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학교에 적응 못한 새터민 아이들 10여 년 동안 품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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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학교에 적응 못한 새터민 아이들 10여 년 동안 품어 왔어요"
  • 취재기자 김민정
  • 승인 2016.12.12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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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장대현 학교' 교장 임창호 교수의 '어미새 이야기' / 김민정 기자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로 건너온 탈북 청소년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중도에서 학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16년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98년부터 올해 8월까지 근 20년동안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약 3만 명의 북한 주민 중 청소년은 3,500여 명. 이들 중 일부는 각급 학교에서 그런대로 적응하고 있으나 대부분은 수업 진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거나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등 힘든 학창생활을 보낸다. 적지않은 탈북 청소년들은 결국 일반 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로 진학하거나 때로는 아예 학업을 중단하기도 한다. 특히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탈북 청소년들은 정규 학교를 그만두는 순간 다른 대안 교육기관이 없어 교육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탈북민의 사정을 알고 그들을 따스하게 품는 어미새 같은 사람이 있다. 부산 강서구에 소재한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장대현 학교'의 교장 임창호(61) 교수다. '장대현'이란 이름은 옛날 교회가 세워져 있던 평양의 한 지명에서 따왔다. 임 교수는 고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통일부 산하 재단법인 '북한인권과 민주화 실천연합'의 이사장이기도 하다.  

탈북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임창호 교수(사진: 취재기자 김민정).

경기도 평택에서 나고 자란 임 교수는 대학 시절, 서울 강서구에 있던 시내버스 회사인 ‘김포교통’의 야학에서 서울로 갓 상경한 버스 차장들에게 영어, 수학 등을 가르쳤다. 히로시마 대학교 대학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인 1993년, 그는 자신의 모교인 고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 교수로 부임하게 됐다. 하지만 1996년 8월, 그는 돌연 교수직을 사퇴하고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으로 떠났다. ‘휴스턴 한인 장로교회’의 성경연구원 원장이자 목사로서의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과감하게 교수직을 버리고 떠난 이유에 대해 임 교수는 “미국으로 이민 간 한인들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생활하던 2003년, 미국 국회와 UN 등지에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한국에 있던 많은 탈북민들이 미국의 초청을 받아 미국 의회와 UN에서 북한의 실상을 폭로했다. 마침 임 교수는 당시 친분이 있던 북한 인권 운동가 ‘수잔 숄티’의 도움으로 휴스턴 교회로 탈북민들을 초청했고, 그 때 처음으로 북한의 실상을 직접 접하게 됐다.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북한의 현실을 제대로 알게 된 뒤, 그는 “꼭 이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해 2004년부터 미국에서 북한 인권 활동을 벌였다.

우선 임 교수는 미국에 살고 있는 탈북 초등학생 아이들을 휴스턴 한인 장로교회로 불러 방과 후 수업을 진행했다. 그는 한인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해 매일 오후 3~6시 학교 수업 진도에 맞춰 탈북 어린이들의 복습을 도왔다. 집에 보내기 전에는 저녁밥까지 꼭 먹여 보냈다. 임 교수는 당시의 교육봉사를 이렇게 회상했다. “2003년 여름부터 미국에서 탈북 청소년 교육을 시작했는데, 10월쯤 되니 애들 성적이 쭉쭉 올라가는 거예요. 당연하지. 누가 안 도와줘서 그런 거예요.”

