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허탈이 '메타포'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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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허탈이 '메타포'를 타고
  • 편집위원 박시현
  • 승인 2016.11.15 10:3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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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위원 박시현
편집위원 박시현

2016년 하반기 대한민국은 분노와 허탈의 도가니다. 대통령의 ‘아는 동생’이 국정 요소 요소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고, 대통령의 그 아는 동생의 ‘아는 사람’들이 국가 요직 곳곳에 등용되어 나라의 피를 빨아 먹거나 이를 묵인했다고 난리다. 대통령의 그 아는 동생 최순실은 참 이상한 사람이다. 그녀는 이상한 곳만 돌아다녔고, 이상한 사람들만 주위에 가득했다. 그 아버지도 이상했고, 그 딸도 이상하다. 그녀와 이런저런 인연이 닿은 차은택, 고영태, 우병우, 정호성, 김종 등등도 모두 이상하고 비호감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근대화의 이면에 퍼지고 있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위험사회’라고 정의했다. 그는 특히 산업사회의 결과인 유독물질, 핵, 공해, 빈곤 등의 위험은 전 지구적으로 번지고 있고, 특별히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현대사회 위험은 ‘민주적’이고 ‘평등하다’는 역설적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사실 핵이 터지면 빈부의 격차를 가리지 않고 모두 죽는다는 면에서 핵의 위험은 울리히 벡의 말처럼 만인에 공평하고 평등하다. 하지만, 부자는 유해식품 대신 무공해 유기농채소만 먹을 수 있고, 가난한 스리랑카 노동자들은 마스크도 쓰지 못하고 장갑도 착용하지 못한 채 유독물질을 손으로 만지며 작업한다. 현대사회의 위험도 따지고 보면 국경과 인종적 차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 한국도 현대사회의 위험에서 안전하지 않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유명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한다고 해도 미래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됐던 케이블 TV 드라마 <혼술남녀>나 <청춘시대>는 이 시대 한국 청년들의 ‘보편적’ 위험과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사기업의 좁은 취업문, 열악한 노동조건,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노량진 공무원 고시학원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떤 부류, 어떤 인맥,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들 몇몇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위험으로부터 예외적으로 국가적 이익을 독점하고 특혜를 누리며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0.28로, 조사 대상 35개국 중 29위에 해당한다. 특히 조사대상 중 15세에서 25세까지의 청년층 정부 신뢰도는 이보다 낮아 0.17로 나타났다. 이런 게 자연스럽게 ‘헬조선’ 현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장기간 미취업자인 ‘장미족’도 생겼고, 31세까지 취직 못하면 살 길이 막힌다는 ‘삼일절’ 세대도 등장했다. 소설가 김영하 씨도 한 방송에 출연해서 젊은 세대들이 가질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그리 크지 않다고 했다. 우리 젊은이들은 ‘기대 감소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기대 감소 시대의 하나였던 전두환 시대에는 유별나게 정치적 조크가 많았다고 한다. 당시 젊은 세대는 기대할 미래가 적은 것에 반비례하여 정치적 메타포(metaphor)로 마음의 카타르시스를 그만큼 크게 느꼈다. 그들은 대통령의 머리를 어리석음의 상징인 ‘돌’에 비유하여 대통령의 눈물을 바위 틈에서 나오는 약수(藥水)라 했고, 일석이조(一石二鳥)는 대통령 머리에 앉은 두 마리의 새를 가리키는 말이라 했다. 최근 그 시대 이후로 정치적 패러디가 젊은이들 분노의 분출구가 되고 있다.

요즘 SNS 공간에서는 대통령 담화 내용 중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라는 말을 패러디하는 것이 ‘폭풍’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가수 이승환은 “내가 이러려고 가수했나”라는 글을 올렸고, 방송인 김미화는 “내가 이러려고 코미디언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란 글을 올렸다. 그밖에도 SNS 이곳저곳에서 “내가 이러려고”의 패러디가 쏟아졌다. 매국노 이완용이 했다는 “내가 이러려고 나라 팔아먹었나, 자괴감 들고 괴롭다,” 김정은이 했다는 “내가 이러려고 핵무기 만들었나, 자괴감 들고 괴롭다,” 정유라가 탔다는 말도 “내가 이러려고 정유라 태워줬나, 자괴감 들고 괴롭다”는 글들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 퍼지고 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내가 이러려고 노트7 만들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라고 했고, 웅녀는 “내가 이러려고 쑥마늘 먹고 사람 되려고 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라고 했으며, 김보성도 “내가 이러려고 의리 찾았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라고 말했다는 패러디가 봇물처럼 SNS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방송의 코미디 프로그램도 국정농단 사태를 풍자하기 시작했다. 지난 5일 한 케이블 방송에서는 한 코너의 출연자가 '우주의 기운'을 모은다는 행위 예술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는 “미스터리한 ‘무속인(shaman)’이 대통령을 조종했다”는 BBC 방송을 연상시켰다. 이 프로의 다른 출연자는 신화 속에 등장하는 반인반마인 '켄타우로스(케이론)'으로 분장하여 승마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유라를 풍자하기도 했다.

지난 5일 대구에서 열린 시국대회에서 발언한 한 여고생의 영상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여고생은 8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준비한 원고를 손에 들고 나왔지만 단 한 번도 보지도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마치 종이 위에 일필휘지로 글을 써내려 가는 것처럼 자신의 주장을 연단에 서서 거침없이 일갈(一喝)했다. 그 학생은 “자격 없는 대통령을 칭할 적절한 호칭이 없어서 그냥 편의상 대통령으로 칭한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으며, “검찰의 수사나 언론 보도는 최순실보다 대통령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주장해서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녀는 “여러분, 전 두렵습니다. 오늘 저희의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이, 그리고 이 사건의 본질이 언제나 그랬듯이, 다른 사건들처럼 점차 희미해지고 변질돼 잊힐까 봐 두렵습니다”는 말로 커다란 박수를 받고 연설을 마쳤다. 그 여운은 대단했다. 그녀의 연설은 SNS를 통해 살아 있는 여론으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12일 광화문 100만 시위 속에서도 패러디가 넘쳤다. ‘시굿선언(시국선언을 창와대 굿판설에 빗댄 것),’ ‘꼭두박씨,’ ‘(최 씨)가족사기단,’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5%면 배터리도 바꾼다,” “사사로운 연은 이으시고 나라와 연은 끊으세요” 등의 구호와 피켓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충남 공주에서 온 초등학생은 연설을 자청하고 “내가 여기서 이러려고 초등학교에서 말하기를 배웠나”라며 “대통령하기 힘들고 자괴감이 들면 그만 두면 된다”고 말해서 시위 참가자들의 웃음과 박수를 한 몸에 받았다.

역사적으로 조선 사람은 풍자에 능했다. 풍자 속에서 웃고, 위선자들을 고발했다. 탈춤은 얼굴을 가리고 양반을 골리는 마당극이었고, 판소리의 스토리도 풍자 그 자체다. 춘향전에는 양반의 수탈과 신분 모순이, 별주부전에는 어리석은 지배세력에 대한 노골적인 조롱이, 훙부전에는 권선징악의 희망이 농축되어 있다. 21세기 이 시대 대한민국 민초들이 카타르시스의 패러디, 메타포의 유전자를 다시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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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알에스 2016-11-27 23:26:26
쏟아지는 각종 패리더가 사건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mimi 2016-11-16 11:47:49
이상하고 비호감 폭풍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