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술 권하는 사회....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상태바
저술 권하는 사회....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 칼럼니스트 유인경
  • 승인 2016.12.08 0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칼럼니스트 유인경

책이 너무 안 팔려 출판사들마다 울상인데 신기하게도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장 핫 플레이스는 책방이란다. 음료도 같이 파는 북카페가 특히 인기라기에 이곳저곳 구경을 가봤다. 임대료를 어찌 지불할지 걱정스러운 서울 강남의 세련된 건물에 위치한 책방도 찾았고, 청춘들이 즐겨 찾고 출판사들도 많은 홍대 부근의 북카페도 훑어 보고, 최근에 뜨는 동네라는 해방촌 언덕길의 책방도 방문했다. 

새로 문을 연 작은 책방이나 북카페에는 정작 책을 사는 이들보다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책을 펼치기보다 연인의 손을 잡는 청춘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 분위기보다 개성 넘치는 책들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어마어마한 책들이 가득한 대형 서점에서는 눈에 띄지도 않고 존재조차 모를 재미 있는 책들이 뜻 밖에 많았다. 

<방귀의 예술>, <한밤중, 내 방 여행하는 법>, <연필깎이의 정석-장인의 혼이 담긴 연필깎이의 이론과 실제>, <빵과 강아지>, <서울의 나무들>, <탐정 사전>, <지루한 일상에 던져진 43개의 이상한 상상>.... 이런 귀여운(?) 제목의 책들이 곳곳에 진열되어 있다.

<방귀의 예술>이란 책은 피에르 토마 니콜라스 위르트란 작가가 쓴 책인데 "변비증을 앓는 사람, 근엄하고 심각한 인간, 우울증에 걸린 마나님, 그리고 편견의 노예로 사는 모든 이를 위한 체계적인 이론, 생리의학적 시론"이란 거창한 부제를 달고 있다. <빵과 강아지>는 온갖 빵 요리 옆에서 호시탐탐 노리는 강아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다. 일본의 한 여성은 1년동안 매일 오후 3시에 자신이 한 일을 글과 그림으로 그려 일기 같은 책을 펴냈고,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그다지 예뻐보이지 않는...)에 관한 사진집을 낸 작가도 있다.

‘책’이라면 심오한 철학, 심도 깊은 전문성, 진지한 성찰 등을 바탕으로 하거나 전문작가나 밥 딜런, 트럼프 등 유명인들의 삶을 다뤄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는 책들이 이토록 많은 것이 너무 반가왔다. 유치하거나 가벼운 책이란 뜻이 아니라, 자신이 관심과 애정을 갖는 분야에 대해 열심히 연구하고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정보를 주려는 의지, 그리고 공들여 책으로 퍄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프랑스 파리의 셰익스피어 서점이나, 영화 <폴링 인 러브>에도 등장한 뉴욕의 리졸리 서점, 에술서적만 파는 타센 서점 등 외국엔 책방이 관광명소가 되고 최근엔 서점에서 각종 콘서트를 열거나 세미나도 여는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라잡고 있다. 아동도서 전시전이 열리는 이탈리아 볼로냐에는 장난감같이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책을 파는 서점들이 많아 종일 구경했던 추억도 있다.

특히 일본의 츠타야 서점은 ‘서점의 미래’라고 불릴만큼 혁명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30년전 마스다 무네아키란 사람이 오사카에서 비디오와 CD도 빌려주는 작은 책방으로 시작, 이제는 일본에 1,400여개의 매장을 갖고있다. 동경 다이칸야마의 츠타야 서점에 가보면 남녀노소가 책을 보고 음반을 듣는다. 대체 돈을 어떻게 버나 궁금했는데 요리책 옆에는 요리기구를 파는 등 책과 관련된 상품도 팔고 카페와 식당도 같이 운영한다. 록본키의 츠타야 서점은 새벽 4시까지 문을 연다. 젊은이들은 물론 30년전에 츠타야에서 책과 음악으로 자신의 취향을 구축한 중장년층이 이제는 기꺼이 책과 음반을 구입하는 모습이 참 근사했다. 

우리나라도 독특한 작은 서점들이 늘어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곳에서 책을 사지 않아도 적어도 책을 뒤적여보는 것만으로도 책과 가까와질 수 있으니 말이다. 우연히 들춰본 책에서 발견한 문장 하나가 따뜻한 치유의 효과를 주거나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젠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90대 치매 어머니의 식사 수발을 하기 위해 음식을 만들다가 요리책을 펴낸 65세의 할아버지, 어머니와 세계 여행기를 펴낸 청년 등등 문학이나 특정 분야 전문가가 아니어도 자기만의 체험과 생각이 있으면 책으로 펴내면 된다. 잘 팔리고 안 팔리고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평범한 일상을 비범하게 보는 시선, 사소한 일에도 기쁨을 발견하는 힘만 있으면 된다.

신문이나 텔레비젼에서 막장 드라마보다 더 엽기적인 사건들이 계속 드러나는 요즘, 이런 작은 책방과 개성있고 훈훈한 책을 통해서라도 혼탁해진 머리와 가슴을 명징하게 씻어내고 싶다. 아, 박근혜 대통령도 최순실과 만나는 시간이나 태반 주사를 맞는 시간에 책을 읽었으면 탄핵국면은 맞지 않았을텐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