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철 칼럼] 한글 전용 세대의 문해력 위기②: 우리 문해력 해결책은 미국 국어교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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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철 칼럼] 한글 전용 세대의 문해력 위기②: 우리 문해력 해결책은 미국 국어교육에 있다?
  • 경성대 명예교수 정태철
  • 승인 2024.07.01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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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전용 속 한자어, 알파벳 전용 속 라틴어...한글과 영어, 운명이 같아졌다
헌재, 한글 전용 국가 정책 합헌 결정...국민 문해력을 헌재가 보장하나?
한자 교육 없는 한글 전용은 ‘막장’ 언어생활
*편집자주: ‘한글 전용 세대의 문해력 위기①: 우리말 일상어의 50%, 전문어의 74%가 한자어’(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144)에서 이어집니다.

한글과 영어가 같은 운명?

한자 안 배우는 한글 전용 세대의 미래 문해력은 어찌 될까? 가뜩이나 한글 문서 태반인 휴대폰에 빠져 책을 더 멀리하게 되지는 않을까?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만 42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0년 성인문해능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 18세 이상 성인 중 초등 또는 중학교 수준의 학습이 필요한 성인은 20.2%에 달했으며, 이를 실제 성인 인구수로 환산하면 약 890만 명에 달한다. 2023년 8월 국무회의에서는 국민 문해력 저하 문제가 언급됐으며, 그후 교육부는 초등학교 국어 시수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고, 일부 지자체는 EBS,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함께 ‘읽는 시민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실시한 2023년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국어에서 보통 학력 이상을 받은 중3 비율이 2017년 84.9%에서 2023년에는 61.2%로 떨어졌다. 고2 비율도 2017년 75.1%에서 2023년 52.1%까지 떨어졌다. 학교 현장에서는 국어 능력이 떨어지면, 독서능력이 떨어지고 문해력이 낮아져서, 수학, 탐구 영역 등 개념 파악이 중요한 과목의 이해도 역시 낮아진다고 아우성이란다. 

2018년 OECD가 실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PISA) 분야는 수학, 과학, 그리고 문해력 등이 있는데, 이중 문해력 분야는 다시 '읽기 능력', '사실과 의견 구별 능력' 등 여러 세부 항목으로 측정된다. 그런데 여러 문해력 측정 항목 중 한국은 '읽기 능력' 항목에서는 높은 점수를 보였으나 '사실과 의견 구별 능력' 항목에서는 OECD 평균 47.4%보다 매우 낮은 25.6%를 기록했다. 이는 평가 대상 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점수였다. OECD는 보고서에서 "보통 읽기 점수가 높으면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고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는 점수가 높은데, 한국은 예외였다"고 적었다. 한국인은 읽기는 잘 하는데 읽은 글의 깊은 의미 이해가 낮다는 점을 OECD 보고서가 예외적으로 특별히 언급한 것이다. 이는 한국 학생들의 문해력 중 의미 파악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의미하며, 한글 전용 교육의 맹점인 한자 교육 부재가 그 원인일 수 있다는 의심으로 직결된다.  

한자를 혼용하는 일본은 초등학생들도 한자를 척척 능숙하게 쓰고 읽는데, 이들의 문해력은 어떨까. 일본도 2018년 OECD PISA에서 문해력 국가 순위가 과거 8위에서 15위로 떨어졌다고 난리가 났다고 한다. 이 결과를 두고, 일본은 스마트폰 증가와 SNS 중심의 정보 접촉을 문해력 하락 원인으로 꼽았다. 그리고 아침 독서 운동, 종이 신문 필사하기 등의 교육 정책을 편 결과, 2022년 OECD  같은 평가에서 문해력이 세계 3위로 올랐다고 한다.  미국도 하락하고 있는 청소년의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 미디어와 전통 미디어를 혼합해서 읽는 정책을 주정부별로 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민 문해력 저하의 주된 원인은 다른 국가처럼 스마트폰이나 쇼츠 등 짦은 동영상을 선호하고 긴 글을 회피하는 풍조의 영향, 독서력 빈곤 등에 더해, 한자 능력 부재가 겹쳐 있는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위의 국가평생교육진흥원 2020년 성인문해능력조사에 따르면, 나이가 젊을수록(한글세대일수록) 문해력이 높고 나이가 많을수록(한자세대일수록) 문해력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문해력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 요인이 한자 학습 여부만 있는 게 아니라, 나이에 따른 기억력, 인지능력, 테크놀로지 등 신지식 습득력 등 다변수적이므로, 한자 학습 여부만의 문해력 영향력을 잡아내는 일은 좀더 정밀한 연구가 필요할 듯하다.

