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한국 노래 더 잘하는 미국 영어강사의 노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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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보다 한국 노래 더 잘하는 미국 영어강사의 노래 사랑
  • 취재기자 김연수
  • 승인 2016.12.18 08:0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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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프리스터 씨, <전국노래자랑> 출연 후 TV 프로 단골...한국 가수와 함께 음원 작업도 / 김연수 기자
<전국 노래자랑>에서 노래하고 있는 그렉 프리스터 씨(사진: KBS <전국노래자랑> 캡쳐).

2012년, KBS <전국노래자랑>에 한 외국인이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에서 왔습니다”라며 그가 부른 노래는 가수 임재범의 <너를 위해>. 임재범의 거친 목소리를 따라했다가는 좌절감에 빠지기 일쑤인 이 곡은 오직 원곡 가수 임재범만이 가능한 노래로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그는 이 노래를 R&B 스타일로 편곡해 자신의 노래처럼 소화했다. 게다가 그의 한국말은 완벽했다. 그의 노래는 방송 직후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이른바 ‘전국노래자랑 레전드’라는 이름으로 업로드돼 단일 동영상으로 16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하루 아침에 ‘유튜브 스타’가 된 것.

그렉 프리스터 씨가 유튜브에 업로드한 <너를 위해> 노래 영상(영상: 그렉 프리스터 제공)

주인공은 바로 그렉 프리스터(Greg Priester) 씨. 프리스터 씨가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게 된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한국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취미로 노래를 부르며 이따금 결혼식 축가를 부르기도 했다. 그 무렵 그는 친구의 부탁으로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게 됐다. 그런데 그 자리에 마침 KBS PD가 있었던 것. 당시 <전국노래자랑>은 ‘지구촌 노래자랑’이라는 외국인 특집을 기획하고 있었다. PD는 프리스터 씨의 노래를 들은 뒤 곧바로 출연을 제의했다. 프리스터 씨는 “프로듀서가 저에게 혹시 TV에 출연하지 않겠냐고 물었죠. 저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승낙했어요”라고 말했다. 준비된 자에게 행운이 온 것이다.

어느덧 한국생활 9년차가 된 프리스터 씨. 부산 광안리 바닷가를 여행하고 있다(사진: 그렉 프리스터 제공).

프리스터 씨는 한국에서 9년째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 1983년 생으로 올해 33세인 그는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에서 태어났다. 인디아나 주의 와바시 대학에서 영어, 수학, 그리고 중등교육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인디아나 주 공립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그는 미국에서 근무하던 당시를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외국을 여행하며 그 나라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많은 한국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프리스터 씨는 전화로 한국의 학원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한국 사람들이 굉장히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학원에서도 자신을 정말 필요로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그렇게 2007년 처음 한국에 들어와 경기도 파주 영어마을에서 2011년까지 일했다. 처음 한국에 왔던 그날을 회상하며 그는 “서울 일산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서울이 북한과 가깝다는 걸. 다행히도 한강이 저를 보호했기에 안심했죠!”라며 웃었다.

공연 무대에 오른 프리스터 씨. 환한 미소가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를 연상케 한다(사진: 그렉 프리스터 제공).

프리스터 씨의 장난기 어린 밝은 표정은 그를 보는 사람들도 미소 짓게 만든다. 그는 “행복에 집중하세요”라며 자신의 삶의 기준은 언제나 ‘행복’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국노래자랑> 또한 즐기는 마음으로 출연했다. 그는 자신의 노래가 이렇게까지 유명해질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겠단 생각뿐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가 무대에 아무 준비 없이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 그의 짧은 무대엔 긴 시간의 노력이 숨어 있다. 그는 2011년 MBC <나는 가수다>를 통해 임재범이라는 가수를 처음 알게 됐는데, 임재범의 무대에 감명을 받고, 그의 노래를 카피하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 그는 한국말을 거의 못 했고 한글도 읽지 못했다. 그는 <너를 위해> 음원을 들으며 임재범의 발음을 무작정 따라했다. 귀로 들리는 발음을 똑같이 따라 하기 위해 그는 수없이 연습했다. 엄청난 노력 끝에 <너를 위해>는 비로소 ‘따라하기’가 아닌 오직 그만의 노래가 됐다. 그는 “임재범의 발음을 똑같이 따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그리고 수시로 한국인 동료에게 발음을 검사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한옥마을에서 한복을 입고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프리스터 씨(사진: 그렉 프리스터 제공)

항상 밝은 성격인 그이지만 한국 생활 초창기에는 이런저런 인종차별을 겪어 힘들었다. 과거보단 덜하지만 요즘도 보이지 않는 차별을 느낄 때가 있다고. 그는 “물론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저는 이런 어려움들을 극복할 만큼 충분히 강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외국인이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노래하는 장면에 출연한 프리스터 씨(사진: tvN <응답하라 1988> 캡쳐).

그가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 지 어느덧 4년이 흘렀고, 이제 <전국노래자랑> 하면 그는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이를 증명하듯 <전국노래자랑>이 영화로 제작될 때 프리스터 씨가 참가자 역할로 출연했다. 프리스터 씨는 “제 영상이 꽤 인기를 얻은 뒤, 영화 <전국노래자랑> 감독님이 저에게 카메오 출연을 제의했어요. 제 대답은 심플했죠. YES!" 

