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의 이중섭미술관은 천재화가 이중섭의 높은 창작 열의와 불멸의 예술성을 후대에 기리고자 건립된 전시관이다. 2002년 이중섭 전시관으로 개관하여 2004년 제1종 미술관으로 등록되었다.
이중섭(1916~1956)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 후퇴 때 고향인 평남 평원군을 떠나 부산에 잠시 머물다가 서귀포 바다 섶섬이 보이는 초가집 한 평 남짓한 셋방에서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고달픈 피란살이를 했다. 1년여의 피란 생활을 마치고 그해 12월 이중섭은 서귀포를 떠났다.
1·4 후퇴는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1월 4일,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을 등에 업고 수도 서울을 탈환한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국경에서 북한의 임시수도 평안북도 강계시를 향한 마지막 공세를 준비하던 중, 중국에서 내려오는 중국 인민지원군의 불법 개입으로 인한 대공세로 다시 서울을 포기하고 대대적으로 퇴각한 사건이다. 제주 서귀포는 이중섭에게 대단히 주요한 시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중섭미술관은 6월 25일부터 8월 18일까지 2024년 이중섭 특별전 2부 '그리움은 그림이 되어'와 기증 작품전 '이중섭과 동시대의 화가들'을 동시 개최했다. ‘그리움은 그림이 되어’에서는 식민지 시절에 만난 일본 여성과 결혼을 하고, 한국 전쟁 기간에 부산, 제주도를 오가며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가난한 생활을 하다 결국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지내야 했던 이중섭 가족의 드라마틱한 삶과 사랑의 절절함을 이중섭의 그림에서 볼 수 있다.
그의 그림 특징으로 아이들이 몸을 맞대고 연결된 듯한 것도 있지만 아이들 사이로 종종 게와 물고기가 등장한다. 게와 물고기는 제주에서 피난 생활을 하면서 두 사내아이와 함께 지냈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린 그림이다. 또 워낙 먹을 게 없어서 게와 물고기를 잡아먹었는데 이후 그는 미안한 마음에 사죄의 의미로 게를 그림에 그렸다는 이야기를 해 그의 어려웠던 실제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이중섭은 본인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절을 자주 그렸다. 이중섭의 가족을 얼마나 그리워했고 재회를 원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서귀포시는 이번 전시를 끝으로 지난 2002년 개관한 이중섭미술관을 철거한다. 서귀포시는 현 미술관 위치에 연면적 5300㎡의 문화·집회 시설을 짓는 '이중섭미술관 시설 확충' 사업을 추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