다만, 일본이나 미국처럼 디지털 미디어의 공습에 따른 문해력 저하 현상에다, 우리나라는 우리 언어의 주요 구성 요소인 한자어 문맹 현상까지 겹쳐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한자 모르는 한글세대가 벌이는 좌충우돌 문해력 돌발 사태가 터지고 있다. 어린이 집에서 학부모에게 "우천시 00으로 장소 변경한다"고 가정통신문을 보냈더니 우천시가 어디 있는 도시냐는 질문이 쏟아졌다고 한다. 이 해프닝은 여러날 동안 기사화 안한 언론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일들이 수시로 언론에서 단골 뉴스로 다뤄지면서 '문해력 코미디'는 하나의 ‘사회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한자와 한글을 병용하든, 한글을 전용하든 학교에서 한자 교육이 필수여야 할 이유가 자꾸 쌓이고 있다. 우리가 1970년경부터 한글 전용을 국가 정책으로 정하면서, 일부 학생들만 선택과목으로 한자를 배우고, 중국어나 일본어를 배우는 학생들이나 특정 직종 취직용 스펙으로 필요한 학생들만 한자능력검정시험을 보게 됐다. 그런데 대다수 한글세대가 고유어, 외래어, 한자어를 한글 전용으로 표기하고 읽으면서, 우리 언어생활이 이제 ‘100%’ 영어권 국가들과 처지가 같아졌다. 이게 우리 학교에서 한자 교육이 필수가 되어야 할 중요한 이유다. 이게 무슨 말일까?

영어 어휘는 앞에서 밝힌 것처럼 외래어 투성이다. 그리고 영어의 고등한 개념일수록 라틴어, 그리스어 어원이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영어권 국가들은 영어를 라틴 문자나 그리스 문자로 표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한자어를 ‘한글로만 표기’하듯, 라틴어 등의 고난도 어휘를 ‘영어 알파벳으로만 표기’한다. 우리가 ‘한글 전용 표기’를 한다면, 미국은 ‘알파벳 전용 표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 한글세대가 한글 전용 표기하면서 ‘한글 단어 속 한자어를 뜻도 모르고 쓰는 상황’과, 미국 학생들이 ‘알파벳 전용 표기하면서 영어 단어 속 라틴어를 뜻도 모르고 쓰는 상황’이 그래서 ‘100%’ 동일해졌다는 말이다.

영어 속에는 라틴어 뿌리가 엄청나게 많다. 라틴어 어원을 모르고 책을 읽으면 눈을 가리고 읽는 것과 동일하다. 영어 속 라틴어는 한글 속 한자어와 역할이 같다. 영어권 학생들이 라틴어 어원을 배우듯, 우리가 한자어를 배우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어문 정책이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영어 속에는 라틴어 뿌리가 많다. 라틴어 어원을 모르고 책을 읽으면 눈을 가리고 읽는 것과 동일하다고 한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영어 속 ‘한자어’인 라틴어 백태

도대체 영어에서 라틴어나 그리스어 등 외래어 뿌리가 어떻게, 어느 정도 들어 있을까?

워렌은 그의 저서 <수상한 단어들의 지도>에서 라틴어가 영어에 미친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옮겨보자. 라틴어로 뿌리는 ‘radix’다. 그래서 뿌리를 먹는 채소인 무는 영어로 ‘radish’다. 영어의 ‘eradicate’는 뿌리를 뽑다는 뜻이고, 영어 ‘radical’은 급진적이란 뜻인데 뿌리를 뽑듯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정치세력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말로 쓰이는 ‘근본적(根本的)’이란 말도 뿌리에 어원을 두고 있는 게 흥미롭다. 결국, 라틴어의 ‘radix’가 뿌리라는 의미를 배우면, 영어권 사람들의 영어 문해력이 향상될 것은 뻔한 이치다.

