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발로 뛰며 추적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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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발로 뛰며 추적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내막
  • 부산광역시 김지언
  • 승인 2016.11.20 17: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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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자백>...'모르쇠'로 일관한 김기춘, 원세훈 등 간첩조작 주역 고발 / 부산광역시 김지언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 포스터

'다큐멘터리는 좀 지겹지. 보다가 잠들 것 같은데, 어쩌지?'

 영화관에 들어서기 전 나는 분명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 다큐멘터리란 조용한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내 고정관념은 106분 러닝 타임 동안 손바닥에 미끄러지는 땀방울만큼 빠르게 내 머릿속을 빠져나갔다.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은 지루할 틈 없이 우리 사회 문제점을 신랄하게 파고든 영화였다.

이 영화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탈북해 서울시 공무원이 된 유우성 씨는 화교 출신. 국가정보원은 그가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유출하는 간첩이라고 의심한다. 그들은 여동생 유가려 씨의 자백을 증거 삼아 맹렬히 유 씨를 공격하는데, 실상은 이와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국정원은 6개월간 유 씨의 여동생을 감금해 고문하고 회유와 협박을 일삼으며 얻어낸 거짓 진술을 무기로 삼아 그를 옥죄었던 것. 사실을 알게 된 ‘뉴스타파’ 최승호 PD는 이 일을 묵과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간첩 의심을 받은 사람들과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사건의 비밀을 하나하나 파헤치기 시작했다.

박정희 정부 때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이었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그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린 사람들은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수십 년간 법정 싸움을 하며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들은 현재 무죄 판결을 받았거나, 한국을 떠나 살고 있음에도 그때 기억에 몸서리치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김기춘은 그를 찾아온 최승호 PD에게 냉담한 표정을 보이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간첩 사건을 전혀 모른다며 시치미를 뚝 떼는 그의 모습은 혀를 차기에 충분했다. 

영화 초반 등장했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당시 국가정보원 원장이었던 원세훈은 최 PD의 질문에 묵묵부답이다. 급기야 우산을 기울여 얼굴을 가리는데, 현장을 찍고 있던 카메라맨이 우산을 들어 올리자 가소롭다는 듯 취재진들을 비웃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 꿈에 나올 것만 같은 섬뜩한 웃음. 그 장면을 보며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김기춘, 원세훈. 둘 다 사과는커녕 반성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최 PD는 계속되는 싸움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사실관계 확인에 힘쓰는가 하면, 관련 공직자의 옆에 따라붙어 집요하게 추궁하는 그의 취재 열정은 가히 언론의 귀감이 될 만하다. 앵무새처럼 국정원의 보도 자료를 그대로 가져다가 보도한 타 언론과 다른 그의 행적을 눈으로 함께 좇으며 언론의 정의 구현을 헌신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은 것 같아 한편으론 마음이 놓였다.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남파된 북한 공작원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탈북자들이, 모든 교포들이, 모든 유학생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국가 기관이 간첩 조작까지 하며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무엇을 위해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그토록 지독하게 괴롭혔을까. 수많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불이 켜지고 엔딩 크레딧이 스크린에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취재 도중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며 잡아떼던, “사전에 계획된 인터뷰도 아닌데 내가 왜 대답을 해야 하냐”고 말하던 김기춘에게 최 PD가 말했다.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을 했으니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겁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아직도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때 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 가혹하다. 수십 년간 얼토당토 않은 죄목으로 억압받은 사람들은 지나간 세월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누가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이제는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다. <자백> 같은 영화가 그들의 마음을 다독여줄 수 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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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림이 2017-01-29 17:14:02
-진실의 힘은 강하다..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
작금의 뼈아픈 현실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는 영화네요. 영화에 대한 정보 접하지 못했었는데 기사를 통해 꼭 찾아 찬찬히 봐야 할 영화 하나 알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