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재능과 열정 찾자," 학교, 직장 쉬고 진로 찾는 '갭이어'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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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능과 열정 찾자," 학교, 직장 쉬고 진로 찾는 '갭이어' 확산
  • 취재기자 박현주
  • 승인 2016.08.22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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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 회사도 발빠른 등장...한편에선 "현실 도피하려는 사치" 비판도 / 박현주 기자

얼마 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딸이 하버드 대학교 입학을 미루고 1년간 ‘갭이어(gap year)’를 가지겠다고 선언했다. ‘갭이어’란 학업이나 직장 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봉사, 여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활동을 체험하고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찾으면서 진로를 모색하는 기간을 일컫는다. 

영국에서 시작된 갭이어는 미국에서 ‘애플’ 신화를 일으킨 스티브 잡스로 인해 유명해졌다. 스티브 잡스가 스무 살 때 휴학을 선택하고 인도로 배낭여행을 갔다 돌아온 뒤, 세계 최고의 IT회사 애플을 창업했기 때문이다. 이에 고무 받은 세계 명문대학들은 합격생들에게 입학허가서를 보내면서 갭이어를 권장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이밖에도 할리우드 스타 엠마 왓슨과 그녀를 스타로 만든 1등 공신이나 다름없는 영화 <해리포터>의 원작 작가 조앤 롤링, 국내 방송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의 우승자였던 로이킴 등 유명 인사들도 갭이어를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갭이어가 주목받고 있다. 휴학이나 휴직 또는 사직하면서 자신의 삶과 진로를 재정비하는 대학생들이나 직장인이 늘어나고 있는 것.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다시 찾아보는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올 6월 5일자 한국경제는 “국내 갭이어 족 규모는 한 해 1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얼마 전 사직서를 제출하고 백수가 된 임모(27, 경북 구미시 도량동) 씨는 “경쟁에 치여 사라져갔던 자신감과 의욕을 되찾고 싶다”며 “인생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 갭이어를 생각했고, 내년에 영국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갈 계획”이라고 털어놨다.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정민경(22, 경기도 안성시) 씨도 벌써부터 갭이어를 염두에 두고 있다. 정 씨는 “졸업 후 1년간 취업하지 않고 여행을 포함한 새로운 경험을 하고 돌아오겠다고 부모님께 선전포고해 둔 상태”라며 “직장생활에선 얻을 수 없는 내면의 무궁무진한 커리어를 찾아내기 위해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갭이어를 알선하고 조언하는 회사도 등장했다(사진: 한국 갭이어 회사 홈페이지 캡처)

갭이어를 사업 아이템으로 삼은 회사도 등장했다. 바로 교육·컨설팅기업 ‘㈜한국 갭이어’가 그곳. 2011년 정부가 ‘갭이어 제도’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하자 재빨리 2012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좀 더 새롭고 창조적인 교육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갭이어 활성화'를 모토로 내세웠다. 이 회사는 갭이어를 보낸 경험이 있는 갭이어 전문 프로젝트 기획자, 갭이어 컨설턴트들로 갭이어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객들이 각자에 알맞은 갭이어를 보낼 수 있도록 상담해준다.

그동안 ‘(주)한국 갭이어’가 운영하는 갭이어 프로그램 참가자는 2013년 991명에서 2014년 1,987명, 지난해 2,559명으로 2년 새 158% 급증했다. ‘(주)한국 갭이어’의 도움을 받아 제주도의 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머물며 '갭퍼(갭이어를 가지는 사람을 일컫는 말)' 생활 중인 박모(26, 서울시 동작구) 씨는 “현재 원하는 인생의 방향을 열심히 찾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캄보디아에서 영어 교육 봉사에 참여한 최준(30, 전북 전주시 완산구) 씨도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을 때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최 씨는 갭이어를 계기로 현재 한 어학원에서 일하고 있다. 

갭이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안학교도 등장팼다(사진: 벤자민인성영재학교 홈페이지 캡처).

갭이어를 후원하는 대안학교도 있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2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벤자민 갭이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10대 청소년들에게 인성 교육 위주의 학습을 제공하는 대안학교의 한 종류다. 2014년 3월에 설립된 이 학교는 올해 2월부터 잃어버린 열정을 되찾으려는 20대 청년들을 위해 ‘벤자민 갭이어’라는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청년들에게 스스로 원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주제를 정해 갭이어를 가지도록 한다. 철인 3종 경기 완주, 그림전시회 개최, 무전여행 등 개인 프로젝트에서부터 나라사랑 국토대장정, 독도 플래시몹, 러브핸즈 봉사여행, 강연 기획 등 친구들과 함께하는 단체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관계자는 “갭이어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 선택한 프로젝트를 끝까지 해내는 책임감과 문제 해결력을 키우고, 세상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며 “한 학생에게 두 명의 멘토가 배정돼 갭이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1년 과정 동안 일대일 멘토링과 상담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휴학 후 벤자민 갭이어의 중앙 워크숍에 참여한 심유리(22, 울산광역시 울주군) 씨는 ”앞으로 남은 휴학 생활 동안 오로지 스펙을 위해서만 시간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20대에게 도전과 창조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갭이어 워크숍을 통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갭이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없지 않다. 취업이 잘 되지 않는 현실에서 갭이어를 핑계로 현실 도피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는 것. 대학생 노현지(22, 경북 포항시 남구 해도동) 씨는 “내 주위에 돈 있는 친구들이 휴학해서 갭이어를 핑계로 여행을 다니지만 돈 없는 학생들에게 사치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채원(19, 경북 포항시 북구 우현동) 씨 또한 “대학 입학 전에 무려 1년 동안 갭이어를 가진다는 건 우리나라 현실에선 말이 안 된다”며 “게다가 대학생들은 방학이 두 달이나 되는데 굳이 따로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한국 갭이어 관계자는 “갭이어에 관한 오해가 여럿 있는 것 같다. 두 달 동안만이라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한 시간을 가진다면 그것도 갭이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무조건 해외로 나가는 것만이 유익한 갭이어라고 볼 수 없으며, 굳이 돈을 안 들이고도 자신의 진로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할 수 있고, 돈까지 벌 수 있는 프로젝트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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