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은 세대에 맞게 변화하는 트렌드...상호 평가는 의미 없어"
"진심 어린 사과도 아니고 무슨 심심한 사과?" "심심한 사과라니 난 하나도 안 심심하다." 지난해 9월 한 웹툰 작가의 사인회 예약 과정에서 일어난 혼선에 대한 사과문에 달린 반응이다. 주최 측은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라는 뜻으로 '심심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를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사과'라는 뜻으로 알아들은 MZ세대에게 ‘애초에 단어를 풀어 썼으면 될 일, 한자어의 뜻을 모를 수도 있다’라는 이해의 반응과 ‘MZ세대의 문해력 수준이 낮다’는 조롱의 반응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반응이 대다수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MZ세대의 문해력 논란이 불거져 한때 논란이 뜨거웠다.
기성세대인 직장인 차순남(51, 부산시 동래구) 씨는 “요즘 세대 친구들은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쓸 줄 모른다”며 한자어의 무지함을 비판했다.
반면에 MZ세대인 부산대학교 경영학과 장주원(23) 씨는 “한자어가 국어 단어의 60% 정도를 차지하지만, 한자어를 모른다고 해서 소통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데에 불편하지만 않으면 굳이 한자를 알아야 할까?”라고 말했다.
MZ세대의 문해력 부족은 과장된 해석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2020년 성인문해능력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의 문해력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성인문해능력조사는 문해력의 정도를 수준 1(초등학교 1~2학년), 수준 2(초등학교 3~6학년), 수준 3(중학교 1~3학년), 수준 4(중학 학력 이상) 총 4가지로 구분하고 수준 4에 해당하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문해력을 갖췄다고 본다. 문해력 논란이 있는 18~29세 성인 중 문해력 수준 1~3에 해당하는 이들은 4.7%로 가장 낮은 수치였다. 특히 18~29세 성인 중 수준 1에 해당하는 이들은 0.2%에 불과했다. 오히려 50대부터는 수준 1~3 비중이 10%를 넘어가며, 60대 35.6%, 70대 58.9%, 80대 이상 77.1%로 연령층이 높아질수록 문해력 수준이 미흡하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문해력이 부족한 이유는 ‘책을 읽지 않아서’?
기성세대는 MZ세대의 문해력 문제의 핵심이 ‘독서를 하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난해에 발표된 2023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성인들의 종합독서율은 43.0%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6명’이라는 수치는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고령층이 저연령층보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조사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나왔다. 오히려 60세 이상 고령층의 종합독서율은 15.7%, 20대의 종합독서율은 74.5%로 문해력 논란이 끊이지 않는 20대가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를 통해 독서량의 차이로 문해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대학생의 절대적인 독서량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경성대학교 도서관의 1인당 도서 대출 수는 2011년 8.3권에서 지난해 3권으로 절반 넘게 감소했다.
경성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이나현(21) 씨는 “요즘은 책도 인터넷으로 읽는다”며 “종이로 된 책이 아닌 인터넷으로 글을 읽어도 지식은 똑같이 얻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약본을 찾거나 제목 혹은 결론만 보고 넘길 때가 많다”며 MZ세대의 문해력 부족이 책을 읽지 않아서라는 의견도 나왔다.
문해력 부족의 가장 큰 원인...인터넷 이용 패턴의 변화
‘스압주의’란 스크롤 압박 주의(내용이 길어 스크롤 길이가 짧아진다는 뜻)를 줄여 일컫는 MZ세대의 한 용어이다. 스압주의는 분량이 길다는 것을 미리 경고하는 단어이다. 이처럼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빠른 정보 습득을 위해 유튜브 등으로 정보를 얻는 MZ세대는 글이 많고, 영상 길이가 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짧고, 간단하며, 핵심만 있는 것을 선호한다. 대표적으로 숏폼이 있다. 1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보여준다. 긴 글보다 분량이 짧은 영상매체를 선호하는 MZ세대의 특성이 바로 문해력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또한 원하는 정보만 찾아보는 확증편향, 알고리즘 등이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풍성한 교회 영상 제작 팀장 강필종(42) 씨는 “유튜브 특히 숏폼은 특정 정보의 내용을 집약적으로 압축해서 전달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갇힌 사고, 수동적 사고에 길들게 되기 쉽다“라며 유튜브 숏폼의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반면에 부산대학교 경영학과 안현지(21) 씨는 “기성세대가 책으로 문해력을 키웠다면 MZ세대는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문해력을 쌓는다”며 “결과적으로 기성세대와 차이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주장을 폈다.
문해력 논란이 생긴 진짜 이유
그렇다면 MZ세대의 문해력 논란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진 MZ세대의 정보 습득 및 의사소통 방식 변화와 세대 간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다. MZ세대는 디지털 기기 의존도가 높다. 영상 매체를 위주로 정보를 습득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단 몇 초 만에 검색을 통해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보를 바로 검색하지 못했던 시절에 익숙한 기성세대보다 MZ세대의 문해력이 낮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기성세대가 MZ세대의 줄인 말을 어려워하는 것처럼 MZ세대도 한자어가 익숙하지 않아 발생한 논란이다. ‘낯설다’,‘익숙하지 않다’라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이해 못 하고, 서로를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차이를 인정하고 배우려는 자세만 있다면 문해력 논란은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
대명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박나래(51) 씨는 “기성세대의 경험과 다르다고 해서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가 바뀌어야 하고, 무조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라고 말했다. 박 교사는 이어 “다양한 세대 간의 소통의 단절을 해결하기 위해선 서로를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자세와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성세대와 MZ세대...서로를 바라보는 시각
스타벅스 카페 사장 권혁수(37,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20대가 기성세대보다 문해력이 떨어진다”며 “신문, 책 같은 인쇄 매체를 읽지 않고 스마트폰과 영상물 시청에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라고 카페에 온 손님들의 모습을 2년 가까이 지켜본 경험을 말했다. MZ세대의 문해력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경성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정일형 교수는 “지금의 기성세대는 신세대였을 때가 있었고, 지금의 신세대가 시간이 흘러 기성세대가 된다”며 “문해력이란 세대끼리 만들어내는, 혹은 그 세대에 맞게 변화하는 트렌드이기 때문에 서로를 향한 평가 자체가 의미 없다”고 말했다.
경성대학교 영어영문학과 2학년 김동현(21) 씨는 “요즘 시대는 한자어 보다 영어가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며 “기성세대들은 MZ세대 보다 익숙한 한자를 ‘배운 사람’이라고 뽐내는 수단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즉 MZ세대의 문화를 기성세대가 적응을 못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기성세대가 본인과 MZ세대와의 우위를 나눈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한 방법
문해력은 우리 삶에 있어 다양한 부분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16-65세 대상)에 따르면, 문해력과 사회생활 사이에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문해력이 부족하면 상대방의 말과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소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정부의 발표나 공적인 문서를 이해하기도 어렵고, 서로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해 세대 간의 갈등도 생길 수 있다. 문해력 문제가 더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이어지기 전에 다양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인력, 예산, 연구 등 과감한 투자를 통한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과제이다.
기성세대만이 이끌어가는 사회는 없고, 신세대가 기성세대를 뒤엎고 새롭게 이끌어 사는 사회도 없다. 서로를 이해하며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