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이후 100여 년은 개발, 재개발과 같이 기존의 환경과 상황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인 개발만을 우선시하는 개발 전성시대였다. 그러나 개발을 우선시할수록 개발에 밀려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환경 또한 파괴돼 갔다. 최근 세계적으로나 우리나라에도 삶과 환경을 보존하고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떠오르고 있다. 특히 변화가 심했던 도심 지역을 사람 중심적이고 원형 친화적으로 꾸미려는 ‘도시재생사업’이 주목 받고 있다.
도시재생의 원조는 영국이다. 자본주의 산업화가 가장 빨랐던 영국은 그만큼 재개발할 곳도 많다. 영국의 ‘발틱 현대미술관(Baltic Centre for Contemporary Art)’은 창고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대표적인 사례. 2002년 7월, 영국의 북동 지역 뉴캐슬어폰타인(Newcastle-upon-Tyne) 시에 인접한 게이츠헤드(Gateshead)에서 발틱 현대미술관이 개관했다. 1950년대부터 수십 년 간 제분공장의 곡물창고로 사용돼 오던 곳을 내부를 리모델링하여 현대식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현재 발틱 현대 미술관은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현대미술 전문 갤러리로 자리 잡았다.
독일의 라인 강 하류 연안 도시인 뒤셀도르프(Düsseldorf)의 ‘터널 미술관(KIT, Kunst im Tunnel)’ 도 폐창고를 활용한 사례 중 하나다. 뒤셀도르프 지하를 관통하는 도로를 건설할 당시 공사 자재를 보관하던 창고였던 이곳은 지하도로 공사 후 실시된 소방점검에서 화재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폐쇄됐다. 그러나 인근 뒤셀도르프 미술대 학생들이 이곳을 예술 작업 공간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방치됐던 창고가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 소식을 접한 뒤셀도르프 시장은 이곳을 본격적인 전시공간으로 바꿔 2007년 ‘KIT’라는 이름의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현재 이곳은 매년 회화, 사진, 비디오 아트 등 다양한 장르의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매년 5만 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찾는 뒤셀도르프의 명소가 되었다.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어서게 되면 기존의 재개발로 인한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된다는 게 정설. 우리나라 역시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어서자 자연스럽게 도시재생 개념이 등장하게 됐다. 우리나라 도시 곳곳에 방치되어 있던 근대 유산들, 특히 폐창고로 전락해버린 공간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흐름이 최근 눈에 띄게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2025 서울시 도시재생 전략계획'을 발표했으며, 충북 청주시는 지난달 14일, 옛 연초제조창을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도시재생 사업을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협약을 맺었다.
부산의 ‘비욘드 가라지,’ 전라남도 담양의 ‘담빛예술창고’ 역시 폐창고를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대표적 사례다.
부산시 중구에 위치한 ‘비욘드 가라지(Beyond Garage)’는 최근 부산에서 가장 주목을 많이 받는 문화공간 중 하나다. 인스타그램(Instagram)에서 이곳을 검색하면 뜨는 사진과 동영상만 4,800건 이상이다.
