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핵무기, 그리고 원전…이 문명사적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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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핵무기, 그리고 원전…이 문명사적 경고음
  • 편집국장 강동수
  • 승인 2016.09.18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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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강동수

이번 가을도 어수선하게 시작되고 있다.

편집국장 강동수

추석 전에는 콜레라에, 북한의 핵실험이니 해서 세상이 시끌벅적하더니 급기야 지진으로 혼비백산한 일도 생겼다. 추석 언저리엔 또 폭우가 쏟아져서 나들이도 못하고 황금연휴 내내 집에 갇혀 있어야 했다. 글쎄, 놀러 다닐 돈도 없으니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한들 억울할 건 없지만 인간 스스로 만든 우환도 모자라서 지진에, 폭우까지 우리네 삶을 어지럽히니 예삿일은 아닌 듯 싶다. 북한엔 사상초유의 홍수 피해까지 발생했다던가.

공포의 과장이 아니냐 싶기도 하지만, 지진이 나던 날 저녁에 느닷없이 집채가 흔들렸을 때 엄습한 두려움 사이로 문득 탄허(呑虛, 1913~1980) 스님이 생전에 남긴 말이 떠오르던 것이었다. 그는 열반하기 전인 1971년 이런 예언을 남겼다고 한다.

"지구가 23도 7분 삐뚤어져 있는데 북 빙하가 녹아 내려 미국의 서부 해안과 일본 열도가 침몰할 것이다. 이에 따라 지구엔 생태계 변화가 다가오고 천지개벽이 일어난다. 한반도의 동해안도 해일과 지진으로 침몰하고 그 대신 서해안이 한반도의 두 배 크기로 융기된다. 지진에 의한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 핵폭발 등이 일어나 핵보유국들이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인류의 운명에 비극이 다가오고 있는데 그때에는 인류의 60~70%가 소멸된다." 운운.

글쎄, 미국의 일부와 일본 열도가 침몰한다니 노스트라다무스류의 ‘믿거나 말거나’ 식 종말론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탄허라면 한국 불교가 낳은 전설적인 학승이다. 일찍이 6.25와 베트남전 발발 따위를 알아맞힌 분이라니 마냥 웃어넘기기엔 마음에 걸리는 데가 없지 않다. 유불선은 물론 주역과 풍수, 명리학에 통달했던 분이기도 하다. 근 오십년 전에 남긴 예언인데도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 없지도 않다. 이를테면 지구온난화에 따른 빙하 용해 따위는 이미 인류 모두의 고민거리가 됐고, 지진에 의한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입증된 바다. 그러니 이번 경주 지진이 어쩌면 그가 예언한 ‘해일과 지진으로 인한 한반도 동해안의 침몰’의 전조가 아닌가 싶은 노파심이 생기는 거다.

현대의 지구과학은 지진을 단순히 지각판의 충돌로 보겠지만, 지구라는 행성 자체를 거대한 단일한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을 적용하면 지진이란 현상을 얼마든 다르게 풀이할 수도 있다. 지구 위에 부스럼처럼 기생하는 인류가 자신을 품은 자궁인 지구를 지나치게 학대한 끝에 지구의 반격을 부른 것이라는. 다시 말해 지진은 지구란 이름의 가이아 여신이 부르짖는 고통의 몸부림이자 인간에 대한 경고라는.

불교 경전인 <월장경(月藏經)>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해와 별의 운행이 일정치 않아 온 땅은 모두 진동하고, 전염병이 많아지고, 허공에서는 나쁜 음성 크게 들리며, 공중엔 갖가지 두려운 불기운(火憧)이 나타나고, 혜성(慧星)과 요성(妖星)이 곳곳에 떨어지리라. 세간에는 부처님 법 다시 없고, 계율과 모든 경전이 죄다 남아 있지 않으리.”

