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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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힘
  • 소설가 정영선
  • 승인 2016.11.1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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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정영선
소설가 정영선

2~3년 전부터 장성한 조카들이 이곳 저곳에서 결혼을 하기 시작했다. 거제, 서울, 광주. 뿔뿔이 흩어져 살다 보니 결혼하는 장소도 여러 곳이었다. 조카의 결혼식이니 반갑지 않을 리가 없지만 축의금은 얼마나 할 것이며, 어떻게 갈 것인가 등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형편이 좋은 데는 적게, 형편이 안 좋은 데는 좀 넉넉하게 넣는 게 이즈음 터득한 방법의 하나였다. 그런데 올 가을에 서울에서 있었던 두 조카의 결혼식은 오로지 반갑고 고마운 마음 뿐이었다.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결혼식이 있을 성당을 겨우 찾아가니, 가슴에 꽃을 꽂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던 신랑이, 고모 왔네!, 라고 큰소리로 반겼다. 고모니 반겨야 옳지만, 주위에 있던 하객들과 가족들이 놀라서 돌아볼 정도의 큰 목소리였다. 나는 그 시선에 대한 답이라도 되는 듯, 조카의 손을 오래 동안 잡고 있었다. 굳은살이 박힌 조카의 손은 긴장한 탓인지 땀이 배어 축축했다. 누가 이 아이의 긴장을 좀 풀어주었으면 하고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적당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 날 결혼한 조카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오랫동안 키웠다. 사업에 실패한 오빠는 구속되고 올케 언니는 집을 나간 상태였다. 대학을 다니던 내가 방학이라 내려 가면 신장이 좋지 않았던 어머니가 퉁퉁 부은 얼굴로 조카를 키운다고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몸은 아프고 돈은 부족하고 주변의 눈치는 따갑고. 그래도 어머니는 기죽으면 안 된다고 자주 장에 가서 조카의 반찬이며 옷을 사오고는 했는데, 특히 조카의 운동화를 그렇게 자주 빨았다. 에미 없는 표를 내면 안 된다며. 하루 종일 먼지 구덩이에서 뒹구는 조카의 운동화는 늘 밑창까지 깨끗했다.

보름 뒤에 다른 조카가 결혼식을 했다. 이번에는 12시 시작이라 새벽 같이 나서야 했다. 코가 잘 생기고 인물이 좋아 처가에서 너무 좋아한다고 올케 언니가 자랑을 했다. 그 자랑조차 목이 메어 겨우 하는 것 같아, 아니 듣는 내가 먼저 눈물이 차올라 귀가 먹먹해졌다. 신랑의 아버지인 나의 오빠는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 서울 변두리에 작은 아파트 한 채만 겨우 남겨 놓은 상태였다. 장례식날 영정 사진을 든 조카는 별로 추운 날도 아니었는데 퍼렇게 얼어 있었다. 누군가 손이 얼음장 같다고 겉옷을 입혔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삶에 대한 공포였지 추위 때문은 아니었는데, 다 살기 바쁜 형편이라 멀리 떨어진 오빠네를 도와 줄 사람도 없었다. 나 역시 명절에 사과 한 상자 보내는 게 다였다. 오빠가 돌아가신 후 식당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운 올케 언니는 울지 않으려고 결심을 한 듯 너무 씩씩했다. 그 모습을 보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울었을지 짐작이 됐다. 올케 언니의 여동생이 나와 중학교 동창인데, 식을 마치고 둘 다 눈이 부어 만났다. 나는 오빠가 생각나 울고 친구는 언니가 산 게 불쌍해서 울었다고 했다.

두 조카는 지방 사립대에 진학을 했다. 집을 나온 조카도 있고 먼 거리를 통학하는 조카도 있었는데 둘 다 공부보다는 아르바이트에 더 열중하는 것 같았다. 전봇대를 세운다고 산에도 있고 이삿짐 트럭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고 공사판에서 모래를 나르고, 고깃집에서 불판을 씻고 숯을 나르기도 하는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하는 것 같았다.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였지만 그들의 아픔을 잊지 않는 것 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1~2년 뒤 만난 조카는 몸도 마음도 다부져 보였다. 그때서야 나는 조카들이 혹독한 노동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했을 뿐 아니라 아니라 정신적 허기, 외로움까지 어느 정도 극복했음을 느꼈다. 가장 큰 고통이었을 외로움은 역설적으로 조카들을 지탱해 준 큰 힘이었던 것이다. 그 후 조카들은 복학을 하고 취업 준비를 했고 졸업 전에 취업에 성공했다. 아르바이트 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 식장에 남아있던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신부의 손을 잡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조카를 보내고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왔다. 대합실은 하루 전에 했던 대통령의 최순실 관련 2차 담화에 대한 이야기로 뜨거웠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어려울 때 많이 도와준 인연이었다고 최순실을 설명했다. 대통령은 끝까지 아픔을 무기로 내세웠다. 그 외로움이 얼마나 혹독했을지, 뼈에 사무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때 도움을 준 사람을 얼마나 고마웠을지 이해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검찰에 출두하면서 제 신발 하나도 제대로 못 챙기는 여자를 반려 수준의 지인으로 삼아 국정을 맡기다니, 가슴이 쓰릴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벗겨진 신발 한 짝을 본 후로 나는 대통령에 대한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이쪽저쪽에서 밀리면 신발이 벗겨질 수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순간 그녀의 분별 없음과 부풀어 올라 넘친 탐욕과 방종한 생활을 보는 듯 느꼈다. 그리고 대통령은 앞으로 더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아니, 외로움조차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다 보니 진짜 외로움을 모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건 정말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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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니스타 2016-11-17 11:19:27
뭔가 눈물이 핑 돌만큼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아요! 요즘 누구나 다 외롭지만 그 안에 성장하는 힘도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