작년에는 인기 드라마 tvN <응답하라, 1988>에도 출연했다. 극 중 동룡이(김동휘 분)는 <전국노래자랑>예선장에서 자신의 노래 실력을 뽐내기 위해 스티비 원더의 노래 <I Just Call to Say I Love You>를 준비해 가는데, 하필 바로 앞 참가자가 프리스터 씨였고 그가 같은 노래를 준비해왔던 것. 그는 그 장면에서 스티비 원더 노래를 부르며, 짧지만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TV 프로 <히든싱어> 녹화 후 휘성과 프리스터 씨가 함께 찍은 셀카(사진: 그렉 프리스터 제공).

그는 가수 휘성의 가이드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3년 JTBC <히든싱어> 휘성편에 출연하면서 휘성과 처음 인연을 맺은 그는 방송에서 휘성의 노래 <With Me>를 한국말로 불렀다. 휘성은 자신의 노래를 외국인이 부르는 것은 처음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방송 이후 휘성은 2년 만에 발표하는 신곡 <Night and Day> 작업을 프리스터 씨와 함께 했다. R&B 음악을 추구하는 휘성에게 프리스터 씨는 흑인만의 소울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이었다. 프리스터 씨는 휘성이 <Night and Day>를 녹음하기 전, 이 곡을 영어 가사로 불러 <24 Hours>라는 제목으로 먼저 녹음했다. 휘성은 그가 먼저 녹음해놓은 음원을 들으며, 그의 소울을 캐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프리스터 씨는 휘성과 함께 녹음 스튜디오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의 노래를 듣고 피드백 해줬다.

프리스터 씨가 공개한 가이드 녹음 음원 <24Hours>

<Night and Day>는 발표 직후 각종 음원 사이트 실시간 차트 1위에 올랐고,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휘성과 프리스터 씨는 음악에 대한 사랑과 영감을 공유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휘성은 얼마 전 한 인터뷰를 통해 프리스터 씨를 '소울 음악 선생님'이라 말했다. 프리스터 씨는 “휘성은 엄청난 스타고 나는 단지 아마추어일 뿐”이라며 “휘성은 항상 나를 프로 가수처럼 대해줘요. 휘성같은 엄청난 가수가 나를 좋아해준다니 영광이죠”라고 말했다.

그는 휘성과의 음악적 교류 이후, 클랑, 트윈즈, 진전과 같은 인디 가수들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발표했다. 그가 마침내 자신만의 노래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의 노래는 국내 모든 음원 사이트에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가수 클랑과 함께 한 <니나노>라는 곡은 ‘니나노’라는 우리 민요 고유의 장단에 흑인 펑크 스타일이 결합된 곡이다. 반복되는 ‘니나노’라는 가사에 그의 진득한 그루브가 더해지면서 마치 미국의 전설적인 소울 음악 가수 레이 찰스가 한국말로 노래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 곡은 음악 평론가들에게 “펑크와 한국 전통 리듬의 현대적인 조화”라는 평을 받았다.

프리스터 씨의 노래 <Baby, It‘s You> 뮤직비디오(영상: 그렉 프리스터 제공)

그에게 노래는 언제나 삶의 일부였다. 그는 “저는 노래를 따로 공부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 부르며 행복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노래하는 게 즐거워서 지치지 않고 연습할 수 있었다. 프리스터 씨는 어릴 때부터 쌓은 경험을 통해 지금도 계속 자신의 목소리를 다듬어가고 있다.

공연 무대에서 열창하고 있는 프리스터 씨(사진: 그렉 프리스터 제공).

그가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서는 우선 노래를 부를 때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한다. 그는 노래 연습을 할 때 목이 긴장되거나 정신적으로 압박감을 느끼면 노래를 멈추고 이것을 풀기 위해 노력한다. 편안한 상태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그는 한국 가수 중 가창력이 가장 뛰어난 가수로는 소향을 꼽았다. 그는 소향은 세계에서 가장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 중 한 명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노래를 정말 잘해요”라며 노래는 기술적인 부분보다 즐겁게 부르고 노래를 통해 행복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유롭게 노래하세요! 그것이 저의 감성(soul)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전국노래자랑> 방송 이후 JTBC <히든싱어>, SBS <스타킹>, SBS <런닝맨>, MNET <슈퍼스타K6> 등 다양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자신은 여전히 “영어 선생님"이라며 가수는 자신에게 열정적인 취미라고 말했다. 그는 방송 이후 전업 가수의 삶을 꿈꾸기도 했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과 꿈을 묻자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행복하다는 그는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는 ‘희망의 힘’에 맡긴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희망은 매순간 행복한 것에 집중하면 미래는 결국 행복한 방향으로 다가올 것이란 것이었다. 그는 “저도 때론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만, 결국 저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 제가 행복한 방향으로 계속 걸어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프리스터 씨에게 노래는 행복 그 자체다(사진: 그렉 프리스터 제공).

한편 그는 영어강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 ‘Greg Prister’에 노래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영상에 달린 사람들의 댓글에, 일일이 “감사해요!”라고 댓글을 달면서, 노래를 들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있다. 프리스터 씨는 “저는 노래할 때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의 노래가 언제나 당신에게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또한 삶의 매순간 행복을 찾을 수 있길... 그리고, 많이 사랑하세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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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덕후 2016-12-20 17:02:15
페이스북에서만 매번 지나쳐 보던 그렉이 기사를 통해서 본다니 되게 새롭네요.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방송인으로 흘러가나 싶었는데 자신의 꿈을 굽히지 않는 모습에 멋있네요
어떻게 인터뷰를 하고 기사화 할 생각을 했는지 대단하신 것 같아요 ^^

장산의소녀 2016-12-20 22:34:19
그렉님 노래부르는 모습 이곳저곳에서 보곤했는데 이렇게 기사로 접하게 되다니 새롭네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잘 보고갑니다^@^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