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파이터로 못 다 이룬 꿈, 파이어 파이터로 되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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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파이터로 못 다 이룬 꿈, 파이어 파이터로 되살린다
  • 취재기자 김태우
  • 승인 2016.12.13 00:05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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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으로 챔피언 꿈 접고 소방관 준비하는 이종격투기 선수 황문현 씨의 인생 제2막 / 김태우 기자

이종격투기는 유도, 레슬링, 킥복싱, 합기도, 태권도, 복싱처럼 다른 종류의 무술을 배운 사람들이 싸움을 벌이는 스포츠다. 최근의 이종격투기는 레슬링과 권투를 합친 것과 비슷한 유형으로 진행되며, 이것은 고대 올림픽의 ‘파크라티온’ 경기와 흡사하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허약한 학생이라도 이종격투기에 입문하면 불과 몇 달 만에 아무도 건드리기 어려운 파이터가 된다는 시빅뉴스 2015년 9월 15일자 기사도 있었다. 화끈한 혈전을 선보이는 이종격투기는 마니아 팬을 확보할 정도로 인기 케이블 TV 프로이기도 하다.

2012년 프로 강자전 에서 우승한 후 포즈를 취하는 황문현 씨(사진: 황문현 제공)

전남 순천에 사는 황문현(25) 씨도 격투기 선수를 꿈꾸며 프로에 입문했다. 하지만 그의 격투기 챔피언 꿈은 생각과 달리 가시밭길이었다. 참고 도전하고 이를 악물었지만, 격투기 챔피언의 꿈은 그에게서 멀어져만 갔다. 결국, 황 씨는 글러브를 벗고 이종격투기 파이터의 꿈을 접았다. 그는 이제 이종격투기 파이터가 아니라 파이어 파이터(fire fighter·소방관)의 길을 가고 있다. 황문현 씨는 왜 파이터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을까?

황문현 씨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8년 격투기에 첫발을 딛게 됐다. 그가 격투기를 시작한 것은 만화 <더 파이팅>을 본 것이 계기였다. <더 파이팅>은 몸이 약해 왕따를 당하던 주인공이 우연히 복싱 세계에 입문하게 되고 국가를 대표하는 프로복서, 챔피언이 되는 과정을 그린 만화다. 이 만화를 통해서 사나이 간의 뜨거운 우정과 숨 막히는 경기 장면에 감동한 그는 격투기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처음에 시작한 건 격투기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었지만, 어느새 프로 입문을 목표로 훈련하면서 진지하게 격투기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체육관에서 열심히 격투기를 배웠다. 그 해 겨울방학에 첫 경기를 했고, 대회 첫 우승도 따냈다. 그는 첫 경기의 감격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는 “토너먼트 결승전 때 상대 배에다가 연속으로 니킥을 꽂았던 게 아직도 짜릿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 첫 경기 때 체육관 관장에게 타고난 격투기 인재로 각인된 그는 본격적인 훈련에 나섰고, 격투기가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대학 진학도 포기했다.

경기는 한 달에 1회, 많으면 2-3회. 들어 오는 파이트머니는 한 달에 30만 원 정도. 지면 그나마 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한 달에 한두 번 열리는 경기를 위해 한 달 동안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밤 10시 30분까지 훈련해야 했다. 그는 높은 강도의 운동 사이에 불완전한 휴식을 넣어 일련의 운동을 반복하는 인터벌 트레이닝, 20초 운동과 10초 휴식으로 총 8세트 4분을 반복하는 타바타 등을 강행했다. 시합에 이기려면, 그래서 30만 원의 파이터 머니를 손에 쥐려면 그렇게 해야했다. 그게 그가 사는 길이었다.

수입이 고작 그 정도인 격투기 선수에게 어려운 집안 사정은 항상 생활비에 쪼달리는 고통을 주었다. 그는 “훈련하면서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었다”며 “격투기 동료들도 역시 이렇게 아르바이트와 병행하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격투기 선수 생활은 힘들었지만, 체육관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함께 웃고, 슬퍼하며 가족 같이 지낸 체육관 동료들이 있었기에 그는 그 버거운 나날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격투기만으로는 격투기 선수가 계속 될 수 없는, 가난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모순적 삶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소방관이 되기로 결심했다. 운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다른 직업이 필요했고, 그에게 눈에 띈 것이 소방관이었던 것이다. 즉시 그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 전문대 소방과에 입학했다. 2011년이었다.

