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방폐장 인근 주민들, "영화<판도라> 현실화될까봐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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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방폐장 인근 주민들, "영화<판도라> 현실화될까봐 불안"
  • 취재기자 김민정
  • 승인 2016.12.29 23:55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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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폐장 르포]'안전성 문제 없다'는 당국 발표에도 지난해 지진 이후 불안감 고조 / 김민정 기자

지난해 9월 경주 일대의 지진 이후 이곳에 위치한 월성 원자력발전소와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015년 발표된 '월드 팩트북(World Factbook: 미국 CIA 발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전력 생산량 중 원자력발전 비중은 26.8%로 세계에서 4번째로 높다. 만약 당장 내년부터 원전 가동을 중지한다면, 전기요금을 비롯한 전체 물가가 크게 오를 것이고,  주요 산업들의 경쟁력이 악화될 것이다. 또한 아직은 신재생 에너지 기반이 부족한 우리나라로서는 과도한 화석 연료 수입에 따른 탄소 배출량 급증으로 인해 환경이 위협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경제성, 효율성에서 유리한 원자력 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하기 위해 지난 2015년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에 제출한 제7차 전력수급계획안에서는 2029년까지 2개의 원전을 더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판도라> 같은 원전 폭발 대재앙이 일어날 확률을 전면 배제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방사능 폐기물 처리 문제다.

방사능은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만 유출되는 것이 아니다. 핵연료를 재처리하여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쓰인 가운, 장갑 등에서도 방사능이 유출될 수 있다. 이런 경로로 유출된 방사능은 적혈구 감소, 급성방사선 증후군 등을 일으키는 등 인체에 매우 유해한 영향을 끼쳐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쓰레기’라고 불린다.

방사능 폐기물은 크게 고준위 폐기물과 중·저준위 폐기물로 나뉜다. 원전에서 사용된 폐 필터, 작업복, 장갑, 공구 등 연료 처리 과정에서 사용된 거의 모든 물건이 중·저준위 폐기물이다. 병원 방사능 시설에서 사용된 물품들도 중·저준위 폐기물에 포함된다. 

고준위 폐기물이란 핵연료 재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처리가 까다로운 방사능 폐기물들을 지칭한다. 고준위 폐기물은 10만 년이 지나야 방사선 강도가 자연 상태가 돌아가는 것으로 추정될 만큼 방사능이 강력한 물질이다. 원자로에서 방금 꺼낸 사용 후 핵연료의 방사선량은 7시버트(Sv)에 달하는데, 사람이 1m 거리에서 10초 이상만 노출돼도 한 달 내에 사망한다. 때문에 고준위 폐기물은 엄격한 관리 아래 처리해야 하고, 방사능이 자연으로 사라질 때까지는 완전히 격리된 곳에 따로 보관해야 한다.

중·저준위 폐기물의 방사능량은 고준위 폐기물에 비하면 매우 적으나, 이 또한 신경 써서 처리하지 않으면 방사능유출이라는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처리해야한다.

우리나라에선 경주에 방폐장이 설립되기 전에는 각 원전이나 원전연구소의 임시 저장고에 핵폐기물을 보관해 왔다. 하지만 수십 년간의 원전 가동에 따른 폐기물 누적으로 다수의 원전에선 임시보관소가 포화 상태에 다다른 데다 임시보관은 영구보관에 비해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자주 제기돼 왔다. 그래서 방폐장 설립이 시급했던 것.

2005년 주민투표를 거쳐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의 214만㎡의 부지에 방폐장 건설 부지가 확보됐고, 2007년 7월 동굴 처분 방식의 1단계 시설이 착공됐다. 이어 1조 1,500여 원을 들여 약 6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돼 2015년 7월부터 본격적인 중·저준위 폐기물의 영구 폐기 처리가 시작됐다.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월성 원전 옆 부지에 위치한 건물이 바로 그것이다.

방폐장 부지가 확정된 것은 1984년에 처음 건설이 공론화된 이후 21년만이었다. 주민투표 당시, 주민 찬성률은 약 90%에 달했다. 혐오시설로 분류되는 방폐장 시설의 유치 후 경주시는 정부로부터 특별지원금 3,000억 원을 지원받았고,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의 경주 이전도 약속받았다.

