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스마트시티에서 보고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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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마트시티에서 보고 배운 것
  • 칼럼니스트 박창희
  • 승인 2016.11.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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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박창희
칼럼니스트 박창희

일본의 미래도시를 보고 왔다. 미래도시라는 말에 지레 겁 먹을 필요는 없다. 앨빈 토플러나 다니엘 벨, 롤프 옌센 같은 미래학자가 예상한 ‘산뜻한 도시’ ‘감성도시,’ 그게 아니면 잘 만들어진 혁신도시를 생각하면 된다. 미래도시의 형태는 다양하겠지만, 일본에서 의미있게 논의되는 것은 ‘스마트시티(smart city)’ 또는 ‘스마트 타운’이다. 스마트시티는 에너지, 통신, 교통, 보건, 의료, 안전 등 도시의 바탕을 이루는 여러 요소가 ‘똑똑하게’ 상호작용하는 미래형 도시를 말한다. ICT(정보통신기술) 기반의 4차 산업혁명이 스마트시티를 견인하고 있다. 스마트시티는 국내에서도 뜨거운 화두다. 부산시는 물론 인천 송도, 경기 동탄시, 세종시 등에서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필자가 방문한 곳은 도쿄 인근 두 곳, 치바 현의 가시와 시(柏市) 가시와노하(柏の葉)와 가나가와 현의 후지사와 시(藤澤市)였다. 듣던 대로 그곳은 미래도시 전시장 같았고, 인류 미래행복을 찾는 하나의 실험실을 방불케했다. 스마트시티 테스트 베드(test bed, 시험공간)라고 할까. 주목할 부분은 일본이 이들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세계에 팔아먹겠다고 나섰다는 점이다. 과연 ‘일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시와노하는 도쿄의 중심 신주쿠에서 도시철도로 약 50분쯤 떨어져 있었다. 도시철도에서 내리자 곧장 가시와노하 스마트시티로 연결되었다.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은 건 도쿄대학 가시와노하 캠퍼스 연구동이었다. 미쓰이(三井)부동산 직원이 일행을 안내했다. 견학료는 1인당 3,000엔(약 3만 2,000원). 유료 관람은 ‘팔아먹기 전략’인 것 같았다. 안내원은 창업 연구동과 스마트 팩토리, 사무동, 에너지동, 커뮤니티 공간 등을 두루 보여주며 가시와노하 스마트시티의 장점과 우수성을 소개하느라 바빴다. 창업 연구동에는 사물인터넷과 3D프린터가 운영되고 있었고, 즉석 주문을 받아 시제품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알고 보니, 가시와노하 스마트시티는 치마 현과 가시와 시, 도쿄대학, 미쓰이부동산, 철도회사, 지역 NPO 단체 등 산학관연이 연계해 운영하는 혁신 프로젝트였다. 애초에는 캠퍼스 시티를 만들 계획이었는데, 2010년께 개발 방향이 바뀌었다고 한다. 프로젝트 중심에 일본의 부동산 재벌 미쓰이 부동산이 있는 건 의외였다. 현 거주 인원은 2,000세대 약 5,000여 명. 오는 2030년 완공이 되면 1만 세대가 들어서게 된다.

가시와노하 스마트시티의 전략적 목표는 탄소 저감 및 에너지 자립, 건강장수 도시 추구, 그리고 지역경제 성장 동력 확보 등이었다. 이는 2010년도 국토교통성의 ‘주택·건설 분야 CO₂ 선도사업’으로 채택되면서 활기를 얻었다.

이곳에는 200kw 규모의 태양광 발전을 비롯해 음식물 쓰레기 바이오 발전 및 가스 발전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었다. 발전 시 방출되는 폐열, 지열, 온천열, 태양열 등 미이용 에너지는 냉난방 및 온수 공급에 쓰여졌다. 자연계의 무엇 하나 버리고 낭비하지 않는 시스템이랄까. 천재지변 등에 의한 정전 발생 시에도 3일 정도 유지가 가능하고, 에너지 관리시스템을 통해 탄소 배출량도 도쿄지역 평균보다 40%까지 줄어들게끔 설계되었다고 한다. 호텔용 건물은 면진(免震)구조로 설계해, 지진 같은 재난 발생 시엔 피난처로 활용된다. 야외에는 600명이 텐트를 칠 정도의 넓직한 광장도 구축돼 있었다.

