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말고, 적게 아파야 하는 하수상한 세상
시와 노래가 위안.... 담소하듯 다가오는 가을 맞자
아침 저녁의 공기가 달라졌다. 가을이 오긴 오나보다. 끈질긴 폭염과 역대급 열대야가 계절의 운행에 따라 서서히 물러난다. 수고했다. 모두 애썼다, 톡톡 어깨라도 두드려 주고 싶다.
혹독한 여름은 견뎌냈지만 돌아보면 도처에 아픔이다. 의대생 정원 2,000명 증원에 따른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죽고 사는 문제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가 한치 양보 없이 대치하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가 일상화 되었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픈 자들의 비명소리가 날로 커진다. 아프지 말아야 하고, 아파도 병원 안갈 정도로 조금만 아파야 하는 시대다.
여야의 정쟁 속 대치정국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국회 의결 법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21회란다. 국회 의석 192석의 거대 야권이 대통령 거부권 앞에 헛힘을 쓰는 형국. 정권발 친일 의혹과 논란, 뉴라이트 인사들의 득세, 상식적이지 않은 정부 고위직 인사, 무리한 방송장악 시도... 말과 말, 글과 글들이 서로 살벌하게 부딪치며 선혈이 낭자한 하수상한 세상이다. 보수/진보의 가치가 뒤죽박죽이다. 내편이 아니면 적이다. 북한에선 오물 풍선이 계속 날아오고, 괴상한 딥페이크 범죄까지 기승을 부린다. 이 와중에 정치권 한쪽에선 난데없이 계엄령 공방이 벌어진다.
시민들은 물가고에 장보기가 겁난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제가 잘 돌아간다고 우긴다. 서울의 부동산이 오름세라는 뉴스와는 별개로, 지방 경기는 여전히 바닥이다. 수십 곳의 재개발사업이 묶였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저출산 위기 속 지방소멸이 현실화되어 간다.
국토수호의 상징 독도를 소홀히, 가볍게 다루는 정부 태도에 이르러선 말문이 막힌다. 어리둥절하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렇게 가도 되는지, 의문과 우려, 걱정이 쌓인다. 추석이 다가오지만 시름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은 성큼성큼 가을이 오고 있다는 것. 시인은 가을이 왔다며 부디 아프지 말라고 당부한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쉬고 있는/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나태주, ‘멀리서 빈다’)
어지럽고 뒤숭숭한 시절이다. 상식이 상식이지 않고, 공정이 공정이지 않는 세상. 마음 둘 곳 없는 우울한 세상. 그래도, 시인의 위로가 있어 우리는 이 아픈 시대를 건너간다.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고요한 저녁이 오리니.
시로부터 위안을 얻어 노래 한곡 띄운다. 담소네공방의 ‘친구’다. 어지러운 시대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상큼발랄한 노래다. 담소(淡昭)는 ‘맑고 밝다’는 뜻. 노래가 가을처럼 푸르다.
…수많은 길이 있고/다른 하루를 살지만/철부지처럼/좋아하는 것을 해보자/때론 흔들리고/우울할 때도 있지만/서로 의지하며/오늘도 행복하자~
가을이다. 우리 모두 부디, 아프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