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법' 만들랬더니 뜬금없는 임신중절 처벌 강화 나선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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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법' 만들랬더니 뜬금없는 임신중절 처벌 강화 나선 정부
  • 취재기자 정혜리
  • 승인 2016.10.13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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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불법 임신중절' 처벌 강화한 의료법 입법예고에 의료계·여성단체 반발 / 정혜리 기자
임신부.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보건복지부가 임신중절 시술 의료인의 처벌을 강화하기로 나서자, 현실과 동떨어진 법안이라는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달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안에는 의료인의 자격 관리, 양성 교육기관 관리, 의료인 면허 관리 제도 개선과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한편,  비도덕적인 의료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개정안은 △대리수술, △무허가 주사제 사용, △오염된 의약품, 또는 사용기한 만료 의약품의 사용, △진료 목적 외 마약·향정신성의약품 처방·투약, △진료 중 성범죄, △불법 임신중절수술 등을 '비도덕 진료행위'로 규정했다.

이 중 문제가 된 것이 '불법 임신중절수술.' 현행법상 인정되는 임신중절수술은 모자보건법에 근거한 유전적 장애, 강간으로 인한 임신, 혈족 간 임신, 임신이 모체에 심대한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로 한정된다. 의료법상 불법 임신중절수술은 모자보건법의 허용 사항을  제외한 모든 사항을 지칭한다. 

하지만 임신중절수술은 모두가 쉬쉬해가며 대한민국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1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19세 이상 성인 여성 929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피임과 낙태 정책에 대한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중 156명(16.8%)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이 중 95명(60.9%)은 '낙태했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들 중 낙태 사유가 '모자보건법'이 허용하는 경우는 9명(9.5%)에 불과하고, 나머지 86명(90.5%)은 모두 해당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복지부가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서자, 인터넷 SNS상에서는 임신중절수술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트위터 사용자 (@in_*********)은 낙태에 대해 “법적으로 낙태를 금지하는 것은 가임인구에게 자신이 구할 의무 없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신체적 불이익을 감수하라고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과 같다”며 “자신을 희생하여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고귀한 일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요구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낙태 금지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가임인구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일을 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이는 강제가 아닌 선택의 영역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위터 사용자 (@J00****)은 “비도덕적 진료행위 처벌 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낙태를 일률적으로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포함시키는 건 문제”라며 법안을 비판했다. 또 다른 사용자 (@win*******)는 “대책없이 처벌만 강화하면 음성적인 낙태시술 비용이 비싸지고 시술 희망자를 더욱 위험에 빠트리는 것밖에 없다”고 부작용을 걱정하기도 했다.

트위터에서는 '#낙태금지법안반대'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는가 하면, 사용자들이 즐겨 쓰는 키워드를 보여주는 실시간 트렌드에는 임신중절, 불임수술, 정관수술, 모자보건법, 낙태전면합법화 등의 단어가 오르고 있다.

여성단체와 의료계도 발 벗고 나섰다. 산부인과 의사회는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는 11월 2일 후에도 법안에 임신중절술의 불법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면 더 이상 해당 시술 자체를 시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산부인과 의사회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을 동원해 의료인을 불법 낙태죄로  처벌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의사에 대한 처벌 위주의 무책임한 정책보다 낙태수술의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낙태의 99%는 원치 않는 임신 때문인데 이들을 모두 강제로 출산시키면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의사들이 낙태 수술을 거부하면 환자들은 일본, 중국 등으로 원정 낙태를 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시행령 개정을 반대하는 여성단체들도 반대운동에 나섰다. 지난 12일 페미당당·불꽃페미액션 등 20대 여성 페미니스트 단체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모자보건법과 형법에서 낙태죄 등을 규정한 것은 임신 중절을 무조건 범죄로 보고 있다”며 “여성의 몸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복지부는 모자보건법 허용 범위 밖의 임신중절수술은 이미 법률적으로 처벌 대상이라며 법의 임신중절수술 허용 범위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행정부가 임의로 조정하거나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불법 임신중절수술을 한 의료인에 대해서는 현재에도 의료법에 의해 1개월 이내 자격정지 처분을 하고 있으며, 실제 최근 5년간 16건의 행정 처분이 이미 진행된 바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폴란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가톨릭 교회의 지지를 받는 집권 정당이 임신부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만 낙태를 허용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임산부와 의료진을 최고 징역 5년형에 처하는 법안을 내놓자, 지난 3일 ‘검은 시위’가 일어났다. 새 법안에 반발한 폴란드 여성들 10만여 명이 검은 옷을 입고 시위를 벌였던 것. 반발이 거세지자 폴란드 의회는 낙태 전면 금지 법안의 폐기에 들어갔다.

우리 형법은 ‘낙태죄’로 낙태 수술을 받은 여성이나 수술한 의사 모두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1년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한국 형법 조항을 재검토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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