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대한민국의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바쁜 시기이다. 올해의 마지막 시험인 기말고사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아카기 아미’도 마찬가지다. 아미는 대학생활의 마지막 기말고사와 함께 졸업시험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와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남다른 패션 센스, 입체감이 느껴지는 화장법, 화려한 눈 화장 등 첫 만남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일본인으로 알아 볼 수 있었다. 아미는 이색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한국어를 매우 능숙하게 구사해서 인터뷰 내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올해 25세인 아미는 5년 전에 부산의 부경대학교에 입학했다. 그 후 지금까지 휴학기간 2년을 빼면 한국에서 4년간 생활해온 것이다. 그녀는 중학년 시절 수학여행으로 한국을 처음 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리라곤 전혀 생각지 않았었다. 아미가 다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다. 당시 그녀가 다니던 고등학교와 부경대학교와의 교류로 인해서 다시 한 번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고, 중학생 시절에 왔던 수학여행 때와는 달리 두 번째 방문에서 한국의 매력을 느꼈다.
이후 아미는 대학 진학을 두고 고민하던 차에 학교 선배의 권유로 부경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택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의 유학을 온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이국의 땅에 혼자 가야 했고, 한국말을 전혀 알지도 못했고,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반대가 매우 심했다. 그녀는 유학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전까지 몇 날 며칠을 말도 하지 않고 지냈던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심을 굽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그녀는 “일본과는 다른 한국만의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이에요. 한국하면 정이죠. 저도 역시 한국에 와서 한국인들이 정이 많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이곳에서 한번 생활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라고 했다. 또한 미리 유학을 다녀온 선배의 경험담도 듣고 도움도 받으니 두려움이 많이 없었던 점도 작용했다고 한다.
이렇게 그녀는 부경대학교의 국제지역학부에 입학했다. 새로운 곳에서 시작된 유학 생활은 새롭고, 재밌고,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했다. 유학생활 4년차인 그녀는 이젠 딱 한 가지만 빼면, 불편한 점은 거의 느끼지 못한다. 물론 그녀가 갓 유학을 왔을 땐 언어 때문에 큰 고생을 했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초반엔 한국어 공부에만 열중했었지만 언어의 장벽은 컸다. 수업을 들어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한국말로 표현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있었다. 아미는 “지금은 수업을 들어도 대부분 알아듣지만 처음엔 정말 힘들었어요. 사실 한국어는 지금도 어려워요”라고 말을 이었다. 이제는 웬만한 건 안 틀린다고 자신만만 했는데 얼마 전 또 단어를 혼동하고 말았다. 국제지역학 관련 수업의 발표에서 ‘성대모사’를 ‘성모대사’라고 잘못 말했던 것이다. 발표가 다 끝나고 ‘성모대사’가 아닌 ‘성대모사’라는 것을 알고는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녀는 동시에 한국어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언어에 이어서는 음식도 문제가 있었다. 한국 음식, 특히 부산 음식은 간이 진해서 처음엔 먹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아미는 점점 한국 음식의 맛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대부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특히 학교 앞에 있는 가게에서 먹는 참치가 들어간 김치찌개를 굉장히 좋아한다. 하지만 영양탕과 번데기는 아마 몇 년이 되도 끝까지 못 먹을 음식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한국에서 해결하지 못한 딱 한 가지 불편함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문제이다. 아미는 누구나 그런 질문을 그녀에게 하곤 한다며,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는 걸 불편해 했다.
아미는 학교에서 매년 열리는 한국어 콘테스트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매회 참여했다. 한국어 콘테스트는 외국인들이 지원할 수 있고, 한국어로 어떤 것이든 하면 된다. 귀찮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매번 다른 컨셉으로 대회에 참여했다. 그녀는 “전혀 귀찮지 않아요. 학교 생활을 즐기면서, 재밌게 하고 싶어요. 지금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어요”라고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미의 콘테스트 성적은 좋다. 작년 한국어 콘테스트에는 한국가수 2ne1으로 분장하고 공연하여 1등을 거머쥐었고, 올해 한국어 콘테스트에서는 매직쇼를 보여 인기상을 탔다.
아미의 활약은 수업 시간에도 계속되었다. 전공이 국제지역학부내의 동북아지역 전공이니 만큼 일본어와 관련된 수업에서는 보조 교사의 역할도 했다. 어떤 수업에서 읽기가 필요한 부분은 그녀가 직접 읽고 교수님은 해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수업을 같이 들었던 한 친구는 일본의 억양과 속도를 바로바로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일본에 있었다면 내가 수업 시간에 발음을 해 보이는 것으로 보조 교사의 역할을 할 리는 없었겠지요. 이런 것도 유학의 하나의 즐거움이어요.”라고 말했다.
유의 생활도 이제 막바지다. 아미도 얼마 후 기말고사와 졸업시험을 치르면 취업을 해야 한다. 여느 4학년이면 그렇듯 유학생에게도 취업의 압박감은 존재한다. 한국과 일본의 취업 준비 분위기는 다르다. 한국은 토익 점수 올리기, 봉사활동하기 등의 소위 ‘스펙쌓기’에 열심이다. 하지만 일본은 원하고자 하는 회사에 가서 시험을 보는 경우가 많다. ‘스펙쌓기’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자 그녀는 “스펙쌓기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방법의 차이이니까요. 일본과 한국은 다른 나라이니 방법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학교에서의 연구를 더욱 중시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어느 쪽이든 열심히 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취업 걱정 때문인지 연신 웃음을 띠고 인터뷰에 응하던 아미도 취업의 문제 앞에서는 살짝 찌푸린 얼굴을 한다.
사실 아미는 싱가포르의 한 회사에서 입사 제의를 받았다. 고향도 아니고 유학 온 한국도 아닌, 또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고민해보고 결정할 것이라는 그녀는 원래 한국에서 취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단은 대마도로 돌아가려고 한다. 최근에 있었던 북의 포격 사태 때문에 한국의 정세가 좋지 않아서 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모님들은 이번 시험이 끝나면 바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그녀는 “사실 저도 무서워요. 일본에서는 뉴스가 계속 보도되고 크게 다루어지고 있거든요. 근데 정작 한국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제 주변 친구들의 반응을 봐도 그렇구요”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미는 학교 생활을 하면서 한국인이 정이 많다는 점 외에 또 다른 것을 느끼게 됐다. 한국인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한다고 느꼈다. 또한 무엇을 하든지 열정이 넘친다. 일본과 한국의 다른 점이 무어냐고 물어보면 정이 많은 한국인, 열심히 공부하는 한국인, 열정적인 한국인, 이 세 가지를 말한다고 한다. 아미는 4년간의 유학생활이 즐겁고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고 말한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주위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