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박 대통령에게 원군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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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박 대통령에게 원군은 없다
  • 논설주간 강성보
  • 승인 2016.11.2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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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요즘 웬만한 모임엔 최순실과 그 패거리의 국정농단이 단연 토픽이다. 큰 모임, 작은 모임, 점잖은 공적 간담회, 사적 회동, 심지어 가족 회의에서도 최순실 게이트는 메인 화제거리로 도마에 오른다.

얼마전 고교 동창들과의 저녁 술자리도 역시 최순실로 시작되고 최순실로 끝났다. 친구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각종 언론매체에서 연일 터져나오는 여러 의혹들을 거론하면서 “나라 꼴이 정말 챙피하다. 외국에 나가 우찌 얼굴을 들고 댕길꼬”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한편에선 “<내부자들> 같은 잘 만들어진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흥미진진한 현실이야,” “요새 며느리들 살판났다 안카나. 시어머니들이 (최순실 게이트를 집중 보도하는) 종편 TV 보는 재미에 빠져 잔소리 전화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란다”며 시니컬한 웃음을 날리는 친구도 있었다.

무당의 딸 최순실에 홀려 국정을 무자비하게 유린하도록 허용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도 강하게 표출됐다. 한 친구는 “마누라로부터 (박근혜를 찍은) 손가락을 자르든지, 아니면 손가락으로 (박근혜를 제대로 못 본) 자신의 눈을 찌르든지 하라는 소리를 들었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박근혜, 그리 안봤는데 우찌 그리 우매하노,” “박정희 딸로서 후광을 받았을 뿐 콘텐츠가 하나도 없는 맹순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때 한 친구가 조심스럽게 이견을 피력했다. “방금 SNS를 통해 정홍원 전 총리의 글을 하나 받았는데, 여기 보니까 박대통령 그리 맹한 여자는 아니라고 하네. 오랫동안 공부를 많이 해서 주변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해박하다는 것이야. 긴가민가 하지만, 박근혜 정부 초기 2년 동안 총리로 재직하면서 박 대통령을 곁에서 봐온 정 총리의 말이라 믿을 만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일순 몇몇 친구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평소 박 대통령을 지지해온 그들인지라 일말의 비빌 언덕을 찾은 기대감의 표출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중앙 언론사에서 오랫동안 정치부 기자 생활을 해온 다른 한 친구의 단호한 반박논리에 눈 녹듯 사라졌다.

제법 긴 시간 전개된 그의 반론을 생각나는 대로 소개하면-.

“택도 없네. 정홍원 그 사람, 박정희 추모회에서 고문하고 있는 ‘박빠’ 중 한 사람이야. 이정현, 김진태 등 새누리당의 동키호테 친박 세력과 일맥상통한다고 봐야겠지. 누구 사주나 부탁을 받아 그처럼 박근혜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 같지는 않지만 헛소리한 게 틀림없어. 더욱이 정 전 총리, 그 자신 현직에 있을 때 안목이 있다거나 그리 명민하다는 평판은 못 받았지.”

“사람의 교양은 언어를 통해 표출되는데 박 대통령의 평소 언어 습관에서 보면 평소 독서를 많이 한 깊은 교양의 소유자라는 느낌은 전혀 없어. 오히려 다소 천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통일은 대박'이니, '배신의 정치' 운운 등 시정잡배들의 언어, 비속어 같은 말을 함부로 쓴 것 등은 그 대표적인 증거로 볼수 있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평상어로 애드립을 자주 날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의 말은 분명하고 메시지가 강했지. 이에 반해 박근혜 대통령은 준비된 말을 읽어가는데도 공연히 장황하고 메시지가 흐릿한 게 특징이야. 한 심리학자는 몇 년 전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다수 분석한 결과, 박 대통령이 대화할 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남의 말을 대신하는 것 같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어. 말하자면 박 대통령은 누군가의 꼭두각시라는 것이야. 그 누군가가 최순실이라는 사실은 이번에 드러난 셈이지.”