휴스턴 교회의 방과 후 수업 소문을 듣고 점차 중·고등 과정의 탈북 학생들도 찾아오기 시작했다. 탈북민의 왕따 문제는 당시나 지금이나 초등학교보다는 중·고등학교에서 더 심각하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슷한 시기에 사춘기를 보내다보니 탈북 아이들을 향한 한국 아이들의 폭력적인 시선이나 언어·육체적 폭력 등의 강도가 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학교에 대한 반감, 반항심이 생겨 아예 학교를 가지 않는 탈북 아이들이 속출한다. 2003년 당시에 이미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던 탈북 청소년들의 학업 포기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임 교수는 '이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한국에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탈북민을 위한 학교를 세우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2006년에 그가 거주지를 한국으로 옮기면서 구체화됐다. 2006년 고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 교수에 재임용된 후 본격적으로 한국에 살고 있는 탈북민 돕기에 나섰다. 그는 탈북민들의 실질적인 고충이 무엇인지 알아보던 중, 특히 탈북민들이 교육과 취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탈북민이 한국에 오면 정부에서 정착금, 지원금 등을 지원하지만 정작 탈북민에게 적합한 교육·취업기관은 잘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운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는 모두 서울·경기 지역에만 있어서 영·호남 지역의 탈북 청소년들은 갈 곳이 없었다. 북한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남한에서 다시 학교를 다니는 탈북 청소년들은 새로운 어휘,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 생소해 쩔쩔매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그런 일들로 인해 왕따가 되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런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기 위해 1년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임 교수는 한 방송에 출연해서 “탈북민을 위한 학교를 짓고 싶다”고 말했고, 방송을 들은 한 사람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2012년 7월의 일이었다. “(부산)강서구에 4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걸 드릴 테니 학교를 한 번 해보시죠.” 기적 같은 일이었다. 임 교수는 학교를 세우면서 있었던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건물을 기증받은 일을 꼽았다. “건물을 기증받으면서 비로소 학교 설립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어요. 더 감사한 건 그분이 지금까지도 매달 후원해 주시고 방문한다는 것이죠.” 12억 원을 호가하는 건물을 아무 대가 없이 기증한 익명의 시민은 한사코 이름이나 얼굴을 밝히는 것을 거절하고 있어서 아직도 ‘이름 없는 천사’로 남아 있다.

기증 받은 건물을 리모델링한 장대현 학교 전경(사진: 취재기자 김민정).

기증받은 건물을 자산으로 해 2012년 임 교수는 통일부에 재단법인을 등록했다. 그것이 영·호남지역 유일의 통일부 산하 재단법인 ‘북한 인권과 민주화 실천 연합’(이하 북민실)이다. 현재 북민실에서는 ‘장대현 지역아동센터,’ ‘장대현 학교,’ ‘장대현 직업교육원’ 등의 교육기관을 운영하며 탈북 유아부터 청소년, 어른까지 전 연령대의 탈북민 남한 적응을 돕고 있다. 그야말로 탈북민들의 교육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장대현 학교는 영·호남지역의 유일한 탈북민 대안학교로, 부산시 강서구 신호동 246-6번지에 위치해있다. ‘장대현(章臺峴)’이란 북한 평양에 있는 지명으로, 1893년 이곳에 ‘장대현 교회’가 세워졌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 교회 대신 김일성 주석의 동상이 세워져 있단다. 임 교수는 통일이 되면 다시 그 자리에 장대현 교회와 장대현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바람으로 ‘장대현 학교’라는 이름을 지었다.

장대현 학교는 개교한 지 3년째임에도 불구하고, 전국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를 대상으로 대한변호사협회가 선정한 ‘2016년도 시범학교’로 지정됐다. 또한, 한국의 150여개 북한 인권단체 가운데 미국 국무부에서 뽑은 교육 부문의 모범사례 기관으로 선정돼 지난 5월 3일 미 국무부 월터 더글라스 차관보가 방문하기도 했다.

2016년 5월 3일 미국 국무부 월터 더글라스 차관보가 장대현 학교를 찾았다(사진: 임창호 교수 제공).

현재 장대현 학교에서는 7명의 선생님이 24시간 아이들과 함께 살며 교육 뿐 아니라 생활 지도까지 돌보고 있다. 이 외에도 수십 명의 대학생 및 교사들이 자원봉사자로서 교육을 맡고 있다. 탈북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7명의 교사 중 한 명인 교무부장 박영진(33) 교사는 “이 아이들은 매우 귀한 아이들입니다.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 자체가 저에겐 축복 같은 일이죠. 아이들도 성장하지만 오히려 제가 더 성장하는 느낌이 듭니다”라며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내비쳤다.