‘lac’은 젖 또는 우유를 뜻하는 라틴어다. 영어 ‘latax’는 흰 수액을 뜻하고, ‘lactose’는 유당(포유동물의 젖에 함유된 당분)을 가리키며, ‘galaxy’는 우유가 밤하늘에 뿌려진 듯한 은하수를 말한다. 그래서 은하수를 ‘milky way’라 부르기도 한다. 영어 ‘lettuce’는 상추를 뜻하는데, 상추를 꺾으면 하얀 우윳빛 액체가 나오기에 그렇게 부른다. 우리가 잘 아는 ‘latte’ 역시 우유가 어원이다. 우유를 넣은 커피가 바로 ‘카페 라테’다. 단, ‘바닐라 라테’에서 콩의 일종인 바닐라의 어원을 알면 마실 때마다 좀 쑥스러워질 수 있다. ‘vanilla’는 라틴어 ‘vagina’가 어원인데, 이는 껍질 또는 씌우개라는 뜻이며, 이것과 유사한 모양이 연상되어 여성의 성기라는 뜻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vagina’가 바닐라의 어원이 됐다. 워렌의 책을 읽고 있던 무렵, 나는 서울 강남대로를 걷다가 ‘Vanilla Mood’라 적힌 카페를 발견했다. ‘달콤한 분위기’란 의미의 상호로 보이지만, 나는 그 카페로부터 성적(性的) 이미지가 연상됐다. 아는 게 병일까, 식자우환(識字憂患)일까?

코로나 사태 때 많이 쓰인 격리라는 영어 단어는 ‘quarantine’이다. 40을 뜻하는 라틴어가 ‘quaranta’인데, 흑사병의 잠복기가 40일이었기 때문에 14세기 흑사병이 돌던 그때 이후 격리를 ‘quarantine’으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crux’는 라틴어로 십자가인데, ‘crusade’는 십자군, ‘crux’는 십자가의 중앙을 관통한다는 뜻으로 핵심을 가리키고, ‘crucial’은 핵심적이거나 중요하다는 의미이며, ‘excruciating’은 몹시 고통스럽다는 뜻인데 끔찍한 십자가 처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mobile’은 쉽게 움직인다는 라틴어인데, 이게 ‘mobile phone’의 어원이다. ‘mob’은 폭도라는 뜻인데 쉽게 흔들리는(동요하는) 사람들이란 의미로 ‘mobile’ 어원이 확대된 결과다. ‘automobile’은 스스로라는 뜻의 ‘auto’와 ‘mobile’이 합쳐져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됐다. 이태리 성악곡 중에 ‘La donna mobile(라 돈나 모빌레라고 읽음)’가 있는데, 이는 여자는 쉽게 움직이는 갈대처럼 변덕스럽다는 뜻이다. 어원을 알게 되니, ‘mobile’에 성차별적 의미가 숨어 있었다.

‘trans’는 라틴어로 건너편이란 뜻이고, 그래서 ‘transmit’는 송신하다, ‘transfer’는 전달하다, ‘transgender’는 성전환자가 된다. ‘paragraph’는 그리스어가 어원으로 옆이란 ‘para’와 쓰다라는 ‘graph’의 합성어로 옆에 쓰다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영어에서는 문단을 뜻한다. ‘photography’에서 ‘photo’는 빛이다. 그래서 이는 빛으로 쓰기, 즉 사진술을 뜻한다.

라틴어 어원 교육은 미국 중고등학교 필수 과목

이렇게 우리말 한자어처럼 영어에 섞여 있는 라틴어, 그리스어 어원을 공부하지 않으면, 영어권 사람들은 고등한 학문, 전문 분야 학습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토플(영어로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능력으로 구성), GRE(어휘력, 수리력, 분석력으로 구성) 등 미국 대학, 또는 대학원 입학 시 요구하는 이들 영어 점수는 라틴어 어원 공부를 하지 않으면 고득점을 얻지 못한다. 미국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라틴어 어원을 필수로 배운다. 그래서 이들은 영어 알파벳 속에 숨어 있는 어려운 어원을 알려고 기를 쓴다.

