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소년이었던 시절이 있다. 소년 시절이란, 누군가에겐 다시 돌아가고 싶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상처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소년 시절의 너’는 바로 이러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두 청춘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린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흑백 화면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등장한다. ‘학교폭력은 바로 여러분 곁에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가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에게 힘이 되길’.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주길 바랍니다’. 이 문구들은 영화가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님을 암시한다. '소년 시절의 너'는 학교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며, 단지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넘어서 사회 속에서 외면받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위로의 메시지를 던진다.
실제로 이 영화는 한 학생의 자살로 시작해 주인공 ‘첸니엔’이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영화 내내 적나라하고 생생하게 묘사한다. 당장 학교폭력이라는 어두운 면이 크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 속에서 묘사된 폭력은 결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의 배경이 된 중국의 상황을 살펴보자. 2023년 중국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등학생의 약 12%가 학교폭력을 경험했다고 보고되었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3년 교육부의 1차 학교폭력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학생 가운데 약 1.9%인 5만 9000명이 학교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러한 통계는 학교폭력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주위를 잘 살펴본다면 분명 우리 주변에는 첸니엔과 같이 폭력에 고통받는 소년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엄마는 나이 들면 좋은 게 있대요. 잘 잊어버린다고. 결국 다 잊을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하지만 어른 되는 법은 아무도 안 가르쳐 주네요”. 영화 속 첸니엔의 말은 큰 여운을 남겼다. 필자 또한 소년 시절에 비슷한 말을 종종 듣고 자랐기에 더 와 닿았던 거 같다. 당시 어른 모두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힘들어도 어른이 되면 다 잊게 돼 있다.” “어른이 되면 지금이랑 다를 것이다.” “너만 힘든 게 아니다.” 필자도 소년 시절 대인관계로 인해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가까운 어른들에게 내가 힘듦을 털어놓아도 공감을 해주는 어른들은 잘 없었기에, 어느새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 모두가 첸니엔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어떻게 입시에 집중을 하냐’고 반문했지만 나 또한 해당 문제를 겪을 때 오히려 더 공부에 매진하고 열심히 살았던 거 같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오히려 뒤늦게 무기력이 몰려와서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어른들의 말처럼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때의 기억에 완전히 벗어나질 못했다.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의 위로와 공감은 삶을 나아가는데 큰 원동력이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필자 또한 새로운 인연들에게 많은 힘을 얻었으니 할 수 있는 말이다. 첸니엔에게는 ‘샤오베이’가 그런 역할을 해줬던 것처럼, 상처받은 소년들에겐 ‘어른이 되면 괜찮아질 거다’라는 말이 아닌 편히 기댈 수 있는 존재, 나아가 사회가 필요하다. 당신은 어떤 어른인가. 또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