전체 운영은 UDCK(가시와노하 도시디자인센터, Urban Design Center Kashiwa_no_ha)라는 조직이 총괄했다. 이 센터는 시민, 행정, NPO, 기업, 대학이 연계·협동하는 스마트시티 중간 지원조직이자 지역공동체의 거점공간이었다. 지난 2006년 설립 이후 7개의 민관산학 관련 단체가 공동 운영하며 다양한 교육과정과 문화 이벤트, 시민참여형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었다. 기술과 효율 중심으로 흐르기 쉬운 스마트시티에 공동체 개념을 접목해 민관 협력형 조직운영 체계를 갖춘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견학을 마무리하며 안내원이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가시와노하에서 사십시오. 이곳은 환경공생과 신산업, 교육, 건강 장수를 이루는 새로운 마을입니다. 이곳에 살면 다른 삶,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이어 찾아간 곳은 도쿄에서 서남쪽으로 약 55km 떨어진 가나가와 현의 후지사와 시. 공식 이름은 ‘후지사와 지속가능 스마트타운(Fujisawa Sustainable Smart Town, 이하 후지사와SST).’ 일본 굴지의 전기·전자기기 제조업체인 파나소닉이 2008년 폐쇄한 후지사와 지역 옛 TV 공장 부지 19헥타르를 활용했는데, 일본 안팎에서 스마트 타운의 소형화 모델로 주목받고 있었다. 명칭에서 알수 있듯, 친환경 기술을 적용,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었다. 2014년말 1차 개장되어 약 1,000가구(주민 3,000명)가 살고 있다고 했다.

후지사와SST는 "생활 속에 에너지를 가져온다(Bringing Energy to Life)"는 슬로건을 내걸고 100년간 지속가능한 스마트 타운이라고 홍보하고 있었다. 목표치는 탄소배출과 물 사용량을 각각 70%, 30% 줄이고, 신재생 에너지는 30% 늘리는 것인데, 목표 수준에 닿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이곳 역시, 대규모 재난 발생 시 3일 이상 생활이 유지될 수 있도록 했고, 태양광이나 지열, 빗물, 연료전지 등을 이용한 에너지 자가생산, 소비, 관리가 이뤄지게끔 한 것이 특징이다. 주택 간 1.6m 이상 거리를 둬 채광을 확보하고, 해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해 냉난방 수요를 절감하고 있는 것도 이채로웠다. 스마트 타운 내에는 워크샵이나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주민 커뮤니티 센터가 있고, 자전거·차량 공유 서비스도 제공되고 있었다. 단지 내의 복합문화공간은 고급 백화점을 방불케 하는 디스플레이와 함께 창업, 비스니스 공간도 마련돼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복합문화공간 한편에선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단지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전력을 자체 생산하는 프로젝트에는 지역대학과 IT, 금융, 유틸리티, 부동산 등 관련 업체가 참여하고 있었고, 커뮤니티 센터에 위치한 관리사무소에서는 단지 내 조경 및 인프라, 각종 기술 데이터를 부단히 수집하고 있었다. 후지사와 스마트 타운은 민간이 주도한 프로젝트지만, 내심은 미래 신기술 개발 및 테스트를 위한 장소로 활용되고 있었다. 솔직히 스마트시티의 미래 모습을 본 느낌이었다.

가시와노하와 후지사와 시 사례를 다소 장황하게 언급한 건, 움직임 하나 하나가 우리의 관심사가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스마트시티라는 코끼리의 코와 다리를 만지고 있다면, 일본은 코끼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에는 이같은 스마트시티가 무려 수백 개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스마트시티의 다양한 실증과 모델이 연구되고 있을 것이고, 머지않아 ‘적정 모델’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한국은 변변한 스마트시티나 스마트 타운을 찾기 어렵다. 지자체가 국비 매칭사업을 따면 통신회사가 가세하는 기술 중심의 스마트시티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민관산학이 합심해 적극적으로 모델을 찾는 일본을 구경만 하고 있을 텐가.

부산시가 비전으로 제시하는 "사람과 기술, 문화로 융성하는 부산"은 미래 스마트시티의 다른 표현이다. 부산에선 이것이 시정 구호에 그치고 있는 반면, 일본에선 ‘팔아먹을 수준’까지 도달해 있다. 스마트시티가 공허한 구호로 그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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