내가 미국에 방문교수로 체류할 때 미국 중학교를 다녀야했던 내 아이가 영어 시간에 라틴어 어원을 배우며 힘들어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도 유학 전 GRE 때문에 라틴어 어원을 어렵게 공부했지만, 미국 학생들이 중학교부터 라틴어 뿌리를 공부하는지는 내 아이 사례를 보고 처음 알았다. 그래서 대한민국 학교에서 한자 안 배우고 한글 전용을 고수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 영어권 국가 학생들이 알파벳 전용 단어 속에 숨은 라틴어 어원을 ‘필수 과목’으로 열심히 익히는 것은 명확한 교육 목적이 있다. 국민 문해력과 독서력 때문이다. 라틴어 어원 모르는 영어권 사람이나 한자 모르는 한국 사람은 문해력과 독서력이 점차 낮아져서 언어생활의 막장에 이르게 될 게 뻔하다.

한자 연상 안되는 한글 전용의 난맥상

얼마 전, 차를 몰고 청주에서 제천으로 고속도로를 달릴 기회가 있었다. 죽전, 망향, 옥산, 추풍령 등 경부고속도로 휴게소 이름만 익숙하던 나에게 다가온 ‘금왕휴게소’ 간판은 매우 낯설었다. 나는 곧장 휴게소로 진입했다. ‘금왕’이란 지명에 호기심이 꽂혔기 때문이다. 휴게소에서 차를 세우고 검색해 보니, 충북 음성군 ‘금왕(金旺)읍’은 옛날에 금광이 있던 곳으로 이 지역에 금이 왕성하다는 의미였다. 금왕휴게소 다음 휴게소는 천등산 휴게소였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로 시작되는, 가수 박재홍이 1948년에 부른 흘러간 노래 <울고 넘는 박달재>의 가사에 나오는 그 천등산인가 하는 의문이 생겨 볼 일이 없어도 또 휴게소에 들렀더니, 정말 맞았다. 그 천등산은 800여m로 높지는 않지만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형상이어서 한자로 ‘天登山’이라 불렸다고 한다. 옛날 영남에서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길목에 있는 박달재가 천등산 인근에 있어서 “천등산 박달재...”라는 노랫말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 지명(地名) 속의 의미를 모르고 그냥 소리로만 듣고 말하고 있다. 내가 살던 부산 대연동(大淵洞)은 큰 연못이란 뜻인데, 인근에 용호동(龍湖洞: 용이 사는 호수), 용소(龍沼: 용이 사는 연못) 삼거리, 못골 시장이 있으니, 옛날에 바다가 매립되기 전의 용호동 인근 광안대교 입구 쪽은 바다가 육지 쪽으로 깊숙이 들어온 만(灣)이어서 호수나 연못으로 불렸는지도 모르겠다. 또, 용호동 바닷가에는 분포중고등학교가 있는데, ‘분포’라는 말이 꼭 통계의 분포(分布, distribution)를 연상시킨다. 알고 봤더니, 분포(盆浦)는 염전에서 비가 올 때 소금물을 빼서 저장해 놓는 큰 항아리(盆)가 있던 포구라는 뜻이었다.