으스스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보기에 따라선 요즘 세상을 묘사한 것 같지 않은가. 지진에, 메르스니 콜레라에, 테러에, 미사일과 핵실험에… 혜성과 요성이 곳곳에 떨어진다는 소리는 현대어로 옮기면 미사일 발사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고 보면 요즘 흥행 대박 중인 영화 <부산행>이나 <터널>은 <월장경>의 영화적 메타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아차차, 너무 나갔다. 이런 소리를 자꾸 하면 유언비어 유포에 사회불안 조성, 혹세무민의 죄로 잡혀갈 지도 모르니 이쯤에서 그치겠다. 어쨌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번 지진을 겪으면서 다소 거창하지만 지금이 우리네 삶 전반에 대한, 나아가 인류 문명의 전개 양상에 대한 총체적 성찰의 시점이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는 거다.

이를테면 북핵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금 북한은 탄도 미사일을 펑펑 쏘아올리고 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으로 바다 속을 요리조리 헤치고 다닌다.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섯 번 째 핵실험을 해서 세계를 경악시킨 터다. 그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사드’란 미국제 무기의 배치다. 전략무기 체계로서의 사드의 효용성 여부는 일단 논외로 치더라도, <월장경>식으로 말하자면, 불기운의 위협에 또 다른 불기운으로 대응하는 식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핵무장론까지 나오는 판이다. 사드를 배치하겠다거나, 핵무기 개발을 서둘러야 하지 않느냐는 소리가 나오는 배경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저쪽이 사생결단 죽기 살기로 나오는데 우린들 손 놓고 있어야 하느냐는 주장이 꼭 틀렸다고 할 수만은 없는 노릇일 테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처럼 위험한 노릇도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자기네 체제를 압박하니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 나선다. 그들의 핵 개발에 대응해 다시 우리가 사드를 배치한다니 북한은 사드에 걸리지 않는 잠수함을 동원해 뒤통수에서 미사일을 쏘겠다고 나선다. 그래서 우리가 미국에서 더 발전된 무기를 들여와 잠수함 미사일을 막는다면 아마 북한은 또 다른 무기 개발에 나설 거다. 지금도 한반도만큼 군비 밀집도가 높은 지역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그런 차에 서로 간에 죽기 살기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다 보면 한반도는 ‘군비 경쟁의 무한궤도’를 달리는 ‘설국열차’가 되지 않겠는가. 결국은 피차간에 ‘공멸의 바벨탑’을 쌓는 꼴이다.

남북도, 열강들도 이쯤에서 다시 사고의 전환을 통한 새 판짜기에 나설 때가 아닌가 싶다. 대화를 해봐도 통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제재의 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현실론이 있는 줄 모르지 않는다. 대화한들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불신에도 일리가 있을 게다. 그렇다고 무한궤도를 반복하는 설국열차에 계속 올라타고만 있어야 하겠는가. 제재를 해봐도 효과가 없는 판에 말로 엄포를 놓는다고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한방에 상대를 항복시킬 묘수가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은 갑갑하고 답답한 노릇이지만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이란 방식 말고는 달리 길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대결’로만 치달아 온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화의 프레임을 짜 볼 때가 아닐까. 상대를 한 칼에 멸절시키겠다는 성급함이 아니라 공존의 토대를 마련해 광장으로 끌어내는 방법 말이다. 평화는 리스크 자체를 없애는 게 아니라 리크스를 관리하는 데서 얻어지는 게 아닌가.

또 다른 문명사적 문제도 있다. 원자력 발전 말이다. 이번 경주 지진을 겪고서 한반도 동남해안에 줄줄이 늘어선 원전의 안전성을 걱정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게다. 5년 전, 동일본 대지진에 의한 해일이 일으킨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누출 사고는 21세기 초엽 인간이 불러온 최대의 재앙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다수 국민들은 정부에 원전정책의 전면적 재검토를 요구했던 터다. 정부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나라는 아직 지진 안전지대이다. 게다가 원전 안전성도 이중, 삼중으로 구축해 뒀으니 기우일랑 말라.” 그리고는 원전 확대, 원전 수출에 여전히 골몰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지진은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란 근거 없는 믿음을 깨트렸다. 글쎄, 규모 5.8의 지진에 이 난리인데 앞으로 규모 7이나 8짜리 지진이 덮치지 말란 법이 있는가. 정부는 그런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하늘에서 받아오기라도 했을까. 대체 인구 360만 명과 120만 명을 가진 거대도시의 중간지점에 원전을 줄줄이 늘여 세워 놓고도 이렇게 태평한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있는지 모르겠다. 일본이 우리보다 안전의식이 부족해서, 지진에 대한 대책이 모자라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당했단 말일까.

