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 부산 기장 '일광광산'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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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 부산 기장 '일광광산'을 아시나요?
  • 취재기자 안승하
  • 승인 2016.11.28 20: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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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구리광산 개발...일본식 가옥 20여 채 산재, 아직도 빗물에 구리성분 / 안승하 기자

부산 기장 방면으로 가는 급행버스 1003번을 타고 기장전화국에 하차한 다음, 마을버스 8-1번을 타고 40분 정도 간 뒤 ‘광산마을 입구’에 하차하면, 작은 마을이 하나 나온다. 마을 입구에는 현대식으로 지은 광산 마을회관이 반겨주고, 마을 뒤편에는 달음산이 우뚝 솟아 있다. 마을 곳곳에는 낯선 형태의 가옥이 있는데 개천을 흐르는 물소리를 제외하곤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이 흐른다. 이 마을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에 위치한 이곳은 ‘광산(鑛山)마을’이다. 이름 그대로 마을 뒤 달음산 일부에는 광산이 존재한다. 일제강점기 조선 내 5대 구리광 중 하나였던 일광광산(일본식 이름 닛코광산)은 일본 기업 ‘스미토모(住友)광업주식회사’에 의해 1930년대에 개발됐다. 당시 일본인들은 산 속 광산에서 구리를 캐기 위해 조선인 노동자들을 강제로 동원했다. 이 때, 개천 주위에는 사무실과 간부급 가옥을 지었고, 그 주변에는 일반 가옥을 세워 마을을 형성했다.

광산 마을에는 당시 일본인 간부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일본식 사무실이 아직 남아있다(사진: 취재기자 안승하).

길을 따라 마을회관 뒤 쪽으로 걸어가면 이내 광산으로 가는 입구가 보인다. 초입에는 당시 일본인 간부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식 사무실이 아직도 남아있다. 굳게 잠긴 사무실을 뒤로 하고 울퉁불퉁한 돌길을 따라 걸으면 주변에 붉은 흙과 구리 석(石)이 나타난다. 

아직도 선명하게 남은 일광광산의 채광 흔적(사진: 취재기자 안승하).

굽은 길 끝에 광산이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다. 일제강점기 끔찍했던 노동의 현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광산에서 흘러나온 구리 성분으로 인해 까맣게 변색된 나뭇잎이 여기저기 보인다. 1994년 폐광된 이곳은 현재 닫혀 있다. 당시 이곳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은 쉬는 날 없이 매일 주간과 야간 2교대로 채광에 동원되어 고되게 일했다고 한다. 당시 작업 도중에 발가락이 절단되어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았던 사람도 있다고 전한다.

광산 앞에 남아 있는 수질 정화시설. 현재 환경오염 우려로 수질 정화시설을 재정비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안승하).

광산 앞에는 당시 폐수를 걸러주는 수질 정화시설이 남아있다. 계단식으로 구성된 이 정화시설은 폐광된 이후 작동을 멈추었다가 최근 재정비하고 있다. 폐광됐지만 광산에서 구리의 나쁜 성분이 흘러나와 수질과 토양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재정비 공사는 한국광해관리공단 영남지역본부에서 맡고 있다.

광산마을 곳곳에는 일본식 양식 가옥이 남아 있다. (사진 : 취재기자 안승하)

광산마을에는 20여 채의 집이 있다. 대부분 광산 노동자들의 사택이며, 전통적인 일본 양식으로 지었던 건물들이다. 경사가 있는 산에 집을 짓다보니, 평평한 대지를 만들기 위해 축대를 쌓았다. 일본 특유의 석축 방식을 사용하여 모서리 부분을 각지게 만들었다. 처마 밑에 눈썹처마를 내달거나 현관을 달아내기도 했다. 합판 부분은 마치 비늘처럼 겹치면서 촘촘하게 댔다. 부산에서 거의 유일하게 일제의 자원수탈 흔적이 드러나는 마을이다.

일광광산은 부산에 위치한 강제 노무 동원 현장 중 몇 안 되는 곳이다. 그러나 광산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광산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고 있다. 강제 노동을 당했던 노동자들이 마을을 떠난 후, 현재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산마을 김해수 이장은 “지금 거주하고 있는 광산마을 주민들은 당시 강제 노동 동원과 관련도 없고 알지도 못 한다”고 말했다.

또한, 부산시민들은 물론 기장군 주민들도 광산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다. 기장군에서 어릴 때부터 거주한 강민정(22) 씨는 기자의 질문에 “기장에 광산이 있었나요?”라며 되물었다. 강 씨는 “기장에 광산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강제동원을 당했다는 것도 처음 들었다”며 놀라워했다. 해운대에 사는 박지연(22) 씨도 광산에 대해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박 씨는 “휴가 때 피서를 맞아 일광해수욕장에 종종 놀러가지만 광산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일각에서 일광광산이 품은 아픈 역사를 널리 알리는 일에 착수했다.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올해 3월부터 ‘국내 강제징용 마을 안내판 세우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서 교수는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1,200만 원을 모아 광산마을 입구에 안내판을 설치했다. 이제 광산마을의 존재가 일본 자원착취의 증거로 서서히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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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2016-12-11 15:12:27
알려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네요 사진을 보고있으니 가슴이 무겁습니다 얼마나 힘든 시기였을지 가늠도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