EBS에서는 학생들 문해력 문제를 다루면서 이런 해프닝을 소개한 적이 있다. 학교에서 학부모용 가정통신문에 "대출 받은 교과서를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께 반납해달라"고 적었는데, 학부모 중 일부가 도서담당자를 의미하는 '사서(司書)'란 말을 '구입해서'로 착각해서 책을 서점에서 '사서' 도서관 선생님에게 반납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지적’이라는 단어를 한글로 적으니, 어느 젊은이가 ‘이지적(理智的)’이 아니라 ‘easy적’으로 해석하더란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우습기보다는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일취월장(日就月將)’을 나날이 이뻐진다는 의미로 ‘일취얼짱’이라고 엉터리 조어(措語)하는 경우와 유사하다. 한자어가 참 고생이 많다. 6월 5일은 ‘망종(芒種)’이었다. 24절기 중 하나인 망종은 벼 등 수염이 달린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라는 뜻으로 들판의 보리를 베어 내고 그 자리에 벼를 심는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6월 시골 벌판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생선 이름 중에 ‘임연수어’가 있는데, 이를 사람들은 ‘이면수어’로 적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임연수어는 한자로 ‘任延壽漁(임연수라는 사람이 잘 잡은 고기라는 설)’와 ‘臨淵水漁(육지 인근 바다에서 잘 잡히는 고기라는 설)’라는 두 가지가 있으나, 전자(前者)가 정설이라고 한다. 어찌 되었건, 한자어를 알아야 이 고기 이름의 정체가 밝혀진다. 데킬라의 재료가 되는 식물은 ‘용설란(龍舌蘭)’인데, 이는 난의 일종이지만 뾰쪽한 줄기가 날카로운 용의 혀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한글 전용 위헌 소송이 있었다?

그런데 한글 전용을 법으로 규정한 우리나라 ‘국어기본법’이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되는 어문 생활에 관한 자기 결정권 등등을 침해했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이 2012년에 제기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16년, 헌재는 국어기본법에서 공문서 작성을 한글로 작성하라고 규정한 것과, 초중고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선택적으로 받게 한 현행 교육부 고시도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그 이유는 공문서 등은 한글로 써서 전 국민이 다 읽어야 하며, 필요에 따라서 한자를 병기할 수 있으니, 한글 전용이 문제가 없고, 학생들이 선택적으로 한자를 배워도 인터넷 검색 등으로 한자 지식의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으므로, 굳이 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필수로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헌재는 요즘 한글세대의 문해력 난맥상을 어떻게 생각할까? 최근 헌재가 세태를 반영하여 친족 간 재산 도둑질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를 헌법불일치로 판결한 것처럼, 헌재의 한글 전용 합헌 판단도 한글 전용 세대의 문해력 위기 세태를 감안해서 바뀔 시점이 되지 않았을까? 

국민 독서력과 문해력 해결사는 한자어 교육뿐

한자와 한글을 병용하든, 또는 한글 전용을 하면 더더욱, 한자 교육은 필수가 되어야 할 이유가 커진다. 우리말에 한자어가 숨어 있듯이, 영어권에서는 영어 단어 속에 라틴어가 숨어 있어서 국민 문해력과 독서력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나 영어권 국가들은 알파벳 전용 표기를 해도 라틴어 어원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도록 라틴어 교육을 심화시키고 있고, 미국 대학원 입학 과정에서 어휘력 등이 포함된 GRE 점수 제출은 외국 학생은 물론이고 미국 학생들에게도 필수다. 우리나라 대학원 석박사 과정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학 입학 자격으로도 학생의 한자 능력이 포함돼야 하지 않을까? 한자 교육이 필수가 되려면 대학 수능에 반영하면 되는데, 대한민국 대입 제도를 변경하는 것은 헌법 고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미국은 '스크립스'라는 미디어 그룹이 주최하는 ‘전미 영어 철자 맞추기 대회(Scripps National Spelling Bee)’ 일명 ‘스펠링비’가 열린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1925년부터 시작해서, 100년이 다 된 지금까지 매년 지역 예선, 주 예선을 거쳐서, 수도 워싱턴DC에서 전국 결선을 갖는다. 스펠링이 난해한 고급 학술 단어(이게 대부분 라틴어 어원을 가진 단어다!)를 듣고 그 단어의 스펠링을 맞추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결승전은 전국 TV로 생중계되며, 나도 미국 체류 시 몇 번 TV로 결승전을 시청한 적이 있다. 우승자는 2019년 기준 5만 달러의 상금과 대통령 집무실로 초청되는 영예를 누린다. 미국의 스펠링비는 그만큼 미국의 라틴어 어원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과 국민적 호응, 그리고 거국적 지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이게 우리 식으로 치면 ‘혼동하기 쉬운 한자어를 한자로 정확하게 쓰기 대회’ 정도가 아닐까? 한글세대가 감을 못 잡는 선물(先物)과 선물(膳物), 전후(前後)와 전후(戰後), 사전(事前)과 사전(辭典), 구축(構築)과 구축(驅逐), 지명(地名)과 지명(指命), 해독(解毒)과 해독(解讀), 전자(前者)와 전자(電子), 인도(印度)와 인도(人道), 대전(對戰)과 대전(大戰), 사고(事故)와 사고(思考)를 한자로 구분해서 쓰는 능력을 겨루든지, 단체(團體)와 ‘단채’, 재료(材料)와 ‘제료’, 무단 복제(複製)와 무단 ‘복재’, 북한 제재(制裁)와 북한 ‘재제’를 바르게 구분해서 한자와 한글로 쓰는 능력을 겨루는 방식 등으로 우리말 속 한자어의 지식을 다투는 형식을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한글 전용이 헌재의 합헌 결정이 난 판국에 한국형 스펠링비는 국민적 호응을 얻기는커녕, 시도조차 하기 어려울 것만 같다.

