화재로 지정할 계획이며, 올해 유네스코 잠재목록을 신청할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이번 유네스코 등재가 실현되려면 8~10년의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피란수도로서의 부산의 다양한 가치 창출은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유네스코 등재 추진에 시민들이 많이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취재기자 이도희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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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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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돌 2017-01-12 00:12:28

    저의 부모님 모두 북에서 피난와서 부산에서 만나서 결혼하셨는데
    피란수도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니 부모님 생각도 나고 감회가 새롭네요.
    역사적 큰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피란수도 유네스코에 꼭 등재되면 좋겠습니다.   삭제

    • 간닉 2017-01-11 20:28:09

      진작 착수되어야 할 것이 이제서야 서서히 윤곽이 드러난다는 것에 씁쓸하면서도 이제라도 많은 홍보가 이루어 졌다는 것에 희망을 품습니다.
      저도 따로 한국사 공부를 하며 부산에 임시정부가 있었음을, 부산이 알려진 것 보다 많은 역사를 담고 있는 도시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요,
      아직 많은 분들에게 생소한 것 같아요.
      부산의 진정한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이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부산시가 홍보에 적극적으로 임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새로운 소식 알려준 시빅뉴스 고마워요~!   삭제

      • ci002 2017-01-11 14:51:31

        피란수도 부산,
        옛날 전쟁이 일어났던 아픈시기에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고 거리도있다니,마음이 서글퍼 진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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