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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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을 위한 변명
  • 논설주간 강성보
  • 승인 2016.09.25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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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필자는 조선일보가 영 탐탁치 않다. 편집과 논조가 지나치게 보수편향적이기 때문이다. 가진 자와 기득권층, 권력에 대해선 한없이 우호적이고 못 가진 자와 소외된 계층을 보듬는 데는 대단히 인색하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특히 이념 문제에 있어서 조선일보는 극단적인 입장을 나타낸다. 북한에 대해 무한대결적이며 이 땅의 진보세력에 대해선 거의 알레르기성 증오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언론이 사시(社是)에 따라 특정 방향의 논조를 선택할 수는 있다고 하지만 조선일보의 경우 금도를 벗어났다는 게 같은 언론계에서 30여 년 지켜본 필자의 판단이다.

지난 1998년 9월 김대중 정부 시절, 서울~신의주 간 경의선 복원공사가 시작됐다. 남북관계에 역사적 모멘텀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행사는 당연히 도하 각 언론에서 주요 기사로 취급됐다. 당시 경향신문 편집부장을 맡고 있던 필자는 “한반도 혈맥을 다시 잇다”라는 굵은 활자 헤드라인과 함께 이 기사를 1면톱으로 올리고 해설기사와 스케치 시사 등을 2면, 3면 등 주요지면에 배치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조선일보를 받아보고 필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기사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1면, 2면, 3면을 아무리 훑어 봐도 기사가 없었다. 가까스로 찾다 보니, 사회면 맨 아래 2단짜리 박스기사로 간단하게 취급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도 “경의선 복원공사 착공”이라는 매우 드라이한 제목과 함께. “북한 정권에 대해 냉소적이고 남북관계 개선을 탐탁치 않게 보는 조선일보임을 잘 알고 있지만 해도 너무하네”라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 사회 일각에선 진보계열 인사들을 중심으로 ‘찌라시 조선일보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필자는 이 같은 극우 논조의 조선일보는 싫어하지만 조선일보 기자들은 좋아한다. 언론계에 몸담고 있던 시절, 출입처 안팎에서 만난 조선 기자들은 대부분 스마트했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했다. 그들은 1등 신문에 대한 자부심에 가득차 있었지만 결코 오만하지 않았고 타사 선후배에 대한 배려심도 각별했다. 그들의 내공과 지식의 깊이, 또 취재력도 만만치 않았다. 또 그들이 만들어낸 기사와 칼럼은 때로는 존경심마저 들 정도로 품질이 높았고 깔끔했다.

그런 조선일보 기자 중 한 명이 송희영 전 주필이다. 80년대 중후반 광화문 일대 선술집이나 호프집에서 몇차례 만났다. 대학강사를 하고 있던 같은 대학 출신의 시인 김사인과 함께였는데 맥주 한 잔을 걸치면서 우리는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눴고 때로는 문학에 대한 토론도 벌였다. 송희영은 당시 경제부처에 출입하던 경제통이었지만 한 잔 거나해지면 제법 근사한 즉흥 자작시를 낭송할 만큼 문학에 대해서도 소양이 깊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술값은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우리들도 한 번 내겠다고 나서봤지만 “경제부처 출입 기자가 아무래도 낫지”라며 한눈을 찡긋하곤 했다. 그 이후 우리는 별로 만난 적이 없다. 출입처가 달랐고 서로 바빴기 때문이다. 다만 지면을 통해 필자는 송희영이 경제부장, 편집국장, 주필 등으로 쭉쭉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지난 여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수사선상에 오른 유력 언론인이 송희영이라는 것을 알고 다소 뜨악한 기분이 들었다. 내 뇌리 속에 담긴 깔끔하고 낭만적인 송희영의 이미지와 부패 언론인과는 매치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세월이 지났고 사람인지라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우선은 “그럴리가”라는 의문부터 들었다. 그후 대우조선해양 간부들과 함께 한 유럽 호화여행 문건이 보도되고, 급기야 송희영의 주필직 사퇴 등으로 이어지면서 송희영의 부적절한 처신이 팩트로 확인됐지만, 남들과 같이 그에게 침을 뱉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이 정권과 모종의 힘겨루기에서 버티다가 희생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동정심마저 들었다.

