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쉰에 이룬 간호사의 꿈..."늦은 만큼 더욱 보람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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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쉰에 이룬 간호사의 꿈..."늦은 만큼 더욱 보람차요"
  • 취재기자 양서윤
  • 승인 2016.11.20 19:30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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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조무사 김은숙 씨의 만학 이야기...가족 권유로 늦깎이 공부, 도전 3년만에 성공 / 양서윤 기자

사람들마다 꿈이 있다.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도 있고, 학자를 꿈꾸는 사람도 있으며, 기자를 꿈꾸는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현실의 벽을 깨지 못하고 꿈을 포기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어릴 적 꿈을 잊지 않고 도전을 거듭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은숙(50) 씨도 꿈이 있었다. 바로 ‘간호사’의 꿈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남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후 간호사를 꿈꾸었지만, 학비가 아깝다며 진학을 말린 부모 때문에 그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김은숙 씨는 “돈이 없어서 진학을 못하고 간호사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을 때는 정말 서러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대 시절의 김은숙 씨(사진: 김은숙 씨 제공)

결국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 취직했고 결혼 후에도 계속 공장을 다녔다. 하지만 그와 남편 모두 전문직이 아니어서 버는 돈이 시원치 않았고 아이는 계속 커갔다. 결혼생활 22년 동안 먹고 사는데 급급해 가난에 허덕이며 살았다.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식당과 횟집에서 일했고, 전단지 알바, 세탁소 알바 등을 전전했다. 결혼 3년 만에 생긴 귀한 딸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고된 노동에 지쳐 부부는 집에 돌아 오면 잠에 골아 떨어졌고, 그 흔한 아침상도, 학교 배웅도 못해 주었다. 딸은 혼자 가방을 챙기고 혼자 숙제를 하고 혼자 밥을 먹어야 했다. 

그렇게 빠듯하게 살아가던 김은숙 씨는 47세가 된 2013년, 포기했던 간호사의 꿈에 다시 도전했다. 남에게 봉사하고 싶었던 어릴 적 꿈을 되살리면서도 안정된 직장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이도 적지 않았던 데다 돈과 시간 때문에 간호대학에 들어가는 게 무리라고 생각한 그녀는 간호조무사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1년을 공부했다. 남편이 몇 년 전부터 시내버스 기사가 되면서 약간의 여유가 생긴 것도 힘이 됐다. 김 씨는 “공장에 다니다 마을버스 운전을 시작했던 남편이 열심히 일해 몇 년 뒤 시내버스 기사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예전보다 가족 살림이 점점 나아지게 됐고, 나도 간호조무사가 되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실제로 공부를 시작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자신이 공부한답시고 돈을 벌지 않으면 생활비가 월 100만원 줄어드는 데다 고등학교 졸업 후 27년 만에 다시 책을 펴드는 게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는 노릇. 하지만 자신을 믿어주는 든든한 가족이 받침대가 됐다. 김 씨는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남편과 딸이 나에게 도전해 보라고 권해 간호조무사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막상 바로 공부를 시작해 보니 역시 어려웠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매일 6시간 동안 딱딱한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하려니 힘들고 고달팠다. 학원을 마친 후에 집에 와서도 공부를 계속했다. 안 쓰던 머리를 몇 십년 만에 쓰려니 돌아서면 까먹고, 다시 봐도 까먹어 애를 먹었다. 

"그 전엔 딸에게 '공부가 뭐가 어렵냐! 돈 버는 것보다 쉽지!'라고 말했지만 막상 내가 해 보니 ‘공부가 이렇게 힘든 것이구나’ 하고 깨닫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 힘든 시간을 가족과 학원 친구들과 함께 이겨 낸 그는 1년 만에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김은숙 씨가 간호조무사 시험공부를 하던 책. 필기가 빼곡히 되어있다(사진: 김은숙 씨 제공).
역시 김은숙 씨가 간호조무사 시험공부를 하던 책이다. 메모지를 붙이고, 적고, 밑줄 그으며 공부한 흔적이 역력하다(사진: 김은숙 씨 제공).