대학 입학 후에도 학업과 운동을 겸업했다. 그동안 경력도 차서 1학년 여름방학 때는 격투기 프로 선수로 입문하게 됐다. 하지만 프로 첫 경기에서 그는 무참히 패배하고 말았다. 그는 “역시 프로 무대는 달랐다. 평소처럼 경기에 임했는데도 라운드가 지나갈수록 체력의 한계가 느껴졌고, 상대가 강했다. 지금까지 경기했던 것과는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고 말했다.

2012년 황문현 씨의 경기 장면. 대학생이 되어도 황 씨(파란 글러브)는 꾸준히 경기에 참가했다(사진: 다음TV팟 ‘PCK TUF 시즌2 황문현 씨 게임 장면 캡처).

대학생이 된 그는 3, 4개월에 한 번 정도 경기에 참가하면서 격투기 선수 생활을 계속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는 알바도 끊을 수 없었다. 그는 공부, 운동, 알바를 번갈아 뛰면서 강철 체력이 아니고는 감당할 수 없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래도 그는 챔피언의 꿈을 꾸며 땀을 흘렸다.

2012년 입대를 앞둔 그는 챔피언의 꿈은 제대 후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입대 직전 한 경기를 치르게 됐다. 당시에 60kg인 그는 체급이 비슷한 상대를 찾았지만, 그게 여의치 않아 체급 차이가 있지만, 선수 양자 합의 하에 70kg의 상대와 싸우게 됐다. 평소의 상대였으면 휘청거릴 정도로 때렸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체급이 높은 이번 상대는 꿈쩍도 안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계속 싸우다보니 싸워 볼 만했다. 3라운드 초반, 그는 상대를 향해 플라잉 니킥을 날렸고, 상대가 반격으로 날린 훅이 들어왔고 그의 팔에 황 씨의 다리가 부딪치면서 다리의 바닥 착지가 어긋났다. 발바닥에 엄청난 통증이 왔다. 그러나 그는 다리를 절며 통증을 참고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3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뜨거운 공방이 오갔고, 결과는 황 씨의 판정승이었다. 경기 후 진단 결과 발바닥 뼈 중 하나인 ‘중족골(中足骨)‘이 부러졌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도 그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착지하고 발바닥에서 부러졌다는 느낌이 오자 포기할지 계속할지 순간 고민했지만, 지금까지 해온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끝까지 싸웠다. 그러나 그 경기의 후유증은 컸다. 전치 6개월 부상 진단이 나왔다. 군입대도 치료 후인 2013년으로 미뤄야 했다.

그리고 제대 후 다시 체육관을 찾았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아꼈던 체육관은 관장과 관원들의 마찰 때문에 폐쇄되고 없었다. 격투기로 혹사시켰던 몸이 제대 후 긴장이 풀렸는지 부상당했던 허리, 발이 온전치 못해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그는 숨 한 번 크게 쉬고 허공을 보며 마음을 굳혔다. 격투기는 여기까지였다. 격투기를 그만두기로 한 그는 지금까지 다져온 체력을 회복해서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격투기 파이터가 아니라 파이어 파이터, 소방관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는 올해 대학을 졸업했고, 내년에 있을 소방관 시험을 준비 중이다.

그는 말했다. “정말 과거 힘들었던 격투기 선수 시절 때문에 지금은 몸이 여기저기 고장 났지만, 건강을 되찾아서 단련했던 것을 바탕으로 시민들을 지키는 소방관의 꿈을 이루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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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 2017-12-06 14:46:45
와... 한 편의 드라마 같네요

시빅뉴스 2016-12-22 15:46:42
수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나 2016-12-22 14:05:45
'챔피언'이 표준어입니다. '참피온'은 champion의 일본식 발음을 한글로 표기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