사실 한번 따져보자. 송희영이 받은 것은 수백만 원짜리 호화여행이라는 ‘향응’이었다. ‘스폰서 검사‘ 등 연일 터져나오고 있는 스캔들 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공직자들이 받은 수억, 수십 억짜리 뇌물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공무원이 받아 챙기는 뇌물과 기자들이 받는 향응은 죄질 면에서 비교가 안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상식이다. 필자의 현역 시절 언론계에서는 기자들이 받는 촌지는 공무원들이 먹다가 입가에 묻은 밥풀에 불과하다는 자조마저 나돌고 있었다. 그 몇푼 안되는 촌지도 자신을 위해 쓰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 후배들이나 내근자들에게 소주 한잔 사 주는데 쓰곤 했던 것이다. 이런 ‘미풍양속’마저 90년대 한겨례 신문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언론계 자정 운동 이후 자취를 감췄다.

물론 금액이 얼마든지 간에, 조건이 어떻든 간에 언론인이 출입처에서, 그것도 부실 투성이의 기업으로부터 접대를 받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불편부당해야 할 기사가, 논조가 왜곡될 수도 있다. 하지만 송희영이 받은 그 향응이 정권으로부터 몰매를 맞고 검찰 수사까지 받을 정도로 위중했을까 하는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향응과의 인과관계로 내세워진 송희영의 기명 칼럼도 대우조선해양의 ‘청년 실업해소 기여 정책'을 칭찬한 것으로 이 회사의 부실경영을 덮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는 좀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국회에서 유럽 요트 여행 문건을 흔드는 순간, 이 정권이 너무 야비한 게 아니냐는 반감부터 든 것은 송희영에 대한 원초적인 호감 때문 만은 아니었을 듯싶다.

많은 사람들이 ‘송희영 사건’을 정치공학적 차원에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밤의 대통령과 낮의 대통령의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혈투로 희화화한다. 지난 8월 30일 한겨레 신문 만평은 영화 <내부자들>의 한 장면을 패러디해 술자리에서 같이 놀다가 한쪽에서 술병으로 때리고 다른 한쪽에서 맞는 모습을 그려 많은 독자들의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한 배를 탔다고 할 수 있는 보수언론 조선일보와 보수권력 박근혜 정부가 왜 건곤일척 사투를 벌이는가? 정확한 내부사정은 알기 어렵지만 주변 정황으로 볼 때 보수세력의 균열이 가장 일리 있는 해석이다. 보수 세력 내부에 현재 권력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차기 정권 창출의 주도권이 박 대통령 손에서 떠났다고 판단한 조선일보가 우병우 문제로 일격을 가하자, 청와대가 송희영 문제로 반격했다는 것이다.

주목을 끄는 것은 송희영 사건 이후 조선일보가 취하고 있는 태도다. 즉각 사표 수리로 송희영 전 주필을 신속하게 정리하더니 한 때 박근혜 정부를 향해 고추 세웠던 날 선 칼날을 잽싸게 거두고 버린 형국이다. 최근 도하 각 언론을 달구고 있는 미르 재단, K스포츠 재단 의혹에 대해 조선일보는 의아하리 만치 입을 닫고 있다. 수십만 청년 실업자들의 분통을 터뜨리게 만든 친박 실세 최경환 의원의 낙하산 인턴 꽂기 비리에 대해서도 한줄도 보도하지 않고 있다. 아직은 살아있는 권력의 위력을 실감하고 납작 엎드리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재반격을 위해 호흡조절을 하고 있는 중인가? 달빛 교교한 숲속에서 무림 고수들의 일합 결투를 구경하는 것처럼 으시시한 기분이 드는 것은 공연한 호들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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