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museum, 오락amusement, 음악music의 영어 어원은 의외로 모두 뮤즈Muse다. 뮤즈는 그리스 신화에서 기억memory의 어원인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가 낳은 아홉 여신들 중 하나다. 창작을 위한 영감을 불러 일으켜 시, 음악 등 예술이나 학문을 관장한다. 그런 것들이 하나로 모인 곳을 뮤지엄이라 하고, 그런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어뮤즈먼트이며, 재미있는 것이 뮤직이다. 이렇게 뮤즈에서 온 단어인 뮤지엄을 일본인들은 박물관(博物館)이라 번역했다. 뮤지엄이란 단어 안에는 많은(博) 물건들(物)이 있는 집(館)이란 뜻이 별로 없다. 그러므로 뮤지엄이라는 단어 그 자체보다 서양에서 뮤지엄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그 쓰임새를 먼저 알아보고 고민한 번역같다. 서양에서 뮤지엄은 오래된 유물이나 문화적 학술적 의의가 깊은 자료를 수집하여 보관하고 전시하는 곳으로 쓰인다. 물론 요즘은 뮤지엄이 박물관 말고 미술관의 의미로도 쓰인다. 그 때는 뮤지엄 앞에 art가 붙는다. 미술관은 그냥 뮤지엄이 아니라 아트 뮤지엄(Art Museum)이다.
이런 뮤지엄인 박물관은 신식보다 구식에 가까운 존재다. 그렇다면 박물관 건물은 신식 건물보다 구식 건물이어야 어울린다. 오래된 것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 멜번에서 스쳐 지나가듯 보았던 멜번 박물관은 어째 박물관이 박물관처럼 보이지 않는다. 애들 놀이터나 놀이공간처럼 보인다. 부산에 있는 ‘영화의 전당’처럼 기울어져 불안정하게 보이는 지붕이 멜번 박물관에도 있기에 처음 보는 건물인데도 익숙한 기시감(deja vu)이 느껴졌다. 난 불안정한 외관의 영화의 전당에 가면 왠지 불안한 기분이 든다. 기분이 포근하며 안정되지 않다. 아무튼 기운 지붕처럼 MELBOURNE MUSEUM이라는 글자를 기울게 쓴 것도 박물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밖을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분홍색 하늘색 청록색 등 여러 가지 색깔로 알록달록 치장한 것도 박물관이라는 건물에 맞지 않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호주에 있는 도시가 유럽에 있는 여느 도시와 달리 고색창연하진 못하더라도 박물관마저 이런 상태니 실망스러웠다. 현대인이 기술적으로는 발전했겠지만 미감에서 만큼은 고대인 중세인 근대인보다 하강한 것같다.
과연 누가 멜번 박물관을 설계하고 시공하도록 결정했을까? 멜번시에서 먼저 기존의 고답적인 박물관과 달리 뭔가 현대적인 미술관을 지어달라고 의뢰했을까? 아니면 건축설계자들이 저렇게 새로운 느낌으로 짓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을까? 둘다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 그렇게 짓도록 최종 재가하며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멜번 시장이 결정했고 멜번시 의회에서도 최종 재가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이상야릇하게 지어질 수 있었다. 결국 저렇게 지어질 수 있는 최종 권한은 물론 최종 책임은 최고결정권자에게 있다. 아무리 저렇게 짓자는 제안이 들어와도 최고 최종 결정권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저렇게 지어질 수 없다. 결국 최고 결정권자의 생각과 안목이 중요한 것이다. 만일 그가 요즘 시대에는 고리타분한 건물보다 현대적 신개념의 건물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나중 상황은 그리 돌아간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현대라고 해도, 설령 박물관보다 현대미술관이라고 해도 뮤지엄인 박물관 건물답게 뮤즈를 모시듯 예술적으로 우아하고 아름답게 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를 써포트하는 부하 참모들도 그런 방향으로 지으라고 설계 용역을 주고 이에 따라 시공할 것이다. 허나 하지만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현대식으로 장난치듯 가볍게 지어지고 말았다. 미술관인지 박물관인지 모를 불안정하면서 총천연색으로 지어진 미감없는 건물을 보니 최고의사결정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안목을 지녔을지 상상이 된다. 그 낮고(淺) 얇은(薄), 천박(淺薄)한 저렴한 취향이 조금은 답답하며 갑갑하다. 때문에 저 안에 전시된 유물들이나 작품들은 넓은 박물(博物)이 아니라 얇은 박물(薄物)일 것처럼 여겨지고 말았다.