“그 심리학자, 박 대통령을 혼군(昏君)이라 부르기도 했어. 우매한 왕이라는 뜻이지. 우리 식으로 쉽게 말하자면 ‘맹순이’라는 것이야. 이 비판 때문에 그 심리학자, 교수로 재직하던 학교에서 쫓겨나는 불운을 당하기도 했지.”

“박근혜 대통령은 ‘드라마광’으로 알려져 있어. 이번에 차움 병원에서 무슨 줄기세포인가 하는 영양제 주사 맞으면서 TV 드라마 여주인공 이름인 ‘길라임’을 가명으로 써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 이전의 대통령들은 외빈 아니면 각료나 비서관들과 만찬을 자주 하면서 국정을 논의했는데, 박대통령은 저녁 8시면 퇴근 후 관저에 틀어박혀 TV 드라마에 몰입했다고 하네. 대통령이라고 드라마 좋아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아시다시피 드라마는 중독성이 강하지. 정해진 방영 시간에 TV 앞으로 끌어들이고 속편을 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지. 일반 아낙네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 하지만 박 대통령은 5,000만 국민을 이끄는 최고 지도자야. 각 부서에서 올라오는 업무를 파악하는데도 엄청난 시간이 필요할 텐데, 드라마에 열중하게 되면 자연히 국정에 소홀하게 마련 아니겠나.”

“모르긴 해도 독서를 그리 즐겨한 것 같지는 않네. 동서고금의 문사철에 어느 학자 못지 않은 해박한 지식을 과시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는 빌리면 된다고 했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장사치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도 때로는 수준 높은 한학 실력을 과시했는데, 박 대통령은 그런 것을 보여주지 못했어. 기껏해야 코끼리 냉장고에 넣는 법 등 썰렁개그로 주변을 민망하게 했지. 일전에 한 연설문에서 안중근 의사가 사형당한 곳을 하얼빈 감옥이라 잘못 말한 것도 최소한의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도 입력이 제대로 안되어 있음을 나타낸 대표적인 사례지. 연설문을 최순실이 잘못 써줬다고 해도 이 정도 사실은 금방 알아채고 스스로 고쳐야 하는 게 아닌가 싶네.“

“무엇보다 지금까지 근 3년 동안 기자회견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박 대통령이 국정에 대한 장악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지. 이번에 두 차례 사과 담화에서도 몇분, 십몇 분짜리 준비된 담화문을 읽어내려간 뒤 끝내지 말고 기자들의 자유질문을 유도한 뒤, 이에 솔직하게 대응했으면 지금과 같은 낭패스런 상황은 면할 수 있었을 듯 싶네. 전여옥 전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박 대통령은 최순실에게 자문을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삐에로인지도 모르겠네.”

이 친구의 다소 장황한 시사해설에 술이 깬 우리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정홍원 전 총리의 '박근혜를 위한 변명의 글'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로 치부되면서 신문 한 귀퉁이에 처박혀 있음을 발견했다.

며칠 뒤 광화문과 전국 곳곳에는 “바람 불면 촛불이 꺼진다”던 김진태 의원의 주장을 비웃기나 하듯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횃불과 LED 촛불의 물결이 넘쳐났다. 그리고 그 다음날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검찰 발표가 “상상과 추측을 바탕으로 지은 사상누각”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검찰 조사를 거부할 뜻을 시사했다. 이미 리더십을 잃은 5% 지지율의 박 대통령이 국민과 정면 대결을 선언한 셈이다. 숨어 있는 박근혜 지지층, 즉 ‘샤이 박근혜’의 결집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나 이미 민심은 박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 한줌도 안되는 친박세력 외에 더 이상 원군은 없다.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만 들려오고 있다(四面楚歌).

이제 박대통령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 뿐인 듯하다.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수용하여 그리 흉하지 않는 모습으로, 초연히 물러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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