성장지상론자들에게는 철없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제는 우리 문명의, 우리 삶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도 되지 않았을까. 지구적 차원의 경쟁이 이토록 치열한 세상에서 한발이라도 뒤처지면 당장 퇴보의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위협은 이미 신물 나게 들은 터다. 그래서 온 국민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죽을 동 살 동 경마장의 말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터다. 그 결과로 우리는 많은 걸 성취하긴 했다. 하지만 미사일이 머리 위로 펑펑 날아다니고 언제 핵폭탄이 터질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 휴가철마다 바리바리 짐 싸들고 해외여행 다니는 게 그리도 행복한 일일까. 정수리에 원전이란 이름의 불화로를 뒤집어 쓴 채 펑펑 써대는 전기가 그토록 대견한 것일까. 하늘을 온실가스로 가득 채워 얻은 자가용 승용차를 도로가 미어터지도록 타고 다닌대서 우리 삶이 발전한 것일까.

우리는 2년 반 전 세월호 참사란 끔찍한 사건을 겪었다. 그때 우리는 꽃다운 죽음 앞에서 얼마나 자괴하고 얼마나 반성하고 얼마나 가슴을 두드렸던가.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보면 우리는 과연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그 참혹한 사건을 잊고 우리는 다시 무덤덤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아무런 문명사적 전환의 성찰도 얻지 못하고 다시금 탐욕과 나태의 늪에 빠져들고 있지 않은가.

모르겠다. 어쩌면 이런 거창한 화두(?)는 우리 같은 장삼이사가 머리 속에 담고 있기엔 지나치게 큰 이야기여서 하나마나한, 허황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을 터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하기엔 우리 자신의 삶이, 그리고 우리 후손의 미래가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개인 개인이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도 있을 게고, 인류적 차원의 거대한 각성이 따라야 할 일도 있긴 하겠다. 어쨌거나 우리가 사는 ‘지금-여기(hic et nunc)’를 조금이라도 우주와 자연의 섭리에 맞추려는 노력까지 헛된 건 아닐 터이다. 그 작은 노력들이 모인다면 세상을 근본에서 바꿀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탄허 스님의 예언을 들먹인다. 탄허는 이렇게 말한다. ‘간방(艮方)에 간도수(艮度數)가 접합됨으로써 이제 한국에 어두운 역사는 끝맺게 되었다. 인류 역사의 시종이 이 땅 한국에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지금은 결실의 시대다. 열매를 맺으려면 꽃잎이 져야 한다. 꽃잎이 지려면 금풍(金風)이 불어와야 한다. (…)오래지 않아 한반도는 국운이 융성해질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인물들이 나타나서 조국을 통일하고 평화로운 국가를 건설할 것이다.’

글쎄, 듣기엔 기분 좋은 소리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 어디 공짜로 오겠는가. 탄허의 예언은 결국 현실의 문명 체계에 대한 경고이자 ‘후천개벽(後天開闢)’에의 열망일 터. 다시 말하면 문명사적 대전환을 이루라는, 우리 겨레에게 던진 사자후일 것이다.

이 시대는 주역이 말하는 ‘밀운불우(密雲不雨),’ 구름은 잔뜩 끼었으나 비는 오지 않고, 세상은 변화를 향해 치닫지만 아직 길이 보이지 않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히려 미래를 준비하고 오늘의 삶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세상의 패러다임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이들에게만 ‘바람이 아래로 불어오고 우레가 위로 솟구쳐 만물이 생동해 꽃과 열매가 열리는’ 풍뢰익(風雷益)의 괘가 펼쳐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어쩌면 이번 지진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문명의 틀을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할 때가 도래했다는 신의 목소리가 아닐까 싶은 과장된 생각도 드는 것이다.

추석 연휴에 들이친 이 비가 지나고 나면 삽상한 가을이 올 터이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앞에서 광풍제월(光風霽月), ‘비 갠 후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기다리며 떠올려 본 백일몽 같은 망상 한 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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