현재 경주 방폐장은 한국원자력환경공단(KORAD)이 운영하고 있으며, 인수·저장 시설과 동굴 처분 시설로 구분된다. ‘코라디움’이라는 홍보관을 설치해 시민들이 지상 지원시설, 동굴 처분 시설을 견학할 수 있도록 해놓기도 했다. 기자도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 견학을 신청해 직접 시설을 둘러봤다. 

우리나라의 폐기물 처분과정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국의 원전에서 중·저준위 방사능폐기물이 발생하면 각 원전 내의 임시저장소로 옮긴다. 임시저장소에 보관된 방사능폐기물은 200ℓ짜리 드럼에 담겨 각 원전의 선착장으로 차량을 통해 운반된다. 내륙지방은 특수 차량을 통해 임시저장소에서 경주 방폐장으로 바로 육상운반하고, 해안지역은 해상운송 전용 운반선인 청정누리 호에 실어 경주 월성 원전 선착장으로 옮긴다. 

방사능 폐기물을 담은 드럼통이 월성 원전 선착장에 도착하면, 월성 원전에서 차량으로 5분 거리에 위치한 경주 방폐장의 인수·저장시설로 다시 육상 운반된다. 인수·저장 시설에서는 중·저준위 폐기물의 방사능 농도, 유해물질 포함 여부 등 정밀 검사를 거친 후 콘크리트 처분 용기에 차곡차곡 쌓는다.

경주 방폐장의 폐기물 처분용기가 차곡차곡 쌓인 인수·저장시설의 모습(사진: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

이어 처분용기를 운반하는 전용 트럭에 싣고 동굴 처분 시설로 운반한다. 경주의 동굴 처분 시설은 3중방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리히터 규모 6.5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내진 설계돼 있다. 처분고, 즉 사일로(Silo)는 해수면 아래 지하 80~130m 지점에 건설됐다. 내부 직경 24m, 높이 50m 규모의 원통형 사일로가 6개가 있으며, 사일로 1기당 평균 1만6,700드럼을 처분할 수 있다. 이러한 사일로가 총 6개이므로 방사능 폐기물 1드럼(200ℓ)을 기준으로 총 10만 드럼을 저장할 수 있는 것.

경주 방폐장의 동굴 처분 시설 입구(사진: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

가장 노후화된 고리원전은 2016년 10월 기준으로 약 4만 개가 넘는 드럼을 임시 보관하고 있다. 전국의 각 원전들도 차례대로 방사능 폐기물의 임시 저장이 포화상태에 이를 예정이라 원전을 계속 사용하기 위해서는 경주 방폐장의 증설이 필수적이다.

경주 방폐장은 뛰어난 기술력과 막대한 예산, 시간을 들여 만든 ‘최첨단 기술의 집합체’라는 게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의 주장이다. 경주시가 매달 진행하는 환경방사선검사에서도 봉길리 마을을 포함한 경주시의 방사선 수치는 모두 정상 범위 안이라고 한다. 지난해 10월 공고된 측정결과 자료에 의하면 봉길리 마을과 인근의  평균 방사선 수치 변동 범위가 0.05uSv/h ~ 0.3uSv/h이며, 이는 경주 전 지역의 수치인 0.075uSv/h ~ 0.189uSv/h 사이에 들어 있다.

봉길리 마을과 인근의 방사선 수치를 나타낸 그래프. 전국의 방사선수치 변동범위가 0.05uSv/h ~ 0.3uSv/h인 것을 감안할 때 경주 전 지역은 0.075uSv/h ~ 0.189uSv/h 사이에 속하고 있어 정상범위이다(사진: 경주시 제공).

하지만 방사선수치 자료와는 별개로 주민들의 불안감이 날로 치솟고 있다. 경주 방폐장은 문무대왕릉 옆의 작은 마을인 봉길리와 인접해 있다. 방폐장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봉길리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방폐장을 반대하는 현수막들이 눈에 띄었다.

