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거세시킨 미래사회가 던지는 사랑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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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거세시킨 미래사회가 던지는 사랑의 의미
  • 부산광역시 손은주
  • 승인 2016.09.09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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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퀄스(Equals)>가 그려내는 또다른 끔찍한 신세계 / 부산광역시 손은주
(사진 : 영화 <이퀄스> 포스터)

슬픔, 기쁨, 짜증, 사랑 등 우리는 다양한 감정 속에서 타인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사소한 감정 하나하나 때문에 힘들 때가 많다.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일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사람 때문에 힘들다.” 영화 <이퀄스>에 나오는 미래 사회 ‘선진국’에선 사람들은 서로 간의 관계를 무시한 채 혼자만의 삶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감정이 없다. 혹여나 감정이 생겼다면 끔찍한 질병에 걸렸다고 여긴다. 하지만 ‘선진국’은 노동생산성에 지장이 없도록 암을 치료하듯 치료제를 빨리 개발해 완벽히 감정 없는 사회를 추구한다.

“감정통제 오류 1기입니다.” 투신 자살 현장을 목격한 주인공 ‘사일러스’와 동료들. 그들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무덤덤하다. 그런데 그의 동료 ‘니아’는 죽은 사람 앞에서 차마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녀가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사일러스는 발견한다. 이는 금지된 감정이 그녀에게는 살아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니아에게 또다른 감정을 느껴 사일러스는 신고하지 않는다. 사일러스는 ‘감정통제오류 1기’ 선고를 받아 ‘감정 보균자’가 된다.

니아는 ‘숨은 보균자’다. 그녀에게 버그가 생긴 지는 1년 3개월. 꽤 오래됐다. 그녀는 매일 새로운 감정이 생기는 것을 확인한다. 감정이 생기면, 사람은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감정 보균자보다 강한 정신력을 지닌 숨은 보균자들은 ‘삶’의 의미를 더 깊이 느낀다. 반면, 치료감호소는 감정통제 오류자에게 자살을 강요한다. 이 나라의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기에 ‘삶’의 중요함을 모른다. 이런 잔인한 사회에서 숨은 보균자들은 감정 보균자들에게 눈빛으로 희망을 준다. 교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 넘지 말아야할 선이 있다. 수많은 감정 중에서도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토네이도처럼 강렬하기 때문에 특히 금지되고 있는 것.

“치료제 나올 때까지 버티자.” 이것이 현재로선 최선의 방법이다. ‘선진국’에서 살아남으려면 말이다. 사일러스와 니아는 결국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사랑에 빠진다. 이 둘은 접촉에 반응하며 사랑을 확인한다. 이는 감정이 있어야 가능한 것. 하지만 ‘선진국’에선 감정을 갖는 일이 범죄인 사회인 것이다. 이 둘은 유일한 감시 제외 공간인 화장실에서 매일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동료의 눈에 띄게 되고, 위기를 직감한 사일러스는 직장을 옮긴다. 그의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슬펐기 때문이다. 감정을 가진 자의 공통점은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감정 표현이 ‘선진국’의 보균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감정이 없는 이들은 어떻게 임신할까? 그들은 임신을 위해 강제 소환돼 프로그램의 통제를 받는다. 감정 없는 사람들의 집단인 ‘선진국’에서는 이게 당연한 임신 방식이다. 감정이 없으니 사랑을 나눌 수 없고, 그래서 자연스러운 임신조차 불가능한 일이 됐기 때문이다. ‘선진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인류의 목적은 우주 탐사라고만 배워왔다. 내가 누구인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다. 아니 어쩌면 알 필요도 없다. 그들은 감정이 없기에. 하지만 사일러스와 니아는 사랑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느낀다. 이런 상태는 서로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며 ‘대화’를 많이 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행복도 잠시, 유전자 조작으로 감정 질서를 바로잡는 치료제가 개발된다. ‘ENI’라고 부르는 이 치료약을 복용하면 감정통제능력이 100% 회복될 수 있다. 6시간 후면 모든 감정이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이를 ‘선진국’ 사람들은 ‘건강을 되찾는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대신 기억은 존재한다. 하지만 감정이 없는데 기억만 존재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일러스와 니아는 오직 ‘감정’을 기억하고 싶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없어지는 것이니 말이다.

치료제를 피해 그들은 반도국으로 탈출하고자 한다. 하지만 니아는 소환장을 받는다. 강제로 정자 투입술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숨은 보균자인 니아는 병원에서 버그를 들킬까 봐 걱정하지만,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그녀는 곧바로 치료감호소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다른 숨은 보균자 덕분에 금방 풀려나게 된다. 그 사이 사일러스는 니아가 죽었다는 생각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ENI’ 치료제를 맞는다. 이는 사일러스가 감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선택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죽었다는 슬픔은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웠을 테니까. 사일러스는 약을 주입하고 밤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집에는 니아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 그 만남이 너무 잔인하다.

이미 그의 몸에는 약이 퍼지고 있다. 몇 시간 후면 그는 감정을 잃게 된다. 이제는 약과 싸워 이겨야 한다. 감정이 있을 때가 삶이 살아 있는 법. 이제 사일러스는 ‘느낌’을 기억해야만 한다. 사랑의 ‘느낌’을.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사일러스는 감정을 잃는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는 눈빛이 달라지고 미소가 없다. 사일러스는 감정 없이 기억에만 의존하며 니아와의 못다 한 약속을 이룬다. 반도국으로 떠나는 기차에서 둘은 말이 없다. 하지만 잠시 후, 사일러스는 그녀의 손을 지긋이 잡는다. 감정이 다시 돌아온 걸까? 깊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약을 이겨낸 걸까? 

나는 영화가 끝난 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잔인한 ‘선진국’에서 이 둘만큼은 행복을 찾길 바랐다. 감정 없이 모두가 ‘equal하게’ 평등하고 동등하게 돌아가는 ‘선진국’은 공산주의보다 더 지독한 미래 사회였다. 과학에 의해 인간의 감정까지 거세되는 암울한 미래 문명 세계의 모습은 끔찍하다. 영화 <이퀄스>는 ‘선진국’이 된 구체적인 배경을 제시해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금지된 사랑이 더 잔인하게 표현됐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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