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투병 중에도 하루 반나절씩..."나는 봉사 중독증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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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투병 중에도 하루 반나절씩..."나는 봉사 중독증 환자"
  • 취재기자 변지영
  • 승인 2016.12.1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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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자봉왕' 최명심 씨, "처음엔 '남 돕는다' 교만감 들었지만 이젠 내가 치유받아요" / 변지영 기자

“봉사는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예요. 스스로 봉사에 발을 디디는 순간 못 빠져나가요. 처음에는 ‘남을 돕는다’는 교만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들이 저를 치유합니다. 그렇게 저는 봉사에 중독되었습니다.”

부산시 진구 양정동에 사는 자원봉사자 최명심(58) 씨는 봉사를 이렇게 정의한다. 누구나 그렇듯, 최 씨도 처음부터 봉사 활동에 바로 흥미를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의 봉사 활동은 작은 단체로부터 시작되었다. 2008년, 딸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 모임이었다. 부모들의 자발적 모임 단체였던 ‘부초 씨앗’에서 매주 토요일 봉사 활동을 다니게 됐다. 그러다 1년 쯤 지났을 때, 그녀는 청천병력처럼  암 진단을 받게 됐다.

인터뷰 도중 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최명심(58) 씨(사진: 취재기자 변지영).

2010년 3월 처음 암 진단을 받은 후 4월에 1차 수술을 했다. 그 후 가끔 ‘부초 씨앗’ 회원들과 함께 병원 봉사 활동도 계속해서 다녔다. 최명심 씨는 암세포를 빨리 제거하면 암이 낫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암이 첫 수술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속을 썩였다. 1차 수술한 지 1년 2개월인 2011년 5월에 2차 재발, 또 4개월 만인 2011년 9월에 3차 재발했다.

그런 와중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생긴 자원봉사 연합회인 ‘한국 자원봉사 연합회’의 활동을 신문에서 보고 여기에 발을 들였다. 그렇게 시작한 두 번째 봉사 활동 대상은 고아원이었다. 고아원에 가서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놀아 주는 일이었다. 매주 1회 토요일에 아이들과 함께 어느 날은 백화점 가기, 어느 날은 박물관 가기, 어느 날은 지하철 타기 등등을 하느라 1년 간 고아원을 들락거렸다.

고아원 봉사 후, 신문에서 ‘아름다운 가게’ 광고를 보게 되고, 그 단체에 들어가게 됐다. 세 번째 봉사 활동이었다. 처음에는 재능기부자가 되어 문을 두드렸다. 예전에 ‘여성문화회관’에서 배웠던 미싱일을 하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봉사단체의 환경이 열악해서 옷 수선이 아닌 다른 봉사로 옷을 분류하는 활동에 나섰다. 

‘아름다운 가게’는 물건의 재사용과 순환을 통해 사회의 생태적·친환경적 변화에 기여하고 국내외 소외 계층 돕기 및 공익 활동을 지원하며 시민의식의 성장과 풀뿌리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 그곳에서 최 씨가 했던 활동은 바로 ‘되살림’ 프로젝트였다. ‘되살림’ 프로젝트는 물건을 기증받으면 이 물건을 되살릴 것인지 폐기할 것인지 분류하는 일이었다. ‘되살림’ 받은 물건들은 쓸 수 있는 상태로 다시 손을 봐서 소비자에게 되돌아 가게 된다.

‘되살림’ 분류작업 후 유통 과정이 궁금했던 최명심 씨는 ‘아름다운 가게’의 매장을 나가게 됐다. 매장은 부산에 7개가 있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린다. 봉사자들은 오전반 오후반으로 두 번 나눠 판매하는데, 보통은 4인 1조로 일하지만, 사람들이 없을 때는 3인 1조, 2인 1조, 심지어는 혼자서 할 때도 있다. 그렇게 해서 생긴 매출은 각 구청이 추천해 ‘아름다운 가게’가 선정한 사람에게 전달된다. 그녀는 “실제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이 전달되는 것을 보니 너무나도 뿌듯했다”고 말했다.

봉사활동과 더불어 항암 치료는 동시에 진행됐다. 치료와 함께 봉사활동은 오히려 더 왕성해졌다. 2011년 6월, 9월, 10월 연이은 세 차례 수술 후에도 이틀에 한 번씩 면역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야 했다. 그래도 봉사 활동을 쉬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는 일도 없이 수술과 항암 치료를 그냥 받기만 했다면 아마 우울증에 걸렸을 거에요”라고 최 씨는 말했다. 그런 그에게 봉사 활동은 '암과의 전쟁'에서의 돌파구였다.

처음에 ‘봉사’란 ‘남을 도와주러 간다’는 교만한 마음이 먼저였다. 그러나 해볼 수록 오히려 그 사람들이 자신을 치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는 봉사를 통해서 힐링이 되고 기쁨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하루라도 봉사 활동을 안가면 몸이 근질거렸다. 그렇게 그녀는 봉사에 중독이 되었다.

1년에 1,000 시간씩. 3년이 지난 2015년 최 씨의 봉사 시간은 총 3,000 시간이 차게 되었다. 봉사하면서 느낀 것은 남이 하자고 해서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봉사하고 싶어서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것. 봉사에 스스로 발을 디딘 사람은 시간과 관계 없이 평생을 간다고 한다. 1년에 1,000 시간은 하루도 빠짐없이 반나절을 해야 이룰 수 있는 시간이다. 최 씨는 “물론 육체는 힘이 들지만, 그 봉사가 오히려 나를 치유해 준다”고 말한다.

2015년 부산 자원봉사자 격려의 날 때 받은 최명심 씨가 받은 ‘금배지’(사진: 최명심 씨 제공).

부산광역시 자원봉사센터에서는 매년 부산 자원봉사자 격려의 날을 연다. 이 센터에서는 누적된 봉사시간이 1,000시간, 2,000시간, 3,000시간 단위로 각각 브론즈, 실버, 골드 배지를 주는데 무조건 시간만 채운다고 해서 다 주는 것은 아니다. 1년에 500시간을 채운 상태에서 브론즈는 500시간을, 실버는 1,500시간을, 골드는 2,500시간을 추가로 채워야 한다. 최 씨는 2015년에 금뱃지를 받으러 갈 때 3,000 시간이 적은 시간이 아니니까 수여 받는 사람 수가 적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88명이나 금배지를 받았다. 그때 감동한 것은 82세의 할머니도 그 자리에 계셨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그는 더 확실히 느꼈다. 봉사라는 것은 발을 들이는 사람은 정말 '중독자'가 되어 끝까지 간다는 것을. 

그녀는 아직도 아프다. 치료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몸으로 할 수 있는 것 외에 입으로 할 수 있는 봉사 활동을 생각해 보고 있다. 얼마 전인 10월에도 암 수술한 부위에 문제가 있어서 또 수술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원 봉사자를 교육하는 ‘교육사’가 될 생각이다.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으로 직접 봉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봉사할 수 있는 인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돼서 봉사교육사 교육을 받으려고 준비이에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기자는 봉사에 대한 그의 헌신과 열정은 그의 몸 속에 숨은 암을 퇴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봉사 활동 자체가 그의 가장 강력한 항암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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