‘환경관리센터’로 표기된 경주 방폐장은 봉길리 마을과 인접해 있다(사진: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

방폐장 50m 남짓 인근에 거주한다는 봉길리 마을 주민 박모(64) 씨는 당시 주민투표에서 찬성한 쪽은 대부분 경주시내 주민이고 정작 방폐장 바로 앞에 사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묵살당했다고 불만을 보였다.  박 씨는 당국이 안전하다고 강조해도 주민의 입장에선 마음이 놓이지 않는 데다 아직까지 금전적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전적 보상은 방폐장 부지 땅 주인에게만 이뤄졌지 우리 마을에는 한 푼도 나오지 않았다. 바로 옆에 문무대왕릉도 있고, 우리는 자손대대로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더 이상은 그럴 수가 없어서 슬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월성 원전과 경주 방폐장으로 이어지는 봉길리 마을에 안전대책 보장을 요구하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정).

봉길리 마을 주민 대부분은 문무대왕릉과 근처 관광지를 찾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해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월성 원전에 이어 방폐장까지 들어서면서 주변 상권이 거의 다 죽어버렸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박 씨는 “이 마을에 특별히 주어지는 혜택은 하나도 없다. 혜택은 경주 시내 사람들이 다 보는 반면 봉길리 마을은 죽어간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봉길리 주민 김모(68) 씨는 애초에 경주시가 주민들에게 약속했던 것을 지키지 않아 화가 난다고 했다. 김 씨는 “처음에는 저준위 폐기물만 처리하고 중준위 폐기물은 처리하지 않기로 했었다. 그런데 약속을 지키지 않고 중준위 폐기물까지 처리하고 있으며 심지어 지금은 방폐장을 추가 건설하고 있다. 공단은 시에, 시는 공단에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인터뷰 당시 김 씨를 만난 곳은 홍보관인 코라디움에서 청정누리 공원으로 이어지는 잔디밭이었다. 김 씨는 그 곳에서 원자력환경공단이 주관하는 잡초 제거 용역을 하고 있었다.  공단 측에서 용돈벌이 시키는 격으로 주민 20명에게 3일간 잡초 제거 일을 맡겼다고 했다. 김 씨는 “상권이 다 죽어서 장사도 안 되고, 그래서 이거라도 하고 있어요. 비스켓으로 코끼리 달래는 격 아닌가요”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과연 경주시내에 살고 있는 시민들은 혜택을 받았다고 느끼고 있을까. 경주시 성건동에 거주하는 손모(26) 씨는 경주시가 말한 ‘지역 경제 활성화,’ ‘친환경’을 믿고 투표했는데, 실제로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무슨 일이 있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도대체 저 위험한 시설물을 이곳에 들여와 우리에게 어떤 혜택이 생겼는지, 관리는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인지, 우리의 안전은 보장되는지 알고 싶다”며 주민투표 때의 선택에 ‘자괴감’이 든다는 심경을 밝혔다. 지난해 9월 지진 발생한 후 석달이 지난 경주는 겉으로는 안정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지만 시민들은 지진과 그 이후 계속되는 여진으로 인해 심적으로 많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민들은 당국의 주장대로 설사 방폐장이 튼튼하게 지어졌더라도, 방사능 수치가 낮게 측정된다 할지라도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방사능 유출 사고에 대해 항상 두려워하고 있다. 방폐장이 최첨단 시설로 이루어졌고, 현대 기술의 집약체인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지만 지금 경주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방사선 수치’라는 숫자나 과학이 아닌 듯하다. 그래서 ‘겁이 나서 못 살겠다’는 경주 시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대책이 근본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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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뜸맘 2017-01-08 07:57:26
경주 지진만으로도 불안한데ㅠ
빙사능 걱정까지..대책이 꼭 필요할것 같아요

천사민희사랑 2017-01-07 23:14:10
판도라 영화 보고 무섭다구 느꼈는데
설마 ....생각과 우려로만 끝나기를
절대 현실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사 2017-01-05 22:51:14
항상 불안하고 불안해요
판도라 저도 영화봤지만 정말 저게 현실이라면 경상도지역이 완전히 폐쇄된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텐데 정말 불안해요~
영화 보는 내내 눈물 흘리면서 봤는데 영화속 일들이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 관계자 모든 분들이 안전에 안전을 신경쓰고 정부에서도 무리한 원전가동이 아니라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관리가 필요한거 같아요
그 지역분들의 불안함을 객관적으로 해소시켜 드렸으면 좋겠어요


대학생 2017-01-05 22:28:25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걱정됩니다;;

부폰 2017-01-05 14:20:51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무서웠는데
예사로 볼 일이 아닌것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