부산 중구 부산항 연안여객터미널 맞은편, 바다와 가까운 이곳엔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빨간 벽돌 건물이 있다. 약 60 - 70년 전, 이곳은 ‘대교창고’라는 이름으로 일제강점기 시절엔 쌀 창고, 해방 후엔 제지 창고였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폐창고로 전락하고 말았던 곳. 오랜 시간이 흐른 2013년 봄 편집매장(한 매장에서 여러 가지 브랜드의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 '안티도트(ANTIDOTE)'를 운영하는 청년들에 의해 대교창고는 ‘비욘드 가라지(Beyond Garage)’라는 부산 복합 문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안티도트를 운영하는 김석관 씨와 서장현 씨는 폐창고로 버려진 대교창고를 10년간 임대해 수리한 후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이곳은 현재 콘서트 무대로도 이용되기도 하고, 뮤직비디오 · 광고 등 각종 영상 촬영지로, 각종 행사 등 다양한 목적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에서 힙합 그룹 재지팩트(Jazzyfact) · 조성모 등 유명 가수가 공연하기도 했고, 기존 공연장과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셀프웨딩, 광고 촬영지, 플리마켓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최근엔 아이돌 그룹 업텐션(UP10TION)의 신곡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곳은 특히 정기적인 플리마켓이 열리는 장소로 유명하다. 작년 4월 ‘Garage Market’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비욘드 가라지의 플리마켓은 올해 7월까지 총 8회의 플리마켓이 열렸다. Garage Market은 두 달에 한 번, 하루나 이틀 간 열린다. 이 플리마켓을 찾았던 조혜진(30, 부산시 사하구) 씨는 “버려진 곳을 판매자와 구매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만든 게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비욘드 가라지는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의 내부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높은 벽과 천장, 넓은 내부, 철제 계단으로 이루어진 복층 구조 등이 이곳이 창고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과거 이곳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벽과 기둥에서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이곳만의 매력이다. 대학생 김민혁(25, 경남 창원시 진해구) 씨는 “비욘드 가라지만의 빈티지한 느낌이 가장 인상 깊게 남는다. 칙칙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생각했던 창고가 활기 넘치고 생동감 있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담양의 물빛과 문화예술이 인문철학과 더불어 꽃을 피우고 주민의 삶이 풍요롭게 향유될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전남 담양의 담빛예술창고 역시 재생 문화공간의 모범 사례.
이곳은 담양의 대표적 관광지인 죽녹원과 메타세콰이어 길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담빛예술창고는 1960-70년대 곡식을 보관하기 위해 세운 ‘남송창고’라는 이름의 양곡창고였다. 정부의 양곡 수매가 중단되면서 양곡창고로서의 역할을 잃게 되자 10여 년 동안 폐창고로 방치됐다. 그러다 이곳이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주관한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후, 담양군은 예술창고로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담빛예술창고’라는 새 이름으로 작년 9월 14일 개관했다.
담빛예술창고 총괄기획자 장현우 씨는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인해 황폐화된 창고나 공장지대를 예술촌 혹은 문화예술 관련 시설로 탈바꿈하는 세계적인 흐름을 적용해 폐창고를 이용한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고 전했다. 장 씨는 “앞으로 담빛예술창고를 향후 기초지자체의 문화예술 발전소로 발전시킬 예정"이라며 "이곳을 선도적인 문화예술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만들어 전국적, 전 세계적으로 알려질 수 있도록 만들어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담빛예술창고는 현재 카페 겸 갤러리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 역시 창고라는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높은 천장, 단순하고 넓은 내부 구조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특히 카페에 설치된 국내 최초의 대나무 파이프 오르간의 정기 연주가 있는 주말에는 자리가 꽉 찰만큼 관광객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카페의 널찍한 유리창으로 펼쳐지는 관방제림의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것 역시 이곳의 묘미다. 관광객 이예림(27, 부산시 남구) 씨는 “인터넷에서 담양 관광지를 검색하다 이곳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가서 보니 인터넷에서 봤던 사진보다 훨씬 좋았고, 여유롭게 산책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최근 담양군문화재단은 담양 지역의 사진, 회화, 공예 등 각종 예술 분야 작가들에게 이곳을 무료로 대관해주는 ‘담빛예술창고 대관 공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강동진 교수는 자칫하면 재생이 파괴가 될 수 있다며 도시 재생 사업에서 주의해야 할 일은 과거의 것을 다음 세대에 많이 남겨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재생사업은 보존 지향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재생할 건 재생하되, 다음 세대를 위해 과거의 것을 남겨주는 것이 재생에 숨어있는 중요한 핵심철학”이라고 말했다.
요즘 이런 감성이 유행인 것 같아요
주변 시설과 공생하며 같이 잘 조화를 이루는 것도 멋있구요
다같이 공생하며 더많은 사람들에게 널리알려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