간호조무사로 취직하자 새로운 시련이 찾아왔다. 영어로 채워진 이런 저런 의학 용어에다 수많은 약명을  짧은 시간에 외워야 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 간호조무사는 환자들이 먹는 약을 직접 받아와 일일이 나눠줘야 하기 때문에 약의 이름과 모양, 색깔, 쓰임을 모두 알아야 한다. 게다가 병원마다 쓰는 약들이 다 달라 이직할 때마다 새로 다 외워야 했다. 김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60여 개의 약을 직접 그리고 쓰며 외웠다. 딸과 함께 퀴즈 형식으로 묻고 답하며 공부하기도 했다. 

그는 간호조무사가 된 지 3년이 되는 지금도 모르는 영어단어가 생기면 꼭 집에 와서 외우고 공부한다. 그녀는 “모르는 단어가 생기면 알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다”며 “모르면 무시하는 동료도 가끔 있어서 더 열심히 공부한다”고 말했다.

간호조무사 김은숙 씨(사진: 취재기자 양서윤).

그녀는 현재 부산의 한 요양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이 병원으로 이직한 지는 8개월이 되었다. 환자 체위 변경, 식사 조력, 혈압 재기, 투약 업무 보조, 환자 상태 보고, 소모품 확인, 비품 점검 등 간호 보조가 주업무. 환자의 위생을 관리하고, 환자와의 의사 소통, 병실 청결 유지, 낙상 예방 등도 그의 몫이다.

간호조무사 3년차인 김은숙 씨는 3교대로 일한다. 아침 근무는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오후근무는 오후 2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밤근무는 오후 9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7시 30분까지. 식사시간을 빼고는 서서 일하기 때문에 고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일이어서 환자를 돌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나이 많은 어르신 중엔 아이같이 착하고 애교를 부리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을 볼 때면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생각도 든다고.

그래도 병원에서 실수하거나 동료들과 트러블이 있을 때는 힘이 든다. 그럴 때마다 김은숙 씨는 가족에게 위로를 받는다. 무뚝뚝하지만 묵묵히 도와주는 남편과 엄마가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애교를 부리며 즐겁게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딸이 늘 고맙다.

김은숙 씨 부부와 딸이 어렸을 때의 가족 사진(사진: 김은숙 씨 제공).

여상을 나와 20년 가까이 영어를 쓰지 않은 그에겐  대부분 영어로 쓰는 의료 용어가 아직도 벅차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이 즐겁다. 그녀는 “반백 살을 산 나이지만 잘했다고 칭찬 받는 것이 제일 행복하고, 그 칭찬이 현재 내 삶의 원동력이다”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아줌마가 뭘 하겠어’ 라며 무시하지만 배움은 내 삶의 원동력"이라는 그녀의 삶은 늘 활기차다. 좋은 의료인이 되겠다는 그의 꿈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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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쌤 2019-09-29 09:43:02
제목 변경하세요
간호사가 아니라 간호조무사입니다~

대단 2019-02-08 05:05:25
대단하시고 꿈을잡고있는 이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실겁니다 저도 나이30에 아직 꿈을 잡고있고 늦은나이에못지않게 꿈을 이룬분들을 롤모델삼아 도전해보려합니다 화이팅 하세요^^

philobse 2017-01-08 01:14:20
저도 임신,출산으로인해 준비하던일을 시기를 놓쳐버렸는데
다시시작하자니 3년이라는 공백이 너무 크게느껴지더라구요.
그런데 간호조무사 김은숙님은 27년만에 다시 책을 피셨다니
그 도전과 용기가 정말 멋져요! 핑크색의 간호복이
인자한얼굴의 간호조무사님과 참 잘어울리네요.
저도 제 꿈을 멈추지않고 현재진행형으로 노력해서
멋진엄마이자 아내가 되고싶네요^^

inging 2016-11-30 17:22:34
늦은나이에 무언가에 도전하고 꿈을 찾아 노력하신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얼마나 노력하고 힘드셨을지.. 책을 보니 너무 와닿네요ㅠㅠ 지금의 저를 반성하고 돌아보게 하네요 좋은기사 감사드려요!

송이아이 2016-11-30 15:32:40
멋지네요^^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른때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앞으로 더 멋진삶이 기다리고 있을것같네요!
저도 더 늦기전에 꿈으르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