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을, 거대한 미술관. 대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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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 거대한 미술관. 대룡마을
  • 이서림
  • 승인 2013.01.16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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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부산 명례산업단지 건설을 위한 공사가 시작되었다. 인부들은 나무를 베고 산을 깎았다. 조형예술가 문병탁 씨는 안타까웠다. 보금자리를 잃어가는 동물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문 씨는 숲을 떠나야 하는 동물들의 슬픈 울음소리를 작품으로 나타내기로 결심했다. 그는 베어진 나무들을 하나 둘씩 주워와 ‘숲의 정령’을 만들었다. 그렇게 1년 동안 만들어진 ‘숲의 정령’은 100여 마리, ‘떠나는 것들-숲의 정령’이라는 작품으로 탄생했다.

이 작품은 조금 특별한 곳에 전시되어 있다. 기장군 장안읍 오리에 위치한 ‘대룡마을’, 일명 예술가마을이다. 예술가 마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이 마을에는 10여 명의 예술가들이 실제로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문병탁 씨도 그 중 한명이다.

평범했던 대룡마을이 예술가마을이 된 것은 16년 전부터이다. 처음엔 그저 흔한 시골 마을이었다. 하지만 농기계가 보급되면서 마을에는 빈 창고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 마을에서 자란 조각가 정동명 씨는 ‘이러한 넓은 창고들을 조각 작품을 만드는 공간으로 이용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 교류가 많았던 동문들과 함께 모여 1996년 처음으로 이 마을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동명 씨는 “작가들이 한 마을에 모여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은 전국에서 이 마을이 최초일 것”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마을입구부터 알록달록한 안내판이 눈에 띈다. 길을 따라 들어가면 ‘숲의 정령’을 비롯한 다양한 조형물들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의 작품 뿐 아니라 프랑스, 일본 등 바다를 건너온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일반 주민들이 사는 집에는 귀여운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집마다 걸린 문패도 작가들의 손을 거쳐 탄생한 듯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조각 작품을 산과 구름 등 풍경과 함께 카메라에 담으니 또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블로그를 통해 대룡마을을 알게 된 이상훈(28) 씨는 여자친구와 함께 이곳으로 출사를 나왔다. 그는 “조각 작품 옆에 선 여자친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니, 한 폭의 화보같다”며 기뻐했다.

이 마을은 특별히 작가들의 작업실도 들여다볼 수 있어 열린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실제로 생활하는 가정집이기도 하니, 작가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일은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도예가 하영주 씨는 결혼 후 6년 째 남편과 함께 이 마을에서 작가로 활동 중이다. 그들은 귀여운 딸과 함께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 씨는 외진 시골이라 불편하기보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이곳이 너무 좋다고 한다. 특히 “날씨 좋은 날 넋 놓고 있다 보면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요.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되요”라며 경고 아닌 경고를 했다.
이 마을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또 있다. 바로 무인 카페 ‘Art In Ori'이다. 말 그대로 이 카페에는 주인이 없다. 주인은 없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 작은 주방으로 들어가면, 커피 머신은 물론이고 냉장고에는 몇 가지 주스와 병맥주가 들어있고, 싱크대 옆에는 쿠키도 놓여 있다. 모든 손님들은 자신이 원하는 커피를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하며 돈은 양심껏 낸다. 얼마를 낼지 망설여지는 경우에는 가격이 적힌 메뉴판을 참고하면 된다

정동명 씨는 시민들이 마을을 구경하다 자유롭게 들어와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작가들이 함께 고민해 이 무인 카페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돈을 벌려면 하루 종일 카페에 붙어있어야 하는데, 우리 작가들은 작품 활동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무인 카페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깔끔한 카페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주인이 없어서인지, 카페 전체에 먼지들이 뽀얗게 쌓여 있다. 깨끗한 컵에 우아하게 커피를 마실 수는 없다. 하지만 이곳의 먼지는 싫지 않다. 무인 카페에서 만난 정미영(23) 씨는 이곳의 먼지는 특별하다고 한다. 정 씨는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다면 이 카페가 그저 상업적으로만 느껴졌을 것 같다고 한다. 그녀의 말처럼, 이곳에서는 쌓여있는 먼지들은 마치 인테리어의 일부인 양 조화롭게 다가온다. 그녀는 “이곳을 오는 사람이 누구든 이 분위기를 싫어한 사람은 없을 거에요”라며 확신했다.

무인카페 안에는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전국일주를 하다 쉬어가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약속하는 메시지, 남몰래 평소 고마운 사람에게 전하는 감사의 인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모습이지만, 이곳에서는 그 메시지가 더욱 애틋하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카페 곳곳에는 메시지를 남길 수 있도록 메모지와 알록달록한 색연필, 볼펜들이 있어 누구나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이 마을에서는 작품 감상뿐 아니라, 도자기 체험과 농촌 체험 등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진행 중이다. 특히 농촌 체험은 배 밭, 허브 농장, 벼농사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있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많이 방문한다. 보통 중고등학교에서 단체로 체험 학습을 하러 오지만, 도자기 체험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도 신청하면 체험이 가능하다. 참여는 대룡마을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대룡마을은 해운대 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창행 버스를 타고 대룡마을 입구에서 하차하면 도착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해운대에서 울산 방면으로 가는 14번 국도를 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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