‘국민 문해력과 독서력 정상화 방안’을 제안함

언어학자 크리스털은 언어는 사용자가 없으면 소멸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6000여 개의 언어가 있는데 그중 2000여 개가 사용자가 없어서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한자를 안 배웠고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한자어 때문에 업무상 또는 일상 대화 중에 문장 해독(解讀)에 문제가 생기면, 자기들끼리도 “이러다가 한국에서 한자가 없어지는 것 아냐?”라면서 ‘한자소멸론’을 걱정하기도 한단다. 중국 기원의 한자가 소멸하는 것을 우리가 걱정할 이유는 한자어가 들어간 우리말이 일상어의 50.6%, 전문어의 74.6%나 된다는 엄연한 언어 현실 때문이다.

최근 불교계가 불교 어휘 대사전을 발간했다는 뉴스가 났다. 대부분이 한자어인 불교 용어를 다양한 용례를 제시하면서 사람들이 뜻을 이해하도록 돕는 사전이라고 한다. 이 사전을 주도한 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자는 중국어가 아니라 동아시아 공통의 사유(思惟) 언어"라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한 내 지인은 아침자습 시간을 활용해서 학년별로 한자능력시험 공부를 시켰다고 한다. 1학년은 8등급, 2학년은 7등급, 이런 식으로 급수를 올려 마지막 6학년은 4등급(한자 4급은 대학교 1학년 수준) 급수 취득을 목표로 전교생을 학습시킨 결과, 높은 합격률을 자랑했다고 한다. 한자를 알게된 학생들은 수업 중에 등장하는 등고선(等高線), 오방색(五方色), 이등변삼각형(二等邊三角形) 등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했고, 현장학습시간에 들른 경복궁(景福宮)의 의미는 물론 종묘(宗廟) 등의 단어를 쉽게 이해해서 문화해설사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2012년, 한국어문회가 이 사례를 우수 교육 사례로 선정하기도 했고, 2013년에는 교육 관련 잡지에 크게 소개되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다른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학생 독서력 향상을 위해 17년째 '책읽어주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서울시교육청은 25억여 원의 예산을 투입해서 '북 웨이브(Book Wave)'라는 대대적인 독서 캠페인을 5월부터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10분 독서 선언, 북 페스티벌, 독서 토론, 학부모 독서 동아리 공모전, 가족 책 만들기, 1인 1책 쓰기, 독서캠프 등의 프로그램이 망라되어 있다. 

이제는 일부 교육자들의 이런 크고 작은 노력과, 널리 퍼지고 있는 국민적 우려를 국민 문해력과 독서력 향상을 위한 구체적 교육 정책으로 현실화할 때다. '한자 교육 필수화 방안’, 그리고 한글과 한자 혼용까지는 아니라 해도, ‘교과서의 제한적 한자 괄호 병기 방안’, 이에 따른 ‘소설, 전문 서적, 언론의 필요시 한자 괄호 병기 활성화 방안’, 그리고 디지털 디톡스 방안과 국민 독서 운동을 종합해서 ‘국민 문해력과 독서력 정상화 방안’을 국민적 토론에 부쳐보는 건 어떨까? 역설적으로, 우리말을 오래도록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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