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불로 새 생명 빚어내는 재미에 세월 잊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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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불로 새 생명 빚어내는 재미에 세월 잊었죠"
  • 취재기자 오윤정
  • 승인 2016.08.2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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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도심에서 공방 운영하는 도예가 정맹룡, 김진이 부부 / 오윤정 기자

뜨거운 불을 지펴 그 불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예술을 불태우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도예가라 부르고, 그들의 예술품은 도예라 부른다. 도예는 흙과 불이 만나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뜨거움'의 예술이다. 

부산 해운대에는 부부 도예가 정맹룡(50), 김진이(48) 씨의 도예공방이 있다. 공방 내부에는 전기 물레가 돌아가는 소리와 활기찬 음악이 흐르고 있다. 그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다. 공방 입구에는 가지런하게 정돈된 부부 도예가의 작품들이 즐비하다. 공방 안쪽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다양한 형태로 곱게 채색된 도자기들이 줄지어 늘어서 '불의 세례'를 가져다 줄 도예가의 마지막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전시작품 사진을 정리하고 있는 부부 도예가 정맹룡, 김진이 씨(사진: 취재기자 오윤정).
공방에 전시된 작품들. 대부분 식탁이나 집안 곳곳을 장식해도 좋은 예술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들이다(사진: 취재기자 오윤정).

올해 50세에 접어든 정맹룡 도예가가 도자기 공예에 첫발을 딛게 된 것은 중학교 담임 선생님 덕이다. 중학교 3학년 때 미술을 가르치던 담임 선생님이 그의 손재주를 알아본 것. 어린 시절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던 그는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부산공예고(현 한국조형예술고)로 진학했다. 정 도예가는 “그때는 도예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게 내 도예 인생의 시작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공방으로 뛰어 들었다. 도자기를 생산하면서 수강생을 받아 가르치는 도예 공방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그 공방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했지만 도예를 배우러 왔던 지금의 아내인 김진이 도예가도 그곳에서 만났다. 

초년 도예가 시절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작품활동에 매진하면 할수록 생계유지 활동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30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공방을 잠시 접고 아내 김 씨와 함께 액세서리 사업을 하면서 커나가는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치는 일에 골몰했다.

예술은 헤어진 첫사랑과 같은 것이다. 도자기와 일시 헤어지면서 부부는 오히려 도자기에 더 애틋한 애정을 갖게 되었다. 생계를 위해 다른 일에 손을 대는 동안 부부는 도예가 진정 자신들의 길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 아이들이 웬만큼 자라자 부부는 헤어진 첫사랑을 찾아나서듯 다시 ‘정맹룡 도예공방’을 열었다. 그리고 도예 작품을 하나하나 직접 빚고 구웠다. 만드는 작품마다 도예에 대한 애정이 예전보다 더 깊게 묻어났다. 다시 공방을 열고 작업에 매진하면서 부부는 도예가 무엇인지 비로소 체감했다고. 도예는 더 이상 생계의 장애물이 아니었다. 정 도예가는 도예와 생활용품을 접목하는 길을 찾아 갔다.

정맹룡 씨와 김진이 씨가 공방에서 도예 수강생에게 도예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오윤정).

도자기는 실생활에서 그릇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인테리어 소품으로 집안 이곳저곳을 장식하기도 한다. 이처럼 도자기는 생활용품이면서 예술작품이라는 두가지 성격을 갖는다. 그는 “상품이라고 해서 예술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에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입히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6월, 경성대 제1미술관에서 열린 예술대학원 공예학과 석사학위 청구작품전에 전시된 정맹룡 씨의 작품(사진: 정맹룡 씨 제공).

흙을 빚어 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채색한 다음, 가마에 굽는 도예는 힘들고 궂은 작업이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도예 일을 할 수 없다. 정맹룡 작가는 도예를 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으로 부지런함을 꼽았다. 도자기를 생물과 같이 여긴다는 그는 틈틈이 작품의 상태를 확인하고 관리한다. 재료가 되는 흙이 마르지 않고 촉촉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늘 작업실 습도를 조절해야 한다. 부부 중 한 명이 공방을 비우면 다른 한 사람은 대신 자리를 지킨다. 그는 “아이 다루듯 섬세하게 작품을 보살피는 부지런함은 도예가의 기본 자질”이라고 말했다.

연륜이 쌓이면서 그들의 도자기도 점점 세상의 인정을 받게 됐다. 부산과 일본에서 여러 번의 그룹전에 참여했던 정 씨는 2012년, 2014년에는 개인 전시회도 열었다. 지금은 11월에 열 새 개인전 준비에 한창 바쁘다. 

전시된 작품이 마음에 든다며 자신의 작품을 구입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는 도예가로서 보람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작품성을 인정받는 것은 언제든 기분 좋은 일이다. 공방에서 자신이 가르친 수강생의 작품 수준이 나날이 발전하는 것을 볼 때도 뿌듯하다. 정 작가는 “누군가의 작품을 열심히, 자세하게 보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도자기를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도자기 공예가 대중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불가마에서 가스 가마, 기름 가마, 전기 가마 등으로 가마의 종류가 진화했다. 미디어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이 많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도자 작업의 요체는 자신이 직접 손으로 흙을 빚어 도자기를 만들고 굽는 과정에 참여해 보는 것이다. 해운대 도심 한 복판에서도 도자기를 만들고 굽는 공방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람들이 자신의 공방을 더 찾아주기를 그는 바라고 있다. 나아가 도예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더 확산되었으면 하는 욕심도 갖고 있다. 그는 “도예는 생활과 예술이 결합된 예술 장르인 만큼 대중성을 갖고 있고 일반인들이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다”고 말했다.

작업실 내부에서 바로 도자기를 구워낼 수 있는 전기가마(사진: 김진이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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