전교생이 17명인 장대현 학교는 지난 3월 고등학교 과정 첫 졸업생 1명을 배출했다. 장대현 학교는 중학교 과정만 학력이 인정되는 ‘위탁형 대안학교’다. 장대현 학교의 고등학교 과정은 아직 교육청에서 학력인정 심사를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이번 첫 졸업생은 검정고시를 치러야했다.

헤어스타일리스트가 꿈인 첫 졸업생은 마침 장대현 학교에 도움을 주고 있는 미용실 원장에게서 미용기술을 배우고 있다. 임 교수는 첫 졸업생을 배출한 것에 대해 “보람 있죠. 부모가 애 하나 키운 것처럼 뿌듯함과 보람을 느끼죠”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내년 초에 졸업을 앞두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의 학생 3명은 모두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다. 각각 정치외교학과, 국제관계학과, 아동복지학과로 진로를 정했고, 북한인권 변호사, 유치원 선생님 등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다.

현재 장대현 학교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금의 장대현 학교는 4층짜리 건물 하나에 기숙사, 교실이 모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수용할 수 있는 학생 수가 매우 제한적이다. 2017년에는 중학교 과정에 8명의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지만, 이미 50명이 지원한 상태이다. 그래서 임 교수는 장대현 학교 바로 옆의 70평 부지를 구입해 기숙사를 건축하고, 현재 사용하는 건물을 강의동으로 바꿔 탈북 청소년 신입생을 25명 정도 더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숙사 건립 계획을 들은 한 기부자가 해당 부지 구입을 위해 선뜻 1억원을 기부하겠다고 나섰지만, 건물을 세우고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려면 10억 원쯤 더 필요한 상황. 하지만 임 교수는 이번에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힘들겠지만 결국은 성공할 것이라 생각해요. 지금까지 진행된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죠. 뜻이 있는 분들이 동참해 주실 것이라 생각하고 또 어디선가 천사 같은 분들이 나타나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교수로 일하는 시간을 뺀 개인적인 시간은 대부분 탈북민들을 돕고 북한 인권 신장을 위한 활동에 쓰고 있다. 그처럼 열심히 뛰어다니는 이유에 대해, 그는 “저는 교육자로서 미래를 준비하고 좋은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일 꿈나무인 그 특별하고 보석 같은 아이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돕는 것은 내 꿈의 실현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장대현 학교 중학교 과정에 있는 박모(15) 양은 임 교수에 대해 “우리를 위해 이렇게 좋은 학교를 시작해 주셔서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장대현 학교를 다니면서 통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어머니의 고향에 대해 알아갈 수 있어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학생 염모(17) 군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장대현 학교에 두 가지 목표를 두고 있다. 첫째는 한국 땅에 사는 탈북 청소년들이 향후 ‘통일 한국’을 위한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학교가 되는 것. 두 번째는 통일 이후에 북한 아이들에게도 남한에서 가르쳤던 장대현 학교의 커리큘럼을 적용해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을 하는 학교로 만드는 것이다.

임 교수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탈북민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며 남·북의 통일속도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그런 임 교수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장대현 학교와 탈북민들을 돕고 있다.

임창호 교수가 장대현 학교에서 아이들과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사진: 임창호 교수 제공).

전액 후원금과 봉사활동으로 운영되는 장대현 학교는 시민들이 만든 것이자 시민들이 일궈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임 교수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부지원금을 유치한다면 학교 운영이 수월해질 수도 있을 터. 하지만 그는 조금 늦고, 돌아가는 길일지라도 시민들의 소중한 1,000원, 2,000원을 기부받아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통일로 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이 기적 같은 이야기는 그리 먼 곳이 아닌, 대한민국 부산에서 일어나고 있다. 시민들의 소중한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모여 통일을 향한 새로운 발돋움이 될 것이다. 추운 겨울을 따스하게 메워줄 장대현 학교에는 멋진 시민들, 그리고 임창호 교수가 있다.

후원계좌: 부산은행 101-2017-6323-00 / 국민은행 567601-31-316035(연말 기부금 공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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